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대상분할 관행에 제동 건 대법원
[법알못 판례 읽기]
한쪽이 아파트 소유권을 갖고 상대방에겐 현금 10억원을 주는 방식, 양측이 아파트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갖는 방식이 모두 가능하다. 전자를 대상분할(현금 정산), 후자를 현물분할이라 부른다.
이혼 소송에서 비상장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 됐을 때 법원은 그동안 주로 대상분할을 명령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법원 관행에 제동을 거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상분할이 특정 당사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할 경우 대상분할만 고집할 게 아니라 여러 분할 방식 중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상분할 vs 현물분할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5월 29일 A 씨(부인)가 비상장사 대표 B 씨(남편)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등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대상분할을 명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 과정에서 A 씨는 대상분할을, B 씨는 현물분할을 주장했다. 대법원이 이번 파기환송을 통해 사실상 B 씨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들의 재산은 총 891억원이었다. 원심은 두 사람의 재산분할 비율을 2(A 씨) 대 8(B 씨)로 정했다.
그런데 A 씨의 순재산은 35억원이었고 나머지 856억원은 B 씨 소유였다. 이에 따라 B 씨는 A 씨에게 143억원의 차액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B 씨 재산 중 상당 부분(753억원)이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비상장 주식 평가액이었다는 점이다.
B 씨가 비상장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부동산과 현금성 자산 등)을 모두 A 씨에게 준다고 하더라도 약 40억원이 남는다. 결국 B 씨는 비상장 주식 일부를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상장사 주식과 달리 비상장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거래 자체가 잘 안된다. 경영권까지 내놓는 게 아니라 일부 지분만 매각하는 건 더 어렵다. 대법원은 이 점을 짚었다.
대법원은 “비상장 회사의 폐쇄성으로 인해 B 씨가 제3자에게 주식을 매각하려면 회사 경영권을 포함해 지분 과반을 매각하지 않는 한 이를 적정한 가격으로 현금화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B 씨가 재산분할금을 지급하기 위해 이 사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판시했다. 주식이 매각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세금이나 비용은 B 씨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
“대상분할만 고집할 건 아니야”
B 씨가 평생 일군 회사의 경영권 상실 등 여러 리스크에 노출된 것과 달리 A 씨는 대상분할 이후 경제적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A 씨는 현재 적지 않은 수준인 35억원의 순자산을 갖고 있다.
여기에 B 씨는 A 씨에게 월 50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한다. 이를 감안할 때 A 씨가 현물분할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곤궁에 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법원이 관습적으로 대상분할을 명령한 것은 B 씨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처사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대상분할 방식으로 재산분할을 명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형평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에는 대상분할 방식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물분할 등 여러 종류의 방법을 혼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선 비상장 주식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에 관해 대법원이 최초로 기준을 정립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급적 대상분할 방식을 우선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통상 기업을 운영하는 남편이 가사를 전담한 부인에게 현금화가 어려운 비상장 주식 일부를 지급하면 경제력이 떨어지는 부인 입장에선 실질적인 재산분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지분 일부를 획득한 전처나 전남편 등이 해당 기업의 가치를 훼손하려 드는 부작용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B 씨 사례와 달리 비상장 주식 보유자가 상대방에게 주식 대신 현금을 지급하는 걸 선호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해당 회사가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어 기업가치가 훨씬 뛸 것이란 기대가 있을 때가 대표적이다. 혹은 비교적 거래가 잘 되는 비상장 종목이라 주식 일부를 매각해 재산 분할대금을 마련하는 데 별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혼한 배우자가 내 회사 지분을 일부나마 보유하고 있는데 대해 거부감을 갖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증가하는 비상장 주식 분할 갈등
즉 대법원은 이번에 대상분할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건 아니다. 다만 각 부부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대상분할을 명령하는 관행에 대해 문제로 삼은 것이다.
이번 파기환송 판결을 이끌어낸 김상훈 법무법인 트러스트 대표변호사는 “그동안 대상분할이 원칙이라는 명시적 법령이나 판례가 없었는데도 법원은 관행적으로 대상분할 결정을 내려왔다”며 “구체적 상황에 따라 유연한 분할 방법을 취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비상장 주식 분할을 둘러싼 갈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과거엔 가계 자산이 부동산과 예·적금 등에 집중돼 있었다.
요즘엔 비상장 주식, 가상자산, 지식재산권 등 다양한 유형의 자산을 가진 사례가 늘고 있다. 벤처기업 성공 사례가 증가하면서 비상장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 경우도 증가세다.
배현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앞으로 비상장 주식의 개별 거래 가능성, 지분 구조 및 경영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중요해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돋보기]
유류분은 이제 가액반환이 원칙
재산 분할 방법은 이혼뿐 아니라 상속 과정에서도 큰 쟁점이다. 최근 유류분 반환 방식이 원물반환에서 가액반환으로 바뀌어 관심을 끌고 있다. 유류분이란 피상속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속인이 받을 수 있는 유산의 최소 비율을 뜻한다. 자녀의 경우 법정 상속분의 절반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예컨대 아버지가 첫째에게 전 재산 10억원을 모두 물려준 경우를 가정해보자. 둘째는 본인 법정 상속분(50%)의 절반인 2억5000만원을 달라고 첫째에게 요구할 수 있다. 기존에 유류분은 원물반환이 원칙이었다.
만약 부모가 첫째에게 아파트를 물려줬다면 둘째는 해당 아파트의 ‘지분’ 25%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방식은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켰다. 소수 지분을 갖게 된 둘째는 빨리 아파트를 매각해 현금을 나눠달라고 요구할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첫째는 재건축·재개발 후 미래가치 등을 감안해 부동산 매각을 거부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3월 민법이 개정돼 유류분 반환방식이 가액반환 원칙으로 바뀌었다. 대상분할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가액반환 원칙 아래서도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반환 대상이 상가나 대지 등 손바뀜이 활발하지 않은 부동산일 때 특히 문제가 된다. 매수자를 쉽게 구하지 못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처분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분쟁 대상 재산이 비상장 주식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류분을 제때 반환하지 않으면 연 12%의 지연이자를 물어야 한다.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이자율이다. 첫째 입장에선 이 지연이자 부담 때문에라도 부모로부터 받은 자산을 ‘급매’로 처분해 손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도 이런 가액반환이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반환해줘야 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어서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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