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2014년 빈티지 샤토 라투르 한 병을 어렵게 구했다. 와인서처(세계적인 와인가격 비교 전문 플랫폼)의 글로벌 평균 가격은 137만원(7월 1일 현재, 세금 제외). 운 좋게도 98만원에 득템했다. 와인 판매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전용 셀러에 보관하던 와인이다. 맛과 품질에 믿음이 가 선뜻 비용을 지불했다.
‘샤토 라투르’는 프랑스 보르도 메독(오메독 포함) 지역의 6개 마을 아펠라시옹 중 하나인 포이약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그랑 크뤼 1등급으로 ‘전장을 지키는 장군’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샤토 오브리옹과 샤토 마고,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와 함께 이른바 ‘보르도 5대 샤토’로 알려진 최고급 와인이다.
이 와인의 최대 경쟁력은 ‘단단한 구조감과 숙성 잠재력 그리고 품질의 일관성으로 정리된다. 포도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90% 사용했으며 별칭 의미 그대로 보르도 와인 중 가장 남성적인 와인이다. 특히 입안을 꽉 조여 주는 타닌감과 묵직한 보디감, 강한 산도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6월 중순 서울 강남 프리미엄 와인 다이닝에서 샤토 라투르를 드디어 오픈했다. 스파클링과 화이트 와인에 이어 세 번째로 마셨다.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아 디켄팅(마시기 전 와인을 공기와 접촉시키는 절차)까지 마쳤다. 그러나 맛을 본 멤버들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물처럼 밍밍하고 별다른 향도 느낄 수 없다’는 것. 큰 충격이었다.
이 와인을 세 차례 마셔본 필자 역시 잔을 아무리 흔들어 봐도 예전에 잡아냈던 분위기는 올라오지 않았다. 짙고, 깊고, 무거운 맛과 향은커녕 타닌감도 거칠어 ‘가짜 와인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모임이 끝날 즈음에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시음 적기’에 대한 오해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샤토 라투르 2014 빈티지는 포도 수확 후 8년, 병입 후 6년이 지난 2022년 3월에 출시됐다. 그러고도 4년이 지난 올해 마셨는데도 전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 정체기인 ‘침묵의 시기(Dumb Phase)’에 진입한 것. 빈티지 차트를 살펴보니 시음 적정 시기는 2028~2060년으로 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 시음적기를 정확히 맞춰 와인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몇 명이나 될까. 과연 디켄팅으로 풍미를 충분히 보정할 수 있을까. 와인을 마시면서 편하게 즐기고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적정가격의 신세계 프리미엄 와인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보르도 와인 등급 분류는 1855년에 시작됐다.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네고시앙(와인 도매상)들이 판매 가격, 주문 수량 등을 반영해 결정했다. 그로부터 171년이 지났다. 그동안 포도 재배와 양조, 유통에서 엄청난 기술적 향상이 있었고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컬트 와인이나 이탈리아의 슈퍼 투스칸, 남미의 아이콘 와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날 다행히 네 번째로 마신 미국 나파 밸리 와인으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직관적인 과실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이 훨씬 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맛과 향이 익숙한 와인이다. 특히 장기 숙성 없이 바로 마시기 좋고 가격 또한 10만원대로 부담이 적었다.
신세계 와인 좋아하는 다수의 와인 애호가들이 더 큰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소비패턴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볼 일이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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