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도면보다 강한 '30년 운용의 힘', 한국 잠수함의 진짜 경쟁력 [김홍유의 산업의 窓]
세계 방산 시장에서 승패는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운용되는 전략사업인 잠수함 사업은 더욱 그렇다. 사업자는 선정될 수 있지만 실제 계약, 기술 이전, 유지보수 체계, 승조원 교육, 후속 군수지원, 성능 개량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따라서 최근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1차적으로 우리나라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를 완전한 실패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전략사업인 잠수함 사업은 일반 무기체계와 다르다. 한 번 계약하면 최소 30년에서 40년 이상 운용되고 유지보수 비용은 초기 획득 비용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단순히 설계를 누가 했는가보다 실제 누가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독일은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재래식 잠수함 설계기술을 보유해 왔다. Type-209, Type-214, Type-212 시리즈는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운용되며 높은 신뢰성을 확보하였다. 반면 대한민국은 독일식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30년간의 실전 운용 피드백을 반영해 세계에서 가장 승조원 친화적이고 정비 효율이 높은 독자 잠수함(KSS-Ⅲ)을 설계·건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국가이다. 장기간 운용을 통해 얻은 정비 기술, 승조원 교육체계, 유지보수 노하우는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국가 경쟁력이다. 여기에 국내 조선산업이 축적한 생산관리 능력과 품질관리 시스템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장보고급을 시작으로 손원일급, 도산안창호급으로 이어지는 독자적인 잠수함 발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특히 KSS-Ⅲ 사업은 독일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국형 전투체계, 한국형 소나, 한국형 추진체계, 국산 무장 체계를 대거 적용하여 독자 플랫폼으로 발전시켰다. 이제 대한민국은 단순한 라이선스 생산국이 아니라 세계 잠수함 시장에서 독자 경쟁력을 확보한 국가가 되었다. 바로 이 점이 캐나다 사업 이후도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다.

독일이 원천 설계기술로 시장을 선점해왔다면 대한민국은 독자적인 설계·건조 능력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실전 운용 피드백까지 결합한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성은 앞으로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더 큰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최근 북미 방산 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 내 공급망 활성화와 동맹국 간의 파트너십을 다각도로 고려하고 있으며 캐나다 역시 이러한 기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은 유연한 기술협력과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추어 이러한 북미 시장의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파트너다. 이러한 파트너십 확장의 핵심 열쇠는 바로 유지보수(MRO) 시장에 있다. 전략무기 사업의 진정한 부가가치는 단순 판매가 아니라 이후 40년 동안 지속되는 MRO에서 창출된다. 미국조차도 최근 해외 MRO 거점 확보를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추진하는 만큼 함정 MRO 분야에서 세계적 역량을 검증받은 대한민국은 향후 캐나다와 협력할 여지가 충분하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의 최종 본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현재 협상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릴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므로 단기적인 수주 실패 프레임에 갇힐 필요가 없다.

이제 우리가 당장 준비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바로 우리의 독보적인 잠수함 운용 실적을 세계 표준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해군이 림팩(RIMPAC) 훈련 등 수십 년간 축적한 잠수함 운용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자산화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운용 기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철저하게 검증된 실전 운용 데이터는 단순한 설계 도면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결과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남아 있는 협상 가능성을 치밀하게 파고들며 미래 거대 시장을 주도할 전략적 서막을 여는 것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방산 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