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와 작전세력, 불안을 먹고 자라는 쌍둥이 괴물 [EDITOR's LETTE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공개한 미확인비행물체(UFO) 사진 한 장이 전 세계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백악관의 최고 권력자가 직접 던진 기묘한 단서는 잠잠하던 대중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고, 글로벌 무대는 바야흐로 ‘음모론의 대유행 시대’로 접어드는 모양새입니다.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오랜 음모론이 제도권의 상단 밸브를 통해 쏟아져 나올 때 대중은 이성과 과학적 팩트체크 시스템을 너무나도 쉽게 내던집니다.

대중은 도대체 왜 음모론에 매료되는 것일까요? 사회심리학과 행동경제학 학계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인간이 음모론에 빠져드는 것은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뇌가 작동하는 ‘지독한 심리적 방어기제’의 결과물이란 겁니다.

정치심리학 분야의 석학인 영국 켄트대의 카렌 더글러스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책 ‘음모론의 심리학’은 음모론은 세 가지 동기의 결핍으로 봅니다.

첫째는 ‘인식적 동기(Epistemic Motives)’의 결핍입니다. 인간의 뇌는 무작위적이고 혼란스러운 사건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거대한 비극이나 미스터리한 현상이 ‘우연의 일치’ 혹은 ‘원인 모를 자연 현상’ 때문이라고 믿는 것보다 사악하고 강력한 배후 세력이 정교하게 기획한 ‘결과’라고 믿는 것이 인과관계를 찾아 헤매는 뇌에는 인지적으로 훨씬 편안함을 줍니다.

둘째는 ‘존재적 동기(Existential Motives)’의 결핍입니다. 개인이 거시적 사회 변동이나 위기 속에서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즉 ‘무기력함(Powerlessness)’이 극에 달할 때 음모론이 침투합니다. 사회심리학자 얀 빌렘 반 프로이옌 교수에 따르면 대중은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불안과 마주하느니 차라리 “모든 상황을 막후에서 완벽하게 통제하는 거대한 악당이 존재한다”고 믿음으로써 역설적인 안도감을 느낍니다. 원인 모를 유령과 싸우느니 명확한 가상의 표적을 설정하는 것이 심리적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사회적 동기(Social Motives)’의 결핍입니다. 음모론은 소외된 개인에게 강력한 ‘고유성 욕구(Need for Uniqueness)’를 충족시켜 줍니다. “대다수의 어리석은 대중은 미디어가 속이는 가짜 뉴스를 믿고 있지만 나는 장막 뒤의 진짜 진실을 알고 있다”는 비뚤어진 우월감이 자아를 팽창시킵니다. 이는 소수의 선구자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강력한 착각을 주며 내부 결속력을 극단적으로 강화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학계가 규명한 이 음모론의 발생 공식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자본시장의 풍경과 정확히 평행이론을 달린다는 사실입니다. 실적과 거시경제 지표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음모론의 세계관을 자본시장에 이식합니다. 내가 투자한 주식이 폭락하는 이유가 거시적 금리인상이나 기업의 체질 저하 때문이라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작전세력’과 공매도 세력이 장막 뒤에서 개미들을 털어먹기 위해 판을 조작하고 있다”는 서사를 선택하는 식입니다.

불과 한두 해 전 증권시장을 뒤흔들었던 ‘빠때리 아저씨’ 같은 포퓰리스트 인플루언서들은 이런 지점을 정확히 타격합니다. 트럼프가 UFO 사진으로 대중의 정치적 결속을 다지듯, 자본시장의 포퓰리스트들 역시 불확실성에 지친 투자자들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가상의 서사를 살포하며 거대한 마켓 버블을 인위적으로 사육해 냅니다. 결국 음모론과 자본시장의 버블은 ‘인간의 무기력함과 불안을 먹고 자라는 쌍둥이 괴물’인 셈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음모론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투자에 있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장막 뒤의 거대한 작전세력을 탓하는 순간, 정작 책임져야 할 자신의 판단과 자기 자본의 흐름에 대한 점검은 사라집니다. 위대한 투자자들은 결코 안갯속 서사의 유령에 자신의 판돈을 걸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무서운 사실이 있습니다. 가끔은 음모론이 진실로 밝혀지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 CIA가 약물로 시민들의 정신을 조종하려 했던 ‘MK 울트라 프로젝트’, 국가가 매독을 연구하기 위해 흑인 환자들에게 페니실린 치료를 의도적으로 보류했던 ‘터스키기 매독 실험’. 모두 처음에는 황당한 음모론으로 치부됐지만 결국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와 함께 사실로 밝혀진 사건들입니다. 그러니 모든 일을 음모론이라 일축하는 태도 역시 똑같이 위험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일입니다.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한 번 더 의심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능력.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가짜 정보와 딥페이크가 난무하는 시대에 이 능력은 점점 더 결정적인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키워야 할 것은 장막 뒤의 유령을 찾아내는 직관이 아니라 그 직관을 검증할 수 있는 분별력입니다.

아, 사실 저는 음모론을 너무도 좋아합니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랩틸리언, 딥 스테이트…. 어쩌면 이런 음모론의 진실을 알고 싶어서 기자가 됐습니다. 물론 아직 제가 알아낸 거대한 진실은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까지 드러날 거대 세력이라면 이미 누군가에게 걸렸겠지요. 그래도 한 번 더 의심하고 한 번 더 자료를 뒤져보는 그 습관만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그 노력 자체가 어쩌면 모든 헛된 음모론 위에 서 있는 가장 단단한 진실이 아닐까 해서 말이죠.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