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1심 뒤집고 라이더 승소 판결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의 한 대학가에 배달 라이더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대학가에 배달 라이더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배달 라이더는 개인사업자일까 근로자일까. 계약 형태만 보면 개인사업자가 분명하다. 회사와 근로계약이 아니라 업무 위탁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처음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와 법조계와 유통업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8-1부(고법 판사 이지영·황성미·박성윤)는 라이더 A 씨가 배달 플랫폼 운영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 무효 및 임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 7월 3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GPS 통해 실시간 위치 조회

A 씨는 2021년 5월 피고인 B 회사와 배송 대행 업무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B 회사는 같은 해 12월 업무위탁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A 씨에게 대여해준 오토바이와 배달 조끼 반납을 요구했다.

A 씨는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사실상 B 회사의 근로자로 일했는데 B 회사가 해고의 절차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본인을 내보냈다는 취지다. 그러나 회사 측은 ‘A 씨는 B 회사의 근로자다’는 A 씨 주장의 전제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맞섰다.

B 회사의 요금 정산 방식과 근무 형태 등을 살펴보자. 라이더는 배달을 완료할 때마다 가맹점·이용자가 B 회사에 지급한 배달료에 일정 수수료 등을 공제한 금액을 지급받았다.

구체적 산식은 ‘기본 배달료+할증 배달료+타 라이더의 페널티-라이더 수수료-고용보험·산업재해보상보험료’였다. 라이더는 이 산식 각 항목의 액수나 지급 기준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었다. 이와 별도로 고정금이나 상여금 등은 따로 받지 않았다.

B 회사 지점 소속 라이더는 전일제 라이더와 파트타임 라이더로 구분된다. 파트타임 라이더엔 오전반(오전 9시 또는 10시~오후 8시 또는 9시)과 오후반(오후 5시 30분~오전 12시 또는 1시)이 있었다.

라이더는 B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배달 업무를 개시하기 전에, 근무 형태 및 휴무일을 포함한 구체적인 근무 시간을 협의했다. 회사는 관리자용 프로그램을 통해 라이더의 출퇴근, 휴식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라이더가 조퇴하거나 휴가를 사용하려는 경우 팀장에게 사유를 보고해야 했다. 배달 업무는 앱을 통해 수행됐다. 라이더가 앱에서 현재 상태를 ‘근무’로 바꾸면 배달 가능한 주문 목록이 표시됐다.

라이더가 앱을 사용하지 않고 이용자와 직접 접촉해 주문받아 B 회사의 배달 업무를 수행할 순 없었다. B 회사 관리직은 GPS 기능이 지원되는 관리자용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배달을 하는 라이더의 소속과 직급, 수행 중인 배달 건수, 실시간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특정 라이더가 지나치게 먼 거리의 주문을 수락해 배달 지연 등이 예상되면 관리직이 해당 라이더에게 연락해 배차 취소를 권고하기도 했다. B 회사의 지점에선 관리직과 라이더의 업무적 소통을 위한 팀별 카카오톡 단체방을 운영했다.

관리직은 이 단체방에서 배차 관련 지침 전달, 배달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의 출근 독려, 특정 가맹점에 대한 배차 요청, 복장 등 주의사항에 관한 공지 메시지를 보냈다.

법원 “종속적 관계서 근로 제공”

법원은 이 같은 근무 형태를 살펴볼 때 A 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라이더들이 주문 콜을 받는 여러 수단 중 하나로 B 회사 앱을 선택한 게 아니라 B 회사 앱을 통해서만 배달 업무를 수행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외형만 보면 (B 회사 플랫폼은) 이용자와 가맹점, 라이더를 단순 중개하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B 회사의 사업 실질은 ‘상품 배달 서비스’를 구축·운영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업무 내용이나 보수 산정 과정에 라이더들이 관여할 수 없는 구조도 원고 승소 판결의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재판부는 “라이더의 배달 업무를 형성하는 기본 단위인 ‘배차’는 피고 회사가 설계한 체계에 의해 구조적으로 결정됐다”며 “원고의 보수는 업무 수행의 결과와 무관하게 B 회사가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지급됐고 보수의 종류, 액수, 정산 과정 각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피고 회사의 통제하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원고가 지급받는 보수는 배달 건수에 비례해 결정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는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한 노무 제공의 특성에 기인할 뿐 원고를 독립사업자로 볼 징표는 아니라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건별로 산정되는 보수는 실질적으로 일정한 노동 단위에 대해 지급되는 정형화된 대가로 볼 여지가 있다”며 “건별로 지급되는 대가라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론 원고의 근로에 대한 대가적 성격을 가진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 씨는 임금을 목적으로 B 회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종속적인 관계에서 B 회사가 운영하는 배달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근로를 제공했다”고 결론 내렸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플랫폼사는 이번 판결 취지에 맞게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법상 권리 보장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밝혔다.


[돋보기]
배달 라이더 임금 산정은 어떻게?

이번 사건에서 원고(배달 라이더)는 해고 무효뿐 아니라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8-1부(고법 판사 이지영·황성미·박성윤)는 B 회사가 A 씨에게 미지급 임금 1975만원 등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이 플랫폼 근로자의 임금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했는지도 관심을 끌었다. 원고인 라이더 A 씨는 해고 직전 3개월(2021년 9~12월)을 기준으로 월별 임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이더의 경우 일반 근로자에 비해 근로기간이 짧은데다 성수기 여부나 계절적 요인 등에 따라 수입의 변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직전 3개월 수입’이 통상적인 수입 수준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고의 전체 근로기간을 기준으로 월별 평균 수입을 산정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원고가 B 회사에 근무하던 중 지출한 오토바이 수리비와 과태료 등을 공제해야 하는지 여부도 쟁점이었다. A 씨는 “우연한 사고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한 금원”이라며 “해고 기간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상정할 수 없으므로 수입에서 공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라이더의 업무 특성상 통상적인 방식과 같이 월별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월별 임금액을 산정할 수 없다”며 “과거 실제 수입을 기초로 해고 기간의 월별 수입을 추정하는 이상 업무로 인해 원고에게 발생한 손실 부분도 포함해 원고의 수입을 추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