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6월 1일 폭발·화재 사고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사진=뉴스1
6월 1일 폭발·화재 사고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사진=뉴스1
6월 1일 대전사업장 폭발·화재 사고는 개별 기업의 관리 부실을 넘어 고위험 화약류를 다루는 국내 방위산업 전반의 기형적 투자 구조와 제도적 사각지대를 노출했다. 원가 보상 제도, 현장의 폐쇄성, 숙련공 의존 관행까지. K방산이 수출 실적을 쌓아 올리는 동안 손대지 않은 것들이 이번에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사고를 계기로 K방산의 최대 무기였던 신속 납기와 가성비 중심의 압축 성장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압축 성장 패러다임을 탈피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질적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자 총액 4배 늘었지만,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사고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안전 투자 수치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ESH 투자비’가 2023년 72억원에서 2024년 35억원으로 줄었다는 지적이었다.

회사 측은 즉각 반박했다. 해당 수치는 소모성 항목에 국한된 특정 회계 계정일 뿐이며 실제 안전 환경 개선 투자비는 2023년 538억원→2024년 1114억원→2025년 2470억원으로 매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임직원 1인당 투자비도 790만원에서 3023만원으로 늘었다.

숫자 공방은 핵심을 비껴간다. 폭발 사고가 발생한 세척공실에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건물 면적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었던 가운데 내부에 대형소화기 1대만 비치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 총액이 아니라 최일선 현장의 방재 설비 수준이 실질 안전 역량의 척도라는 것이 방산업계의 중론이다.

사고 이후 국내 주요 방산업체들은 일제히 특별 안전 점검에 착수했다. 수주 전선의 신인도 하락을 선제 차단하려는 움직임이다.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는 현장·안전·기술부서 합동으로 전 공정 전수 점검을 단행했다. 도출된 개선사항은 설비와 작업절차 전반에 즉각 보완 조치를 완료했으며 타 사업장으로 점검 범위를 확대하는 중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하절기 기온 상승에 따른 폭발 위험에 주목해 유류 창고, 비행시험 시설, 도장공정 등 화학물질 취급 취약 지역을 정밀 점검했다. 현대로템은 특별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SOP 재정비와 비상 대응 체계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화약류를 다루는 사업장이라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공정 특유의 리스크”라며 “자체 안전관리 시스템을 한 단계 더 고도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전반의 자율 점검 확산은 긍정적 신호다. 다만 사전 예방 체계가 아닌 사후 대응 관리였다는 점에서 이번 점검이 일회성 정비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위험 공정의 무인 자동화 흐름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K방산 패러다임 전환. 그래픽=송주연 기자
K방산 패러다임 전환. 그래픽=송주연 기자
자동화율 50%…원가 보상제가 자초한 역인센티브 탓

위험 공정의 무인 자동화가 신속하게 진척되지 못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18년과 2019년 연이은 폭발 사고 이후 220억원을 투입해 대전사업장 환경·안전 자동화를 추진했으나 현재 대전사업장의 공정 자동화율은 여전히 5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팩토리 플랫폼 도입 흐름 속에서도 방산 공정의 특수성으로 인해 무인화 설비를 전면 도입하기 어렵고 공정 재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게 업계의 토로다.

국방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자동화 지연의 근본 원인으로 국내 방산 원가 보상 시스템의 구조적 맹점을 꼽는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K방산이 성장 일변도로 신속 납기와 가성비만을 쫓다 정작 중요한 안전 문제를 놓쳤다”며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동일 유형의 사고가 세 차례 연속 발생했다는 것은 방산 위험 공정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원가 구조의 한계를 지적했다. 일반 제조업은 자동화·무인화로 인력을 줄이면 비용이 절감되지만 방산은 노무비 비중이 정부 원가 산정의 핵심 기준이라는 분석이다. 인력을 줄이고 자동화를 단행하면 도리어 정부로부터 제값을 받지 못하고 원가가 깎이는 기형적 구조다.

기업 입장에서는 위험 공정의 자동화 필요성을 인지하고도 선뜻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 어려운 역인센티브(Disincentive) 구조가 고착화돼 있었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방위산업 전체의 병폐로 위험 분야 자동화에 대한 원가 보상과 인센티브가 반영되도록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도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범부처 협력도 요구된다. 소방이나 보안 규제 탓에 안전 시설물 설치를 간과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해 왔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국방부, 방사청, 소방청, 방첩사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안전 TF를 조속히 구성해 최소 연 1회 이상 철저한 정기점검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24일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에서 진행된 시험사격에서 폴란드형 천무 HOMAR-K에서 사거리 290km급 유도탄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 24일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에서 진행된 시험사격에서 폴란드형 천무 HOMAR-K에서 사거리 290km급 유도탄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명장 사회’에서 ‘시스템 사회’로…인풋 경영 체질 개선 시급

방산 공장은 국가 보안시설 ‘가급’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정기 감독도 외부 전문가의 접근도 극히 제한된다. 군사기밀 보호(Security)가 작업자 안전(Safety)을 가리는 방패막이로 기능해온 셈이다. 일반 제조업 기준의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화약류·고에너지 물질 취급 공정을 정밀하게 규율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는 이 폐쇄성이 낳은 또 다른 문제를 짚는다. 방산 현장이 매뉴얼과 시스템이 아닌 베테랑 숙련공의 구두 전수와 손끝 감각, 즉 ‘암묵지’에 의존해 왔다는 비판이다.

보잉 등 글로벌 방산 기업들은 철저한 암호화 체계 속에서도 도면과 작업 관리 시스템을 표준화·체계화해 운영한다. K방산에는 이 체계가 없다.

김 교수는 “신입사원과 20년 차 경력직이 동일한 체계에서 생산할 수 있어야 안전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다”며 “‘명장 사회’에서 ‘AI와 시스템 사회’로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전환(DX)을 통한 공정 표준화가 김 교수가 제시한 해법이다.

외부 압력도 커지고 있다. EU 공급망실사법(CSDDD)이 본격 적용되는 국면에서 반복적 중대재해 리스크는 글로벌 수주 경쟁력을 흔드는 변수다.

해외 구매국들이 당장은 무기 성능과 납기를 중시해 G2G(국가 간 거래) 중심의 수주 전선에 미칠 직접적 타격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향후 글로벌 수주 경쟁이 심화하는 국면에서 경쟁국이 이를 빌미로 문제를 제기할 소지가 있는 만큼 내부적인 안전 관리 고도화는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와 기업이 매몰돼 있던 수출량이나 매출액 같은 산출물(Output) 중심의 외형 성장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무기 체계와 군수 산업이 질적으로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에서는 투입물(Input) 영역의 경쟁력을 따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동, 장비, 자재, 정보 등 투입 요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합하고 안전하게 시스템화하느냐가 관건이다. 김 교수는 “많이 만드는 시대는 끝났고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수출량만 따지는 구시대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공급망관리(SCM)와 현장 안전시스템 등 기업 내부 자원과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국방 거버넌스의 재구축이 K방산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를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