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스 허사비스의 다음 시험대, AGI 신뢰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그동안 구글의 연례 개발자 행사는 순다르 피차이 CEO가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사실상의 관례였다. 그러나 올해 피날레를 장식한 인물은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였다. 글로벌 기업에서 발표 순서는 단순한 의전이 아니다. 기업이 시장과 투자자, 정책 결정자에게 보내는 전략적 메시지다.
구글은 올해 검색, 안드로이드, 유튜브, AI 에이전트, 스마트글라스까지 거의 모든 서비스의 중심에 제미나이(Gemini)를 배치했고 그 변화의 상징으로 허사비스를 전면에 세웠다. 2016년 알파고가 ‘AI가 인간을 이길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면 지금의 AI는 과학·의료·환경·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질문은 달라졌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허사비스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AI의 능력을 증명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AI가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대표적인 리더다.
Appearance
옷차림으로 역할을 설명하는 리더
허사비스의 스타일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상황에 따라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올해 4월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그는 짙은 네이비 슈트에 화이트 셔츠, 블루 계열 넥타이를 착용했다.
국가 지도자와 만나는 공식 외교·비즈니스 환경에서 신뢰와 안정감을 전달하는 대표적인 조합이다. 이 자리에서 허사비스는 연구자가 아니라 글로벌 AI 협력 파트너이자 기술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반면 구글 I/O 무대에서는 넥타이와 재킷 대신 더 편안한 스타일의 짙은 색상 상의를 선택했다.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는 행사에서 그는 최고경영자보다 연구 공동체의 일원에 가까운 모습으로 소통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러한 스타일이 권위보다 전문성과 접근성, 개방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그의 복장은 개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알파고가 만들어낸 역사적 성과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허사비스의 옷차림보다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이 남긴 의미를 먼저 기억한다.
흥미로운 점은 세 장면 모두 공통된 원칙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는 협력 파트너로, 개발자들 앞에서는 연구자로, 역사적 성과를 기념하는 자리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증인으로 자신을 위치시킨다. 옷차림이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역할을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셈이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블루 프레임 안경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과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쉽게 기억되는 이 시그니처는 과학자이자 혁신가라는 정체성을 꾸준히 전달한다.
많은 리더가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데 집중한다면 허사비스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브랜드화한다. 이것이 그의 이미지 브랜딩이 가진 가장 큰 차별점이다.
Behavior
기술보다 책임을 먼저 이야기하는 리더
허사비스는 전형적인 스타 CEO와는 다르다. 어린 시절 체스 챔피언 출신답게 성급한 판단보다 장기적 관찰과 전략적 사고를 중시한다. 그의 행보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AI 패권 경쟁이나 시장 지배력을 강조하기보다 AI가 과학 연구와 의료 혁신, 산업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그는 AI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일반인공지능(AGI)의 잠재력을 강조하면서도 안전성, 윤리, 책임 문제를 꾸준히 언급한다. 이는 기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리더십의 조건이다.
결국 AI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성능뿐 아니라 신뢰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허사비스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협력, 책임, 장기적 관점은 바로 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기반이다.
기술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설득하는 리더
허사비스의 가장 큰 강점은 AI를 만드는 능력만이 아니다. AI의 의미를 설명하는 능력이다. 많은 기술 리더가 성능과 속도를 이야기할 때 그는 과학과 의료, 환경과 교육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가 이끈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는 단백질 구조 예측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고, AI 기반 기후 예측 연구는 환경 문제 해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기술을 설명할 때 알고리즘보다 사람을 먼저 이야기한다.
모델보다 환자를, 기술보다 사회적 가치를 강조한다. 덕분에 대중은 복잡한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만들어낼 변화를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발표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구축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AI의 능력은 증명, 이제는 신뢰를 증명할 차례
10년 전 알파고가 세상에 던진 질문은 ‘AI가 인간을 이길 수 있는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질문은 다르다. ‘AI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앞으로의 경쟁은 더 강력한 AI를 만드는 경쟁이 아니라 더 신뢰받는 AI를 만드는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허사비스 역시 새로운 시험대 앞에 서 있다. 알파고를 통해 AI의 능력을 증명했다면 이제는 AGI 시대의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넘어 그 기술이 어떤 가치와 책임 아래 사용될 수 있는지를 설득해야 한다.
구글이 올해 I/O의 마지막 무대를 허사비스에게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AI 시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강력한 기술이 아니라 가장 설득력 있는 신뢰다.
알파고가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다면 AGI 시대의 허사비스는 인간의 신뢰를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를 바꾸는 것은 가장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가장 신뢰받는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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