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트렌드]
MIT 미디어랩은 초기 소셜 로봇 연구로 잘 알려진 연구소이다. 소아 병동에서 어린 환자의 불안을 덜어주는 곰 인형 로봇 ‘허거블(Huggable)’, 아이들의 언어 학습을 돕는 털복숭이 캐릭터 로봇 ‘테가(Tega)’, 스마트 스피커처럼 생겨 조명과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지보(Jibo)’, 체중·건강 관리 습관을 바로잡아 주는 ‘오톰(Autom)’, 상반신은 사람 모양이고 하체는 바퀴로 된 ‘넥시(Nexi)’ 등은 모두 미디어랩의 연구 성과들이다.
특히 ‘레오나르도(Leonardo)’는 미디어랩과 할리우드 특수효과 업체가 함께 만든 로봇으로 약 16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어 ‘거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미디어랩의 소셜 로봇 기술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에 나온 곰 인형 로봇 ‘테디’를 만드는 데도 쓰였다고 한다.
소셜 로봇의 본격적인 상업화를 처음으로 시도한 기업은 일본 소프트뱅크이다.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페퍼는 약 120cm의 키에 상반신은 사람 모양이고 하체는 바퀴를 달고 있는 흰색 로봇이다. 가슴에 큰 터치 화면을 달고 있고 얼굴의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머리·손·몸통의 센서로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접촉을 감지할 수 있었다.
페퍼는 사람과의 대화에 최적화된 로봇이었으므로 힘을 쓰는 육체 노동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와 소통, 그리고 매장·은행·병원 같은 곳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일에 주로 쓰였다. 페퍼에는 규칙 기반 AI인 IBM의 ‘왓슨(Watson)’을 이용한 대화형 AI가 들어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생성형 AI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퍼의 AI는 비록 초기 대화형 AI였지만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개체가 보고 듣고 만진 정보와 사용자 반응을 클라우드에 모아 전 세계 수천 대의 페퍼가 함께 공유하며 학습하는 구조였다. 또 스마트폰처럼 필요한 앱을 내려받아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방식을 지향했다.
페퍼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의 감정을 알아채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표정, 목소리 톤, 말의 내용, 접촉 방식을 분석해 기쁨·슬픔·화남 같은 감정을 짐작하고 그에 맞춰 말투·표정·몸동작을 바꿔가며 사람과 교감했다.
페퍼는 2015년 출시 초기에 한 달 판매분 1000대가 단 1분 만에 매진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2021년까지 약 2만7000대가 팔렸는데 2026년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다만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2015년 일본 내수용 기준으로 본체 값은 약 19만8000엔이었지만 여기에 3년간 매달 내야 하는 대화 앱 사용료, 보험료, 통신비를 더하면 총 약 140만엔(약 1400만원)에 달했다. 개인이 사기엔 비쌌지만 사람 인건비보다는 저렴해 주로 기업이 빌려 쓰는 구독형 모델로 공급됐다.
페퍼는 일본어, 영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사람과의 소통 기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AI 기술로는 자연스러운 대화에 한계가 많았다. 음성을 알아듣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반응이 느려 시리나 빅스비 같은 스마트폰 음성비서보다 대화가 매끄럽지 못했고 같은 질문과 답을 반복하는 일이 잦았다. 감정을 잘못 읽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손님 응대나 안내 기능도 시원치 않았고 호텔이나 식료품점에서는 손님들이 로봇보다 사람 직원을 더 찾아 결국 로봇을 일찍 철수시킨 사례도 있었다. 생성형 AI 만나 다시 떠오르는 소셜 로봇로봇용 AI 기술은 대화를 넘어 보고 듣고 실제로 행동까지 하는 VLA(비전-언어-행동) 모델과 세상의 물리적 원리를 학습하는 월드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소셜 로봇 분야에서는 물건을 직접 다루는 VLA 모델의 사용은 아직 연구 단계에 있다. 소셜 로봇의 용도가 육체 노동보다 대화 등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셜 로봇에는 아직도 머신러닝, 규칙 기반 AI 등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치매나 인지장애를 겪는 고령자의 정서 안정용으로 개발된 미국의 강아지 로봇 제니(Jennie)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AI를 사용하고 있고 자유로운 대화 기능은 제한적이다. 일본의 ‘러봇(Lovot)’과 ‘모프린(Moflin)’도 정해진 학습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움직인다.
그러다 이제는 소셜 로봇에도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하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이 도입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고령자나 치매·우울증 환자처럼 마음이 취약한 이들을 위해 자연스러운 대화와 돌봄 서비스를 결합한 소셜 로봇이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감정 인식과 자유로운 대화를 결합해 사람이 지나치게 로봇에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로봇까지 나와서 윤리적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LLM을 탑재한 대표적인 소셜 로봇으로는 미국의 ‘엘리큐3(ElliQ 3)’와 한국의 ‘효돌’이 있다. 엘리큐3는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외로움을 겪는 노인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생성형 AI를 탑재한 최신 모델은 2024년에 공개됐다. 뉴욕주 등 미국 여러 주정부가 노인 돌봄 예산으로 이 로봇을 무상 보급했는데 900대 이상을 나눠준 시범 사업에서 노인들의 외로움이 줄고 삶의 질이 나아지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한다.
엘리큐3는 움직이는 머리와 화면이 결합된 탁상형 로봇으로 빛·움직임·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한다. 정해진 대화 규칙과 사용자 상태 관리를 담당하는 AI에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LLM을 결합한 방식이다. 그래서 음성과 문자로 각종 질문에 답하고, 시나 그림 같은 창작물을 만들어내며, 삶의 의미 같은 깊은 주제로도 대화할 수 있다.
한국의 ‘효돌’은 빠른 속도의 고령화와 독거 노인의 증가, 그리고 의료·복지가 부족한 지역의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소셜 로봇이다. 효돌은 정서적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아이나 손주를 떠올리게 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몸통에 스피커·마이크·통신 장치와 센서를 넣어 사용자의 위치나 외출·귀가 패턴을 파악하고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보호자나 지방자치단체에 경고를 보낸다. 대규모 실증 사업에서는 우울증 고위험군이 35.7%, 고립감 고위험군이 24.7% 줄어든 효과가 확인됐다.
효돌의 2세대 모델에는 여러 종류의 AI가 함께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오픈AI의 챗GPT 계열 LLM은 음성으로 편안하게 일상 대화를 나누고 건강·생활 알림을 자연스러운 말로 전한다. 또 다른 AI는 출입·응답 패턴이나 부재 시간 같은 행동 정보를 분석해 우울·고립 위험도를 예측하고 알림 기능을 작동시킨다. 여기에 노인 정신건강·돌봄 전문가와 함께 만든 위험 신호를 판별하고 상담으로 연결하는 규칙을 담은 AI도 탑재돼 있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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