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 소프트웨어에서
AI로 정의되는 AIDV 시대 도래
중국식 속도와 실행력에 주목해야

중국 샤오펑. /연합뉴스
중국 샤오펑. /연합뉴스
대표적인 운송수단인 자동차는 전통적으로 내연기관 및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이다. 이러한 이유로 초기 자동차를 업계에서는 하드웨어 정의 차량(Hardware Defined Vehicle, HDV)이라 부른다.

HDV는 용어에서 느껴지듯 기능이 제한적이고 투박한 구조를 가졌다. 특히 내비게이션이나 브레이크 등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독립된 전자제어장치(ECU)를 개별적으로 추가하는 방식을 취해야 했다. 그 결과 각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비효율적이고 폐쇄적인 차량 구조가 특징이다.

문제는 하드웨어 중심 구조에 전자기기가 지속적으로 추가되면서 구조적 한계와 복잡성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량 전체를 통합 제어하는 중앙 집중식 컴퓨팅 구조와 차량 내 데이터를 신속히 주고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설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가진 HDV는 결국 스마트폰처럼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차량의 기능과 성능을 통합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oftware-Defined Vehicle, SDV)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 HDV에서 SDV 시대로의 전환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SDV로 본격 전환되기 시작한 시점은 2012년경이다. 그 중심에는 테슬라의 전기차가 있었다. 테슬라가 2012년 출시한 모델S에 세계 최초로 OTA(Over-The-Air) 기술을 도입하면서부터이다.

이 기술을 통해 테슬라 운전자는 자동차를 새로 구매하거나 서비스센터를 방문할 필요 없이 무선통신으로 버그를 해결하고 각종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하고 성능을 개선할 수 있게 되었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Autopilot) 기능의 업데이트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HDV 시대에서 SDV 시대로의 전환은 단순히 자동차가 한 번 판매하면 끝나는 하드웨어 기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업데이트시켜야 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미래 자동차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 정의하는 차량, 즉 AIDV(AI Defined Vehicle)의 등장이다. AIDV 패러다임으로의 전환AIDV는 AI가 차량의 두뇌가 되어 스스로 학습, 분석, 결정하는 차세대 모빌리티 차량을 말한다.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차량을 규정하고 제어한 기존 SDV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AI가 핵심이 되어 차량 운용 전반에 걸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차량이다.

AIDV를 학술적으로 정립한 연구자 마르코 데 빈센지는 AIDV를 “AI가 차량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주도하는 새로운 차량 유형으로, 지속적 학습과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율성과 적응성을 갖춘 차량”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개발자가 일일이 적어준 코드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모델과 방대한 데이터 학습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는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라는 의미다.

이러한 AIDV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별개로 보던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공동 개발되는 종단간(End-to-End) 플랫폼을 통해 완성된다. 여기서 종단간 플랫폼이란 차량 내부의 하드웨어와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학습 및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공동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패러다임 변화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자동차가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하드웨어나 기능적인 면이 아니라 운행 중에 발생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학습하여 운전자에게 최적화된 자동차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 샤오펑이 AIDV를 AI가 운전과 사용자 경험 모두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종류의 스마트 차량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SDV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차량의 동작을 제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AIDV는 AI를 사용하여 차량 내부의 사용자 경험을 새롭게 혁신하는 데 중점을 둔다. AIDV는 차량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AIDV 시장을 선점하려는 중국AIDV 시장 성장에 대한 전망은 밝다.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AIDV 시장은 2025년 9억5150만달러(약 1조4547억원) 규모에서 2035년 103억8630만달러(약 15조 8779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DV 시장을 선점하려는 글로벌 경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핵심 역량을 무기로 치열한 패권전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국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AIDV의 두뇌에 해당되는 고성능 AI 반도체, AI 알고리즘, 차량용 AI칩, 테슬라와 웨이모 등 세계 최고 수준의 AI 자율주행차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기술 경쟁력은 거의 독보적이다. 하지만 AIDV의 빠른 보급률과 실용 데이터, 그리고 상용화 속도 면에서의 중국의 가파른 성장세는 절대 무시할 상황이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캡제미니가 2024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OEM) 고위 임원들 대상 AI 도입 현황 조사 결과 중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중국 제조사의 85%가 이미 차량 내 음성 인식, 자율주행 보조, 맞춤형 인포테인먼트 등을 양산차에 접목시키고 있는 반면, 글로벌 평균은 56%에 불과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기존 OEM 업체들이 SDV 전략 실행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중국의 샤오펑, 지리, 니오, 리오토 같은 중국 신생 기업들의 AI 기술 적용 속도가 전통적인 글로벌 경쟁사들을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테슬라’라는 별명을 가진 샤오펑은 AIDV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주자이다. 특히 최근 출시한 샤오펑의 차세대 AI 자율주행 모델인 VLA 2.0은 시각-언어-행동(Vision Language Action) 모델에 기반한 AIDV이다. 방대한 시각 데이터와 학습된 지침을 바탕으로 자체 AI칩 기반 고성능 컴퓨팅을 탑재하여 자동차가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인간처럼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 기반의 대표적인 AIDV형 모델이다.

중국이 AIDV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빌리티 전문가인 오귀스탱 프리델은 미국과 유럽이 표준적인 SDV 시대에 머물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효율적이고 신속한 전략으로 AIDV 시장으로 바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국과 유럽의 OEM들이 안전하고 완벽한 전통적인 자동차에 AI를 점진적으로 접목시키려는 데 시간을 쏟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수직적 통합 구조와 거대한 단일 AI 통합 모델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개발 및 업데이트 속도로 다른 나라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프리델이 AIDV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단계적 SDV 전환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AIDV 단계로 곧장 건너뛰는 ‘개구리 점프(Leapfrog)’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향후 AIDV 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전략적 목표를 세워야 할 나라들이 참조해볼 만한 대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심용운 동국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