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행장 취임 첫 해 순이익 '반 토막'
실적 악화에도 본사 배당성향은 높여
인원 줄이고, 기부금 등 책임은 외면
○박종복 전 행장 ‘하이브리드’ 전략 성공
SC제일은행의 모태는 1929년 조선저축은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광복 이후 시중은행으로 전환해 1958년 제일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로 불리며 한국 금융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대출이 부실에 빠지면서 2000년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을 거쳐 2005년 SC그룹에 인수됐다. 인수 직후엔 국내 금융시장을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행장들이 경영을 맡아 2015년 3000억원 가까운 순손실을 내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한국인 행장인 박종복 행장이 경영을 맡아 반전의 기회를 맞았다. 박 행장은 “한국에서 소매금융을 하려면 전통을 가진 ‘제일’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며 SC그룹 이사회를 설득했다. 결국 2016년 은행 이름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서 ‘SC제일은행’으로 변경했다. 글로벌 은행이 진출한 지역에서 현지 이름을 쓰는 첫 사례로 꼽힌다. 박 행장은 SC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제일’이라는 토착 브랜드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을 추진했다. 박 행장 취임 이듬해인 2016년 223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SC제일은행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매년 3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알짜은행으로 거듭났다. 박 행장은 2025년 1월 7일 10년(4연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광희 행장 취임 이후 뒷걸음질
박 행장의 뒤를 이은 이광희 행장(아래 사진)은 기업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미국 웨슬리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이력도 화려하다. 메릴린치인터내셔널 뉴욕·홍콩·싱가포르 등에서 근무한 뒤 UBS증권 투자은행 전무를 거쳐 2010년 SC제일은행에 입행했다. 기업금융그룹장(부행장) 시절엔 박종복 행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 들어서도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SC제일은행의 1분기(1~3월) 순이익은 104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3% 감소했다. 은행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자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SC제일은행의 지난해 이자이익은 1조2076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 감소했다. 대출을 통해 벌어들인 이자수익도 2조4739억원으로 전년보다 6.1% 줄었다. 총여신 증가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자산운용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뺀 뒤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순이자마진(NIM)이 0.16%포인트 하락한 탓이다. SC제일은행의 NIM은 2024년 1.57%에서 2025년 1.41%로 낮아졌고 올 1분기에는 1.30%로 더 떨어졌다. 1분기 이자이익도 2915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5.14% 감소했다.
주요 경영 지표들도 뒷걸음쳤다. SC제일은행의 1분기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40%로 전년 동기보다 0.11%포인트 떨어졌다. ROA가 0.40%라는 것은 은행이 1000원은 굴려 연간 4.0원의 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8.23%에서 7.81%로 하락했다. ROE는 투입한 자본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내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건전성 지표도 하락세다. 3월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총자본비율은 17.23%로 집계됐다. 2023년 22.80%, 2024년 19.73%, 2025년 18.59% 등 떨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덩치(자산 규모)는 커졌지만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는 악화되고 있다”며 “장기적인 추세에 따라가는 은행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배당성향 높이면서 사회적 책임은 외면
이 행장은 고액 자산가 대상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IB)에 집중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의 올 1분기 비이자이익은 110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5.1% 늘어나는 등 성과도 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외국계 은행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혔던 글로벌 네트워크는 국내 은행들의 WM 역량 강화 등으로 예전만 못하다. 국내 기업대출 시장이 ‘금리 싸움’으로 펼쳐지고 있는 점도 몸집이 작은 SC제일은행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은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들도 대출금리를 1bp(0.01%포인트)까지 깎는 ‘금리 쇼핑’에 나서고 있다”며 “외국계 은행은 대기업의 해외 투자와 조달 정도만 경쟁력이 있을 뿐 국내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적 악화에도 SC제일은행의 배당성향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2025년 결산 배당액은 1250억원으로 전년(2320억원)보다는 줄었지만 순이익 감소를 감안한 배당성향은 70.1%에서 88.3%로 오히려 높아졌다. SC제일은행은 스탠다드차타드 북동아시아법인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지난해 런던과 싱가포르 등의 SC그룹 계열사에 ‘경영자문 등 용역수수료’(판매비와 관리비) 명목으로 1760억원을 지급했다.
반면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은 뒷걸음쳤다. 2024년 144억4000만원이었던 기부금은 작년엔 2억6900만원으로 98.1% 급감했다. 고용 인원도 특별퇴직 등으로 3542명에서 3340명으로 1년 새 202명 줄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이 기간 이광희 행장 등 SC제일은행의 연봉 상위 5명의 보수 총액은 87억4300만원에서 104억3700만원으로 19.3%(16억9400만원) 증가했다. 특히 이 행장의 작년 보수는 18억8600만원으로 이호성 하나은행장(9억900만원)과 이환주 KB국민은행장(7억1200만원) 등 주요 시중은행장보다 10억원 넘게 많았다.
여기에 SC제일은행은 정부가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청년미래적금 취급 기관에서 빠지는 등 정책금융의 책임도 회피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과거에도 전산개발 어려움 등을 이유로 청년희망적금, 청년도약계좌 등을 취급하지 않았다. SC제일은행은 서울 공평동 본점 건물 외벽 간판을 SC제일은행에서 ‘Standard Chartered’로 바꿔 달았다. ‘제일은행’이란 이름을 지운 것.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이해관계자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여겼던 박종복 전 행장과 달리 이광희 행장은 모기업(SC그룹) 중심의 경영을 펼치고 있다”며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은행답게 사회적 책임부터 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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