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광장, 화우, 지평, 대륙아주.
대한민국 대형 로펌의 성장을 이끈 DNA는 인수합병(M&A)이었다. 상위 10개 로펌 중 무려 절반이 M&A를 단초 삼아 10대 로펌의 반열에 올라섰다.
2000년대 당시 법률 시장의 패러다임은 ‘대형화’와 ‘규모의 경제’였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며 폭발한 기업 법률 자문 수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따른 시장 개방이라는 거친 파도가 로펌업계를 기습했다. 막강한 자본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무기로 삼은 선진국 초대형 로펌들이 공습해 오면 국내 로펌들은 설 자리를 잃고 안방마저 안겨줄 것이라는 공포감이 시장을 삼켰다.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는 단 하나, 몸집을 키우는 M&A뿐이었다. 변호사 규모가 곧 로펌의 수주 능력, 매출과 직결되던 시절이었다. WTO 개방 공포…세종·광장의 빅딜
당시 서울고 동기였던 신영무 변호사(세종)와 황상현 변호사(열린합동) 간의 깊은 교감에서 시작된 이 빅딜은 양측의 강점을 완벽히 결합한 ‘화학적 통합’의 모범 답안이었다. 세종은 국제거래 및 기업 법률 자문에 정통한 소장·중견 변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반면, 대법원장 비서실장 출신의 황상현 부장판사와 사법시험 수석 합격자 출신 이건웅 부장판사 등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열린합동은 노련한 판사 출신들이 포진한 정통 송무의 명가였다.
기업 자문과 송무 역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세종은 합병 직후 변호사 수 100여 명 규모를 갖추며 당시 김앤장(159명)의 뒤를 잇는 업계 2위 대형 로펌으로 비약적인 재도약에 성공했다.
세종의 성공적인 합병은 부티크 로펌 중심으로 흐르던 법조계 분위기를 ‘전략적 제휴와 M&A’의 시대로 전환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국문 명칭은 ‘광장’, 영문은 한미의 브랜드 파워를 살려 ‘리 앤드 고(Lee & Ko)’로 정했다. 당시 광장 측은 “몸집 불리기는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사법시험 1000명 선발 시대의 도래와 함께 로펌 변호사 수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몸집을 키워 ‘적정 규모’를 확보하지 못하면 대기업 자문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세종과 광장의 빅딜은 국내 로펌 변호사 수 100명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법률 시장은 김앤장, 광장, 태평양, 세종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빅4’ 대형 로펌 경쟁 체제로 완전히 재편됐다. 변호사 100명 시대, 순위 쟁탈전 세종과 광장의 선제적 합병 이후 법조계 물밑에서는 대형 로펌 간 합병 협상이 연쇄적으로 진행되며 본격적인 ‘M&A 바람’이 불었다.
2003년 판검사 출신의 정통 송무 변호사들이 포진했던 화백과 기업 자문 및 금융 영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우방이 합쳐지며 ‘법무법인 화우’가 공식 출범했다. 합병 직후 화우는 변호사, 변리사, 외국변호사 등 90여 명에 달하는 전문 인력을 일거에 확보하며 김앤장, 광장, 태평양, 세종에 이은 ‘국내 5대 메이저 로펌’으로 뛰어올랐다. 2006년엔 1968년 설립된 유럽계 기업 자문 특화 로펌 ‘김신유’까지 추가로 M&A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김신유와의 합병 직후 화우가 “변호사와 변리사를 합쳐 160여 명에 달하는 국내 2위권 로펌으로 도약했다”고 전격 선언하자 로펌가에는 ‘2위 논쟁’이 거세게 불붙기도 했다. 독주하는 김앤장의 뒤를 잇던 초대형 로펌들은 “화우의 2위권 진입 선언은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도 우방·화백 합병 불과 3년 만에 또다시 딜을 성공시킨 화우의 파죽지세 행보에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법률 시장 개방을 앞두고 펼쳐진 대형 로펌 간의 2위 쟁탈전이 M&A를 매개로 최고조에 달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M&A가 언제나 성공만을 담보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기업법무 전문인 김장리와 송무 강자인 바른이 합병해 업계 7~8위권으로 올라섰으나 물리적 결합에 그쳤을 뿐 문화적·화학적 결합에는 실패했다는 냉정한 평가가 뒤따랐다. 지분 배분과 조직 운영 방식을 둘러싼 갈등 끝에 김장리와 바른은 2008년 4월 결별을 선언했다. 국내에서 합병했던 대형 로펌이 갈라선 것은 사실상 이때가 처음이었다.
합병에 따른 진통과 리스크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로펌 M&A 열풍은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중견 로펌들을 중심으로 다시 불붙었다. 선두 그룹을 추격하고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M&A라는 강력한 도약대가 다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과 소송에 특화되어 있던 ‘지평’과 M&A와 노동 분야에 강점이 있는 ‘지성’이 2008년 통합을 선언했다. 이 합병으로 출범한 법무법인 지평지성(현 지평)은 변호사 수와 매출 기준에서 단숨에 업계 7위권의 대형 로펌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9년 송무에 강했던 ‘대륙’과 국제 자문 및 M&A 분야에 강했던 ‘아주’가 결합해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탄생했다. 두 로펌의 합병은 결합 직후 대륙아주를 국내 10위권 로펌 반열에 안정적으로 진입시켰다. 혹독한 성장통…지분 갈등과 작명 난제2001년 세종·광장에서 시작해 2009년 대륙아주로 이어진 ‘2000년대 1차 대형화 M&A 바람’은 한국 법률 시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당시의 M&A는 생존을 위한 덩치 부풀리기는 물론 송무와 자문의 결합, 변호사 수 확충을 통한 대기업 사건 수임력 확보, 해외 로펌 개방에 대응하는 생존 경쟁력 구축이라는 명확한 성과를 거두었다. 법조계에서 ‘10대 로펌’이 갖는 상징성이 대기업 사건 수임의 필수 조건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1차 M&A는 중소·중견 로펌들이 선두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승부수였다.
그러나 로펌 간 합병은 일반 기업의 합병보다 더 훨씬 까다롭고 위험 요소가 컸다. 합병 후 지분 배분과 조직문화를 둘러싼 갈등 끝에 내홍을 치렀던 바른과 김장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로펌의 핵심 자산이 공장이나 설비가 아닌 ‘변호사’라는 전문 인력 이기에 벌어진 필연적 갈등이었다. 각기 다른 조직문화, 지분 분배 방식, 수임료 정산 시스템, 파트너 간 주도권 싸움 등 내부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화학적 결합에 실패하고 핵심 인력 이탈이 잇따를 수밖에 없었다.
로펌 M&A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복병 중 하나는 통합 로펌의 ‘이름 짓기’였다. 각 로펌의 자존심과 인지도가 걸려 있다 보니 합병 후 어떤 이름을 먼저 표기할지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지평지성처럼 한글과 영문 명칭의 순서를 달리해 절충점을 찾거나 화우처럼 각 로펌 대표와 기존 법인의 이름을 모두 살려 2006년 당시 ‘Yoon Yang Kim Shin & Yu’라는 국내 최장 영문명을 갖게 된 배경에는 M&A 과정에서의 치열한 타협이 존재했다.
공격적인 M&A로 변호사 100~200명 규모의 대형 로펌들이 탄생했음에도 글로벌 시장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한계가 명확했다. 당시 글로벌 1위 베이커앤맥켄지(변호사 3200여 명, 매출 1조2000억원)나 클리포드챈스(매출 1조8000억원) 등 거대 글로벌 로펌에 비하면 국내 최고 로펌조차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평가가 뒤따랐다. 아울러 로펌의 대형화 추세가 대기업의 법률 선택권은 넓혔지만 중소·중견 기업이 적정 비용으로 이용할 법률서비스 공간을 좁히는 ‘법률 시장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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