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설적인 테크니컬 애널리스트인 우라가미 구니오의 증시 사계론을 토대로 최근 시장 국면을 분석하면 현재 코스피 시장은 완연한 ‘실적 장세’의 초·중기 국면에 있다. 생산과 판매 활동이 증가하고 설비투자가 확대되는 동시에 주가 역시 장기간에 걸쳐 상승 흐름을 타는 전형적인 활황기의 모습이다.
실적 장세의 가장 큰 특징은 ‘차별화’와 ‘압축’이다. 모든 종목이 유동성의 힘으로 함께 오르던 유동성 장세와 달리 실적 장세에서는 이익을 실제로 증명해 내는 주도주만이 시장을 이끌고 나간다. 코스피 1만 시대를 향한 여정 속에서 투자자들은 다시 제2의 ‘삼전닉스’를 찾고 있다. 아직도 주도주가 더 간다주식시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수는 “많이 올랐기 때문에 비싸다”는 직관적 오해다. 하지만 실적 장세에서 이 개념은 철저히 깨진다. 주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면 주가는 끊임없이 우상향 흐름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고점 경계감을 드러내며 순환매 매매를 시도하지만 대세 상승장의 역사적 경험은 늘 한 방향을 가리킨다. 활황기 국면에서는 소외주를 저가 매수하는 전략보다 핵심 주도주를 보유하고 조정을 받을 때마다 비중을 늘려가는 ‘바이 앤 홀드(Buy & Hold)’ 전략의 수익률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극단적인 변동성 확대와 쏠림현상 시기에 전문가들은 주도주 투자를 권고한다. 이재만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익 추정치 상향 조정과 높은 이익 증가율 전망치 유지 그리고 영업이익률 상승 기대를 바탕으로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효성중공업, 현대로템, 포스코퓨처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6월 들어 증권가가 제시한 삼성전자의 목표가는 현재 평균 50만원 선이다. 최고 58만5000원(다올투자증권), SK하이닉스의 목표가는 최고 430만원(한화투자증권)까지 제시됐다.
시장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자산운용업계의 ETF 상품 설계다. 최근 지수 전체를 추종하는 전통적인 인덱스 펀드보다 확실한 주도주 섹터와 그 핵심 밸류체인에 집중 투자하는 압축형 ETF(상장지수펀드)로 거액의 자금이 쏠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코리아 ‘AI S4’로 불릴 만한 시가총액 상위 기업 4개가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스퀘어, 삼성전기다. 시총 톱4인 이들은 글로벌 AI 허브 및 첨단 IT 인프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원팀(One-Team)’ 생태계에 묶여 있다.
ETF 체크에 따르면 6월 25일 기준 국내 ETF 시장의 자금 순유입 상위권 역시 이러한 AI 및 반도체 주도주 집중형 상품들이 싹쓸이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2231억원)를 필두로 신한자산운용의 ‘SOL AI반도체TOP2플러스’(2166억원)에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렸다. 이외에도 ‘KODEX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2100억원), ‘HANARO Fn K-반도체’(1729억원) 등이 상위권에 포진하며 반도체 생태계로의 자금 쏠림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엔 한국투자신탁운용도 ‘ACE K반도체TOP2+’ ETF를 신규 상장했다.
상위권 ETF의 공통점은 레버리지 상품을 제외하면 전부 ‘S4’ 종목에 집중해 총 88% 이상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하재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반도체 ETF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에 삼성전기, SK스퀘어 등 대형주 비중을 더욱 높이고 있다”며 “ETF 수급 쏠림이 강화될수록 시장 변동성 확대와 더불어 대형주의 상대적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조건은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코스피 8500선 이하로 조정이 올 때마다 분할 매집하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코스피 9000선 이상에서는 최근 상승을 이끌어온 주도주에 대한 무리한 추격 매수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주도주 그다음은AI·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긴 호흡에서 주목할 것은 또 있다. 대형주의 온기가 다음 주자로 확산하는 ‘순환매 법칙’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진짜 폭발적인 수익률을 낼 ‘숨은 보석’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섹터다. 반도체 소부장 투자에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명확한 시차가 존재한다. 이른바 ‘P(가격)의 상승 → Q(물량)의 확대 → 증설(장비)’로 이어지는 3단계 사이클이다.
지금의 장세가 1단계다.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완연해지면 전방 수요처들의 물량 확보 경쟁이 본격화된다. 칩메이커들이 감산을 끝내고 공장 가동률을 올리는 순간 반도체를 만들면 만들수록 소모되는 케미컬(소재)과 테스트 소켓(부품) 기업들의 실적이 무서운 속도로 턴어라운드한다. 2단계다.
시장 일각에서는 대형주가 이미 5~7부 능선까지 올라와 소부장 진입이 늦었다고 우려하지만 역사적 활황기 속에서 소재·부품주는 대형주가 달린 이후에 본격적인 급등을 경험하곤 했다. 특히 이번 사이클은 과거보다 파괴력이 훨씬 크다.
사이클의 최종장은 공장 라인을 새로 깔고 기계를 들이는 ‘증설(장비)’ 단계에서 완성된다. 수주 규모가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장비주들은 업황이 나쁠 때는 적자에 허덕이지만 대형사들의 증설 발표와 맞물리는 활황기 막바지에 마지막 슈팅을 쏘아 올린다. 다만 증설 발표는 향후 공급과잉을 유발하는 고점 시그널이 될 수 있어 철저히 수주 잔고의 연속성을 확인하며 접근해야 한다.
한용희 그로쓰리처치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가격 상승이 업황을 주도하는 사이클에서는 메모리 생산업체들이 최선호주로 부각되지만 이후 판매량 증가를 위해 설비투자를 집행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그 자금이 전·후공정 장비와 소재 밸류체인으로 향한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소부장으로 낙수효과가 확산되는 구간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소부장은 삼양엔씨켐, 티씨케이, 솔브레인, 동진쎄미켐, 하나머티리얼즈, 원익QnC, 원익머트리얼즈 등이다.
다만 소부장 섹터 내에서도 전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록호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단기 급등했기 때문에 신규로 추격 매수하기보다는 기존 보유 물량을 유지하는 전략이 유효하다”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주가가 덜 오른 소재 및 소모품 업체들에 대한 중장기적 접근을 고민해 보는 것이 현시점에서 현명한 전략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반기 또 다른 트리거는 미국의 중간선거 국면과 맞물린 지정학적 역학관계다. 11월 선거가 다가올수록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국내 정세와 증시 밸류체인을 흔들 핵심 변수로 부각될 전망이다.
현재 미국 내 정치적 지형은 트럼프에게 녹록지 않다. 이 때문에 시장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면 전환과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해 이른바 ‘이슈를 이슈로 덮는’ 대외 외교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쿠바 제재와 더불어 트럼프가 꺼내들 유력한 카드 중 하나로 ‘북한’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1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별다른 설명 없이 2018년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산책하는 사진을 올렸다. 6월 24일 방한한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 역시 제주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북한으로 시선을 돌렸다”며 “여전히 외교적 역할의 공간은 남아 있다”고 진단하며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었다.
이 같은 미국발 외교 기류의 변화는 국내 증시에서 방산주와 남북경협주라는 상반된 테마의 순환매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대북 메시지와 지정학적 긴장 고조 시기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실적이 뒷받침되는 K-방산주가, 북·미 대화 재개나 극적인 모멘텀 등 미국발 외교 호재가 날아들 경우엔 남북경협주가 단기적으로 강한 랠리를 펼치며 틈새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하반기 코스피 1만 시대를 향한 여정에서 기술주 주도 장세를 주목하되 트럼프의 입을 포트폴리오의 영리한 기회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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