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코스피 1만 시대를 맞이하는 법]
사진은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2026.6.22 한국경제신문 임형택 기자
사진은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2026.6.22 한국경제신문 임형택 기자
코스피 1만 시대를 향한 길은 앞으로도 울퉁불퉁할 전망이다. 이은택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랠리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장은 상승 탄력도 강해지지만 동시에 그만큼 더 예민해진다”고 짚었다.

투심도 점차 더 예민해질 것이다. 거친 롤러코스터 장세 속에서 시장은 ‘코스피 4000 회귀’를 점치는 이들과 ‘1만 시대’의 환희를 외치는 이들의 시선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단, 변동성이 터질 때마다 과거의 IT 버블 트라우마에 갇히기엔 반드시 업데이트해야 할 시장의 본질이 있다. 한국 증시의 체질개선이다.‘3저 호황’ 뛰어넘는 이익의 기울기그 최전선에는 ‘박스피’의 두꺼운 천장을 뚫어낸 압도적인 실적 체력이 자리한다. 과거 코스피는 연간 영업이익 100조~200조원의 좁은 박스권에 갇혀 지수가 조금만 올라도 밸류에이션 부담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은 다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합산 영업이익은 2025년 91조원에서 2026년 630조원, 2027년 906조원으로 대폭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26년 코스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919조원으로 추정된다. 또한 2027년 코스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5% 오른 1240조원으로, 1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전망치의 상향 속도가 지수 상승보다 빠르다 보니 주가가 올랐음에도 밸류에이션 부담은 오히려 완화되는 역대급 ‘기울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3저 호황’(1986~89년)조차 가볍게 뛰어넘는 기세다. 이 시기 4년간 코스피 지수는 8배 상승했다. 지금은 1년 새 3배가 뛰었다.
“고점까지 사정 없이 흔들린다” 코스피, 1만 시대로 가는 길 [코스피 1만 시대 맞이②]
이 경이로운 이익을 뒷받침하는 거시경제 지표가 실질 국내총소득(GDI)이다. 올해 1분기 한국의 실질 GDI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무려 8.7% 상승을 기록했다. 1960년 통계 집계 이래 역사상 최고치다. 1969년 한강의 기적 당시(+8.4%)와 1988년 3저 호황기(+8.0%)의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같은 기간 미국의 GDI 성장률은 +0.2%에 그쳤다.

여기에 AI 시대가 불러온 ‘역(逆) 스마일 커브’는 한국 제조업의 위상을 통째로 뒤바꿔놓았다. 설계와 마케팅이 부가가치를 독점하고 제조는 하청에 머물던 시대가 저물고 실물 제품을 가장 정교하고 빠르게 찍어내는 물리적 기술력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낸드 가격이 2배로 뛰고 SK하이닉스가 역사상 유례없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은 제조업이 부가가치의 최상단으로 올라선 ‘역 스마일 커브’의 상징적 장면이다.
“고점까지 사정 없이 흔들린다” 코스피, 1만 시대로 가는 길 [코스피 1만 시대 맞이②]
2026년 6월 29일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사진=컴퍼니스마켓캡
2026년 6월 29일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사진=컴퍼니스마켓캡
피지컬 AI 시대로 진입할수록 필수적인 고용량 메모리와 로봇 지능화 기술을 쥔 한국의 대기업들은 글로벌 AI 생태계의 패권을 좌우하는 ‘희소 전략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외환위기(IMF)와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제조 현장에서 버티며 쌓아온 ‘축적의 시간’이 비로소 폭발한 셈이다.

이 제조업의 역습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두 번째 데이터가 바로 무역 성적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의 총수출액은 877억달러를 기록하며 역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그 중심에 선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69.4% 폭증하며 전체 랠리를 견인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쌓아 올린 누적 무역흑자만 해도 1019억달러에 달한다. 대한민국 국민 1인당 약 2000달러씩의 순자산이 해외에서 유입된 셈이다.

27년 전 대한민국 전체 시가총액이 일본의 NTT 기업 하나보다 못하다며 눈물짓던 서글픈 프레임은 완전히 깨졌다. 압도적인 거시경제 데이터가 지금의 대전환을 증명하는 지표다. FOMO 대신 나의 축제로 만들려면 하반기 시장 역시 추가 수익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매물, 지정학적 리스크, 한·미 중앙은행의 매파적 기조, 레버리지 ETF 시장의 급성장과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물량 우려, 금융투자소득세 재도입 논란, 정부의 AI시대 초과세수 논란까지 지수의 발목을 잡을 리스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코스피 1만을 예고한 증권가에서도 “고점까지 가는 길 내내 우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댈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고점까지 사정 없이 흔들린다” 코스피, 1만 시대로 가는 길 [코스피 1만 시대 맞이②]
전문가들은 이 거친 장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패착으로 섣불리 고점과 저점을 다 잡으려는 ‘타이밍 매매’의 유혹을 지적했다. 변동성이 클 때는 단 하루의 잘못된 매매가 수개월의 성과를 한 방에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규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술적 과열을 해소하는 과정은 짧게는 2주에서 2개월까지 소요되기에 단기 급등에 따른 ‘숨 고르기(조정)’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고 봤다.

그는 당장 7월부터 이어지는 2분기 실적 시즌 역시 피크아웃 우려와 맞물려 실적 발표 당일 주식을 던지는 ‘셀온(Sell-On)’의 빌미가 될 수 있어 주도주 전략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7월 첫째 주 삼성전자의 가이던스 공개를 기점으로 실적 전망 상향 속도에 다시 불이 붙으면 상승 압력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며 “9000선 이상에서 과열된 반도체, 자동차, 전력기기 등 주도주를 추격 매수하는 것은 자제하되 코스피가 8500선 이하로 떨어지는 단기 변동성을 활용해 AI 밸류체인을 분할 매집하거나 묵묵히 버티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고점까지 사정 없이 흔들린다” 코스피, 1만 시대로 가는 길 [코스피 1만 시대 맞이②]
하지만 판이 바뀌어도 정작 시장을 움직이는 투자자가 과거의 관성에 갇혀 있다면 ‘코스피 1만 시대’의 과실은 결국 남의 축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코스피 불장이 시작될 무렵 증권가는 AI 구조적 성장에 올라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강력 추천했다. 그러나 상당수 투자자는 “너무 뻔하다”며 바이오와 정치 테마주, 저가 급등주를 찾아 움직였다. 결과는 잔인한 소외였다. 유가증권시장 종목의 3분의 2(66%)가 마이너스 보합권에 갇혀 지수 상승의 혜택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FOMO가 찾아온 것은 당연지사다.

시장이 기대하는 ‘1만 시대’를 내 자산의 기회로 만들려면 낡은 프레임을 깨야 한다. 먼저 숫자의 ‘기울기’ 대신 가격의 ‘높낮이’에만 집착하는 태도다. 주도주 장세의 본질은 안 오른 싼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비싼 주도주가 실적을 바탕으로 더 비싸지는 현상이다. 가격이 아닌 실적이라는 ‘숫자’에 집중해야 후기 사이클의 압도적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

한국 증시가 심어준 ‘학습된 불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오너 일가 중심의 거버넌스 탓에 개인들은 장기 투자를 포기해 왔으나 최근 단행된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은 시장의 룰을 바꾸었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보호받기 시작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뇌관을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은 이를 “기업가치가 온전히 주주의 것이 되는 비례적 이익 보호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거버넌스의 대전환이 일어난 만큼 단기 매매에서 벗어나 주도주를 믿고 가져가는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모건 하우절은 저서 ‘돈의 심리학’에서 “금융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획에 포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낡은 불신을 업데이트하고 경직성을 버리는 유연함이 시장이 기대하는 ‘코스피 1만 시대’를 나의 축제로 만드는 유일한 무기가 될 것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