트럼프식 경제정책의 논리를 제공하는 스티븐 마이런 전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은 2024년 허드슨베이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 불균형의 뿌리를 달러의 구조적 고평가에서 찾았다. 달러가 세계 준비자산 및 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한 달러 수요는 항상 높고, 이로 인해 미국의 수출품은 상대적으로 비싼 반면 수입품은 싸진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커질수록 미국이 준비자산과 안보 우산을 제공하는 비용도 커진다며 그는 달러를 특권 대신 ‘과도한 부담’으로 재정의했다. 관세, 통화 조정, 동맹과의 분담 조율, 심지어 준비자산 축적에 대한 비용 부과까지 마이런 전 의장이 검토한 수단들은 마러라고 협정이라 불리는 달러패권 재조정의 청사진으로 불린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달러 스와프라인 발언도 이 맥락이다. 그는 4월 말 상원 세출위원회 예산 청문회에서 걸프와 아시아 파트너들이 에너지 충격과 지정학적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 통화스와프를 요청했고 미국이 이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다층적으로 읽어야 한다. 베선트가 명시한 스와프라인의 효용은 달러 사용과 유동성 강화, 달러 펀딩 시장의 작동, 걸프와 아시아에 새 달러 펀딩 센터 구축, 대미 무역 및 투자 촉진이다. 즉 미국의 관심은 특정 동맹국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가 패권을 유지하도록 금융 안전망을 재배치하는 데 있다. 연준(Fed)이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스와프라인의 목적도 같은 결이다.
미 금융시장의 방화벽 ‘스와프라인’Fed는 이 장치가 해외 금융 스트레스가 미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위험을 줄이고 미국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와프라인은 외국을 돕는 선물이 아니다. 미국 금융시장과 달러패권을 지키기 위한 방화벽이다.

일본 사례는 한국 원화 문제를 워싱턴식으로 읽는 데 중요한 힌트를 준다. 엔화 약세가 심해지자 일본은 외환시장 개입이 절실했다. 달러당 160엔 부근까지 치솟으며 수입 물가와 정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취임 이후 10년물 미국채 금리를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경제지표로 강조해왔다. 그는 2025년 2월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나는 10년물 국채와 그 금리 수준에 집중하고 있다”고 직접 밝혔다. 일본은 세계 최대 미 국채 보유국으로 1조4000억달러가량의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은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라 미국 장기금리 문제로 읽힌다. 엔화 방어를 위해 이 자산을 매도하면 미국채 시장에 매도 압력이 생기고 그 결과는 베선트가 중시하는 10년물 금리 상승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환율 방어를 위해 4월 말 이후 약 10조엔 또는 630억달러 규모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미·중 정상회담 전 일본 방문에서 “과도한 환율 변동성은 미·일 양측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본의 개입 명분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가 독립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리를 올려 미·일 금리차를 좁히면 엔화도 안정되고 미국채 매도 압력도 줄어든다. 미국이 일본의 환율 개입이 미국 국채시장으로 번질 파장을 신경 쓰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원화 약세도 같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2025년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인 약 1200억달러를 기록했다. 교과서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달러 공급을 늘려 원화 강세 요인이 된다. 그런데 최근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서며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지금의 원화 약세는 달러를 버느냐보다 그 달러가 외환시장에 나오느냐의 문제다. 한국은행은 세 가지 구조적 흐름에 주목한다. 첫째, 수출 기업들이 달러를 원화로 바꾸기보다 외화예금으로 보유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둘째는 내국인의 해외투자다.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국 거주자의 해외증권 투자는 1294억달러에 달했다. 반대로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증권 투자는 504억달러에 그쳤다. 해외 주식투자는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야 하므로 달러 매수 압력을 키우고 원화 수요를 낮춘다.

마지막으로는 NDF라고 불리는 역외 차액 결제 선물환 시장 원화 매도 포지션이 위험 헤지를 위한 현물환 시장에서의 달러 매수로 이어지는 구조 때문이다. 수출 호황의 원화 강세 효과가 이 흐름에 의해 증발한 셈이다.

고환율에 시달리는 한국은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했다. 대규모 대미 투자와 관련해 잠재적 달러 유동성 위기 및 환율 시장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편 2026년 1월 베선트 재무장관은 원화 약세가 한국의 견고한 경제 펀더멘털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직접 밝혔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이해관계종합하면 미국이 한국 외환시장의 불안을 인지하고 있지만 상설적 달러 안전판을 제공할 만큼의 위기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아직 미국 금융시스템과 공급망에 직접적 위협으로 전이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판단 기준이다. 미국은 한국의 환율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이 미국의 이해관계로 번지는 경로를 본다.

한국은 일본처럼 기축통화국은 아니지만 반도체 공급망과 대규모 대미 투자, 동아시아 달러 유동성을 통해 미국 시스템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 외환시장의 불안이 미국 시스템으로 번질 경우 그것은 더 이상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관리해야 할 달러 질서의 위험이 된다. 미·중 정상회담 전 베선트의 방문에서 한국 정부가 다시 통화스와프를 제안한 것도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브래드 셋저와 옥스퍼드의 스티븐 파두아노는 아랍에미리트(UAE) 스와프 요청을 분석한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스와프라인이 금융 질서의 문제임을 짚었다. 이들은 UAE 달러 스와프에 반대하며 UAE가 2조달러 이상의 국부펀드 자산과 약 3000억달러의 중앙은행 준비금을 축적한 부유한 채권국이라고 지적했다.

스와프라인은 지정학적 호의나 불투명한 금융시스템을 지원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도 같은 잣대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정 투명성이 높고 3500억달러 대미 투자라는 실제 달러 유출 압박이 존재하지만 42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은 미국이 스와프를 거절하는 핵심 논거가 된다. 보유액이 충분한데 왜 우리가 도와야 하느냐는 논리다. 실제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25년 말 기준 세계 9위 수준이다. 이 규모가 오히려 스와프 요청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이다.

셋저와 파두아노가 UAE 사례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한 외국 통화당국 레포(FIMA Repo)는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Fed에서 달러를 조달하는 구조다. 2020년 코로나19 충격 때 각국 중앙은행의 국채 투매가 미국채 시장을 흔들자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됐고 2021년 상설화됐다. Fed 입장에서는 신용 리스크도 환율 리스크도 없다. 거래가 미국 국채로 완전히 담보되고 달러화로만 거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FIMA Repo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첫째는 규모다. 기관당 한도가 600억달러에 불과하다. 둘째는 만기 구조다. 이 제도의 만기는 익일 또는 7일이어서 연장을 반복해야 한다. 3500억달러 장기 투자 자금을 단기 차입으로 조달하는 구조는 만기 불일치 리스크를 키운다.

비상 안전판인 만큼 민간 레포에 비해 높은 금리이기에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도 크다. 또 이 제도는 본래 시장 패닉 시 국채 투매를 막기 위한 안전망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이를 정책적 투자 자금 조달에 상시 활용하는 것은 제도 취지와 맞지 않으며 Fed가 이를 장기간 허용할지도 불확실하다.

최근 미국의 행보를 보면 달러패권이 처음 설계됐던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가장 큰 재조정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달러 유동성 네트워크를 재편하는 방식, 스와프라인의 수혜자와 조건은 달러패권 재조정의 일환이다. 앞으로 어떤 나라가 네트워크에 편입되고 어떤 나라가 배제되는지의 기준은 동맹의 친밀도보다도 미국 시스템에 미치는 파급과 전략적 가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조의 윤곽을 읽는 것이 워싱턴발 금융 신호를 해석하는 출발점이다.


배성빈 대륙아주 미국전략본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