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는 이번 기획에서 서울 집값을 움직이는 새로운 변수들을 추적했다. 시장을 움직이는 새로운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를 데이터와 현장 취재를 통해 짚어봤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 아파트값은 지난 1년 새 수억원씩 뛰었다. 서울 아파트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보다 비싼 주택시장으로 꼽히고, 프라임(초고가) 주택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 예상되는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도 커지면서 서울 부동산은 국내 주거시장을 넘어 글로벌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서울 집값을 움직이는 힘도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자본의 유입과 풍부한 유동성, 상속·증여에 따른 매물 잠김, ‘지금 사지 않으면 더 오를 것’이라는 포모(FOMO) 심리까지. 집값을 떠받치는 새로운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작동하고 있다.
◆강남·용산 아파트 ‘쇼핑’하는 미국인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1·2차 전용면적 198㎡가 105억원에 거래됐다. 매수자는 미국인이었다. 단지 최초의 ‘100억원 돌파’ 거래이자 직전 최고가를 10억원 이상 뛰어넘은 사례였다.
이 거래 이후 해당 단지의 최고가는 지난해 6월 120억원(196㎡), 8월 130억원(196㎡)으로 올라섰다. 전용 198㎡도 지난해 6월 117억8000만원으로 신고가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서도 같은 면적 1층이 97억원에 거래된데 이어 4~5월 각각 110억원, 102억원에 손바뀜되며 높은 가격대를 유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똘똘한 한 채’ 전략이 서울 집값 흐름에 영향을 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아파트 시장은 수많은 거래의 평균값으로 움직이기보다 일부 초고가 단지에서 형성된 신고가가 향후 거래의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신고가는 이후 거래의 기대 수준을 끌어올리며 시장 전반의 호가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한경비즈니스가 법원 등기정보광장을 분석한 결과 올해 1~6월 서울에서 집합건물(아파트·빌라·오피스텔·다세대주택 등)을 매수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외국인은 875명으로 집계됐다. 숫자만 보면 시장을 흔들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32.1%인 281명은 강남3구와 용산·마포·성동·광진 등 한강벨트에서 집을 샀다. 외국인 3명 중 1명은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핵심 입지를 선택한 셈이다.
특히 미국인. 강남3구와 한강벨트에서 집을 산 외국인 가운데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1.6%에 달했다. 부동산 시장이 뜨거웠던 지난해 9월에도 강남3구와 용산에서 체결된 외국인 매수 56건 중 69.6%(39건)가 미국인이었다.
외국인 규제(지난해 8월 토지거래허가제)로 최근 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인의 서울 전체 주택 매수 건수는 지난해 하반기 308건에서 올해 상반기 265건으로 줄었지만 강남3구와 용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35.3%에서 49.0%로 확대했다. 미국인 매수자 2명 중 1명꼴로 강남과 용산에 집중한 셈이다.
미국인의 서울 핵심 자산 집중은 기존 보유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4년 말 기준 미국인이 보유한 서울 아파트는 총 5678채다. 이 가운데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만 2228채가 몰려 있으며 전체의 약 39%를 차지한다. 여기에 마포·용산·성동 등 한강벨트까지 포함하면 미국인이 보유한 서울 아파트의 약 60%가 핵심 입지에 집중했다.
반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에 대한 관심은 줄어드는 흐름이다. 미국인의 해당 지역 매수 비중은 지난해 초 9.3%에서 올해 초 7.5%로 낮아졌다.
서울은 이미 가격 측면에서도 글로벌 주요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도이체방크 리서치가 69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 물가 지도 2025’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1㎡당 아파트 가격은 2만2875달러(약 3106만원)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런던(2만953달러)과 뉴욕(1만8532달러)보다 높은 수준이다. 1위는 홍콩, 2위는 취리히, 3위는 싱가포르였다.
상승 흐름도 가파르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말 기준 서울 상위 5% 프라임 주택 가격은 전년 대비 25.2% 상승하며 도쿄(55.9%)에 이어 주요 도시 중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부동산 기업 세빌스(Savills)는 2026년 서울 프라임 주택시장이 6~7.9%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며 조사 대상 주요 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제시했다. 같은 기간 뉴욕은 0~1.9%, 도쿄와 마드리드는 4~5.9%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연초부터 이어진 고환율 흐름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까지 오르면서 달러를 보유한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서울 부동산의 달러 기준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한국 부자들은 최근 규제 강화로 서울 부동산 시장을 관망하는 분위기지만, 달러를 보유한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원화 약세(환율 상승)로 서울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바겐세일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서는 최근 ‘셔세권(삼성전자·SK하이닉스 통근 셔틀버스 역세권)’과 ‘반세권(반도체 산업단지 인접 지역)’이라는 신조어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 호황이 단순 고용 확대를 넘어 주거 수요 지형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에 따른 성과급 확대와 무주택 직원 대상 사내 대출 등까지 포함해 내년까지 최대 50조원이 넘는 유동성이 추가로 부동산 시장에 유입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기대는 실제 수도권 일부 지역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경기 화성시 동탄에서는 삼성전자 성과급 발표 전후로 거래 기대 심리가 급격히 확대하며 가격 변동성이 커졌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동탄역세권 인근에서는 ‘21억원 거래설’ 등 비공식 정보가 시장에 퍼지며 가격 기대감이 먼저 형성했고, 일부 거래에서는 이를 근거로 고가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 거래 흐름에서도 상승세를 확인할 수 있다. 동탄역세권 대장주로 꼽히는 ‘동탄역 롯데캐슬’ 전용 84㎡는 지난 6월 4일 22억2500만원에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뒤 현재 호가가 26억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한두 달 전 19억~20억원 수준의 실거래와 비교하면 최대 6억~7억원 상승한 수준이다.
통화량 자체가 확대하며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의 광의통화(M2)는 2021년 이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15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 우리 경제가 한 해 동안 창출하는 총부가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시중에 풀려 있다는 의미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예금,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상대적으로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통화를 포함하는 대표 통화량 지표다. 주식·채권 등 투자성 자산은 제외한다.
한국의 유동성 수준은 주요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미국의 GDP 대비 M2 비율은 71.4%로 한국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유로 지역의 GDP 대비 M3 비율은 108.5%로 나타났다. 유로 지역은 광의 통화량을 M2가 아닌 M3로 표시한다.
◆주식으로 번 돈, 포모로 아파트 매수
부동산 투자자들이 모인 온라인 대화방에서는 “주식판에서 돈 복사가 일어난 뒤에는 결국 집값이 오른다. 다들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경고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증시로 몰린 돈이 결국 부동산으로 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진행된 ‘주식으로 돈 벌면 집을 산다 vs 안 산다’ 설문조사 결과는 이러한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참여자 103명 중 84%(87명)가 “상황을 봐서 사겠다”고 답하며 주식 수익을 부동산으로 옮길 가능성을 열어뒀다.
실제 경험담도 적지 않다. 부동산 커뮤니티 한 이용자는 “주식으로 번 돈을 전부 정리하고 은행과 회사 대출을 더해 서울 노원구 일대 아파트를 13억원에 계약했다”며 “언제까지 주식이 오를지도 모르고 결국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가장 믿을 만한 자산, ‘킹동산’”이라고 적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또 다른 이용자는 “살고 있던 전셋집을 매매로 전환했다. 집값이 너무 올라 부담이 컸고 대출까지 막혀 막막했는데 그나마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고 전했다.
주식을 팔아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배경에는 단순한 수익률 계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오른다는 믿음이 여전히 강하다. 사는 곳의 위치와 아파트 브랜드는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집값이 더 오르면 어쩌지 싶은 포모 심리, 자녀 교육(학군)과 전월세 이동에 따른 잦은 전학을 피하려는 현실적인 고민까지 더해지면서 주식 투자로 얻은 수익은 다시 ‘내 집 마련’으로 향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금조달계획서를 보면 올해 1~5월 서울·경기 주택 매수에 투입된 자금 가운데 주식·채권·가상자산 매각 대금은 4조9671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7022억원)보다 약 3배(192%) 늘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전체 주택 매수 자금이 26% 증가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주식이나 코인을 처분해 집값에 기댄 속도는 이보다 훨씬 빨랐던 셈이다. 전체 주택 매수 자금에서 주식·채권·가상자산 매각 대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7%에서 6.2%로 두 배 이상 커졌다.
한국은행의 분석도 비슷하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주식 자산효과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입 자금조달계획서 내 주식·채권 매각 대금 비중은 지난해 5월 4.9%에서 올해 1월 8.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보고서는 무주택 가계가 주식 투자로 얻은 자본이득의 상당 부분을 다시 부동산 매입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무주택 가계가 주식으로 번 돈의 약 70%를 부동산 자산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했고 주식 수익률이 높은 가계일수록 유주택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주식을 통한 자산 증식이 결국 ‘내 집 마련’으로 향하고 있단 얘기다.
물론 시장 일각에서는 “대출을 많이 활용할 수 있던 부분이 부동산 투자의 메리트였는데 이젠 사라졌다”, “거주는 전·반전세로 해결하고 자금은 금융자산으로 굴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또 “부자들은 현금이 있어도 지금은 주식 투자를 한다”, “다주택 규제로 부동산 팔고 주식으로 향하는 금액이 훨씬 크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핵심 지역에서는 집을 팔기보다 가족에게 넘기는 사례가 늘면서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자금조달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1~4월 강남3구 주택 매수자들의 자금조달 방식 가운데 증여·상속 자금 비중은 7.2%로 서울 평균(6.4%)을 웃돌았다. 대출 규제로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워진 데다 서울 핵심지의 자산 가치가 장기적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맞물리면서 상속·증여를 통한 자산 이전과 매수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번 확보한 핵심 입지는 쉽게 시장에 다시 나오지 않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신규 공급마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서울 주택 착공 물량은 7023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감소했다. 특히 아파트 착공은 4564가구에 그쳐 전년 대비 33.4% 급감했다. 앞으로의 공급을 가늠할 수 있는 인허가 실적 역시 같은 기간 서울 주택은 24%, 아파트는 32.6% 줄었다.
착공과 인허가 감소는 수년 뒤 입주 물량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114는 내년 서울 입주 예정 물량을 1만1349가구로 전망했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2027~2029년 연평균 입주 예정 물량도 약 1만 가구 수준으로 최근 3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 닥친 공급 절벽의 심각성은 정부의 다급한 목소리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서울시와 논의해야 한다”며 “(집을) 닥치고 지어야죠, 닥치고”라는 이례적으로 거친 표현까지 썼다. 서울의 매매·전세·월세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주택난의 원인을 ‘공급 부족’으로 규정하고 정책 방향을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급선회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다만 이 발언을 두고 정치적 해석도 분분하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닥치고 공급(2031년까지 31만 가구 순증)’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규제완화를 위해 여당을 설득하겠다는 취지지만 이면에는 야당 자치단체장에게 쏠린 서울 공급 정책의 주도권을 청와대가 다시 가져오겠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돈은 넘쳐나는데 새 아파트는 부족하다. 기존 매물은 상속·증여로 시장에서 잠기고 신규 공급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정부가 공급 확대 의지를 내비쳤지만 시장이 체감할 만한 대책이 현실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사이 서울 집값을 떠받치는 구조적 요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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