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상품은 변동성이 반복될수록 음(-)의 복리효과가 누적돼 손실이 확대된다.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도 투자금은 원상복구되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오래 들고 있으라고 설계된 상품이 아니다”
착시(錯視)라는 말이 있다. 눈은 분명히 무언가를 보았는데 뇌가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현상이다. 그날의 코스피가 정확히 그랬다. 시장 전체가 합창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마이크를 쥔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목소리뿐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몇 배로 키운 것은 이날 국내 증시 역사상 처음 등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열여덟 종의 새로운 상품들이었다. 지수라는 창을 통해 시장을 바라보는 습관에 익숙한 투자자일수록 이런 왜곡을 알아채기가 더 어렵다는 점도 함께 짚어둘 필요가 있다.
◆확성기의 정체와 속도
레버리지 ETF의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기초자산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로 따라가도록 설계돼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 ‘두 배’를 매일 정확히 맞추기 위해 상품이 매일 저녁, 장 마감 무렵마다 몸집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주가가 오르면 목표 배율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로 사들여야 하고 주가가 내리면 노출을 줄이기 위해 팔아야 한다. 오르는 날엔 사고 내리는 날엔 파는 이 리밸런싱은 방향을 거스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날의 움직임을 한 번 더 밀어주는 쪽으로 작동한다. 마치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뒤에서 볼륨 손잡이를 슬쩍 올려버리는 것과 같다. 목소리의 크기가 노래의 잘잘못과는 무관하게, 그저 기계적으로 커지는 셈이다.
그리고 이 볼륨 조정은 하필 장이 끝나기 직전, 가장 많은 상품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대에 집중한다. 여러 운용사의 리밸런싱 물량이 같은 시각에 겹치면 그 순간의 수급은 종목 자체의 펀더멘털과는 상관없이 출렁인다. 확성기가 커질수록 원래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리밸런싱 물량이 시장 전체로 보면 크지 않더라도 특정 두 종목에 집중할 경우 그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이다. 확성기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좁은 통로로 몰리는 자금의 밀도는 오히려 더 높아진다.
이 확성기가 얼마나 빨리 커질 수 있는지는 이미 홍콩 시장이 보여준 바 있다. 지난해 상장된 홍콩 소재 SK하이닉스 2배 레버리지 상품은 초기 자산 규모의 약 2000배로 불어났고 삼성전자 레버리지 상품도 400배 넘게 성장했다. 해외로 흘러나가던 국내 투자자의 반도체 레버리지 수요가 그만큼 뜨거웠다는 뜻이고 이번 국내 상장이 그 수요를 되돌리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내 상장 이후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레버리지 ETF에는 8조원이 넘는 개인 자금이 순유입했다. 하루 상장 규모만 4조3000억원을 넘어서며 국내 ETF·ETN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확성기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훨씬 크게 켜졌다.
◆합창의 착시와 대가
문제는 이 확성기가 시장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장 첫날의 풍경이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SK하이닉스는 장중 9% 넘게 뛰었고 삼성전자도 강세를 보이며 지수를 밀어 올렸지만 정작 코스닥과 중소형주 쪽에서는 매도가 이어졌다. 반도체 대형주 두 종목과 그 위에 얹힌 레버리지 상품이 지수의 얼굴을 사실상 독차지한 것이다.
지수만 보는 투자자에게는 시장 전체가 축제처럼 보였겠지만 개별 종목 창을 열어본 투자자에게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같은 시장을 보고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상황, 이것이 바로 확성기가 만든 합창의 착시다.
레버리지라는 확성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른바 음(-)의 복리효과다. 지수가 20% 떨어졌다가 다시 20% 오른다고 가정해보자. 일반 상품이라면 100에서 80을 거쳐 96이 돼 4%의 손실로 그친다. 그런데 2배 레버리지 상품은 40% 떨어졌다가 40% 오르는 셈이 돼 100에서 60을 거쳐 84가 된다. 손실은 16%로 불어난다.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와도 레버리지 상품의 원금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변동성이 클수록 이 손실은 더 커진다. 그래서 이 상품은 애초에 오래 들고 있으라고 설계된 물건이 아니다. 확성기를 며칠씩 켜두면 정작 확성기 자신의 배터리가 먼저 닳아버리는 셈이다.
한 가지 더 짚을 대목이 있다. 임원의 자사주 거래는 공시 의무가 있지만 같은 임원이 자사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레버리지 ETF를 사고파는 것은 현재 공시 대상에서 빠져 있다. 확성기 뒤편에 감시의 손이 닿지 않는 그림자가 생긴 셈이다.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악기가 등장하면 그 악기를 다루는 규칙도 함께 손봐야 한다.
◆확성기 너머를 보는 눈
그렇다고 이 확성기를 무작정 꺼버릴 이유는 없다. 해외로 빠져나가던 자금이 국내로 돌아올 통로가 열렸다는 점, 현물과 선물 시장의 유동성이 함께 늘어난다는 점, 국내와 해외 상장 상품 간의 비대칭 규제가 해소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은 분명한 긍정적 신호다. 확성기도 잘 쓰면 무대를 살리는 장치가 된다. 다만 누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그 손잡이를 쥐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눈이 필요할 뿐이다.
은행 프라이빗뱅커(PB)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조언은 간단하다. 지수가 웃고 있다고 해서 시장 전체가 웃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레버리지 상품은 방향에 대한 확신이 짧고 강하게 설 때 활용하는 단기 도구이지 오래 품고 가는 자산이 아니다. 그리고 지수를 볼 때는 한 번쯤 그 안에 몇 개의 확성기가 켜져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길 권한다.
합창처럼 들리는 소리가 실은 두 사람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투자자는 한 걸음 더 냉정해질 수 있다. 결국 시장을 읽는다는 것은 화면 속 숫자 하나를 믿는 일이 아니라 그 숫자 뒤에서 실제로 누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습관에 가깝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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