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무사부터 머스크까지, 1000조원의 계보  [EDITOR's LETTER]
지난 6월 12일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재산이 1조달러를 넘어선 것입니다. 우리 돈으로 1500조원에 육박하는 금액. 단 한 사람이 한 국가의 연간 예산을 통째로 갖고도 남는 부를 손에 쥐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트릴리어네어(Trillionaire), ‘조 단위 부자’의 탄생입니다.

그러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머스크가 처음으로 이 정도 부를 이룬 것만은 아닙니다. 인류는 이미 몇 차례 자기 시대의 부를 한 사람에게 몰아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머스크를 나란히 세워보면 한 가지 패턴이 보입니다.

먼저 만사 무사(Mansa Musa, 1280~1337)입니다. 14세기 서아프리카 말리 제국의 황제였던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인물로 흔히 거론됩니다. 현재 가치로 4000억달러 이상이었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1324년 그가 메카로 떠난 성지순례는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6만 명의 시종, 1만2000명의 노예, 황금을 가득 실은 80마리의 낙타가 사하라를 건넜습니다. 그가 카이로를 지나며 너무 많은 황금을 뿌린 탓에 이집트의 금 가격이 10년간 폭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만사 무사의 부의 원천은 명확했습니다. 사하라 횡단 무역을 통제했던 그는 인류 문명에 필수적이었던 황금과 소금을 사실상 독점, 즉 경제적 해자를 만들어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으로 넘어가면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가 있습니다. 1916년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산 10억달러를 넘긴 사람이 됐습니다. 그의 재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400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록펠러의 무기는 스탠더드오일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석유 정제 시장의 90%를 장악했고 철도·송유관·유통망까지 수직계열화 했습니다. 2차 산업혁명이 석유 위에서 굴러갈 때 그가 그 석유를 통제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로마 공화정의 사령탑이었던 마르쿠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BC 115~53)는 인류 최초로 ‘사설 소방대’라는 재난 비즈니스 플랫폼을 독점했습니다. 시내에 불이 나면 불타는 건물주에게 가 “이 건물을 내게 헐값에 팔겠소? 아니면 그냥 태우겠소”라는 냉혹한 제안으로 도장을 찍게 한 뒤 불을 꺼 자산을 증식했습니다. 도덕적 비난을 넘어 시스템의 공백과 결핍을 비즈니스의 무기로 치환하는 지독한 경제적 해자를 구축한 셈입니다.

일론 머스크 역시 인류가 우주로 향하는 길목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선 발사 시장입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세계에서 발사된 궤도 로켓 250여 차례 중 절반 이상이 스페이스X의 팰컨9이었습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입니다. 머스크는 지구 저궤도(LEO)에 무려 8000기가 넘는 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미 800만 명이 넘는 가입자가 그의 위성망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점은 저궤도라는 공간 자체가 제한된 자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너무 많은 위성이 들어가면 충돌 위험 때문에 더 이상의 진입이 어려워집니다. 머스크는 인류가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한정된 ‘하늘의 부동산’을 선점해 버렸습니다.

금과 소금의 길목을 지켰던 만사 무사, 석유 물류를 통제했던 록펠러, 로마의 소방 인프라를 쥐었던 크라수스, 그리고 지구 상공에 위성 그물을 짜 넣으며 우주 통신망을 독점하려는 머스크까지.

시대와 산업의 형태는 완전히 다르지만 자본의 황제들이 구사하는 승리의 문법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트렌드에 맞는 상품을 잘 만들어 파는 행위’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류 문명이 그 앞을 통과하지 않고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가치사슬의 최상단 독점 통로를 스스로 구축해냈습니다.

이번 호 한경비즈니스는 커버스토리로 <대한민국 100대 CEO>를 다룹니다. 20여 년간 매년 이어져온 이 조사를 통해 수많은 CEO들이 등장했고 또 사라져갔습니다. 올해 조사에서도 현재 한국 경제를 최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스타 CEO들이 선정됐습니다. 우리나라라고 위에서 언급한 ‘인류급 부자’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을 겁니다. 요즘 보면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지구의 기운이 대한민국으로 몰려드는 느낌마저 드니까요. 부디 올해 선정된 100대 CEO들 중 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은 상상치도 못했던 경제적 해자를 찾아내 큰 성공을 이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잘살고 대한민국도 잘살게 될 테니까요.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