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플라스틱 규제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한국의 시민사회와 기업이 아시아 현장에서 해법을 실험하고 있다. 폐기물을 다시 자원으로 돌리는 데서 나아가 지역 주민의 참여와 교육을 통해 생활 습관까지 바꾸는 모델이다.

[한경ESG] 나우
2026 플라스틱에코사이클 오프라인 캠페인 미세플라스틱 관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환경재단
2026 플라스틱에코사이클 오프라인 캠페인 미세플라스틱 관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환경재단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을 계기로 플라스틱 오염과 자원순환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경재단과 현대자동차는 인도네시아에서 ‘2026 그린아시아 글로벌 리더십 지원사업’과 인도네시아 폐페트병 자원순환 구축을 위한 시민참여 환경캠페인 ‘플라스틱에코사이클(PlasticEcoCycle)’을 통해 현장 중심의 해법을 찾고 있다.

그린아시아 글로벌 리더십은 국내 환경·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아시아의 기후·환경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현지 단체와 교류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플라스틱에코사이클은 폐페트병 수거부터 업사이클링, 시민 교육, 지역사회 환원까지 연결한 참여형 자원순환 사업이다.

두 사업의 출발점은 현장이다. 국내 활동가들은 인도네시아의 폐기물 처리 실태를 직접 확인하고 현지 환경단체와 대안을 모색한다. 동시에 시민들이 버린 폐페트병이 지역 안에서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환 구조도 만들고 있다. 재활용 물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분리배출과 업사이클링 과정을 직접 경험하도록 해 일상의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취지다.

매립지 반입 폐기물 90% 그대로 쌓여

인도네시아에서는 2020년 기준 연간 약 340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환경으로 유출되거나 노천에서 소각된 것으로 추산된다. 분리배출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수거·선별 인프라와 제재가 충분하지 않아 생활폐기물 상당량이 한꺼번에 버려지거나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열대 기후의 특성상 쓰레기 퇴비화가 활발히 이뤄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비닐과 플라스틱, 유리를 한 봉투에 담는 경우도 많다. 마당에서 쓰레기를 그대로 태우는 노천 소각도 흔하다.

환경재단이 현대차의 후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운영하는 ‘2026 그린아시아 글로벌 리더십’ 연수에 참여한 제로웨이스트 플랫폼 알맹상점은 지난 5월 인도네시아 동자바 그레식시의 응기픽 매립지를 찾았다. 이곳에는 지역 선별장에서 1차 재활용 선별을 거친 뒤 매립 대상으로 분류된 쓰레기가 하루 1.5톤 트럭 15대분이 유입된다. 이 가운데 90%는 개방형 매립지에 쌓이고 10%만 재활용된다.

일부 비닐은 석탄을 대신하는 고형폐기물 연료로 가공되고 유기물은 퇴비와 사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유기물에 빨대와 비닐 같은 플라스틱이 섞이면서 위생과 품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폐기물을 수거해 옮기고 처리하는 데 그치는 현재의 방식만으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폐기물도 골칫거리다. 2021년 바젤협약 개정으로 플라스틱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규제가 강화됐지만, 제지 원료로 수입되는 폐지에 선진국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섞여 들어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수입하는 폐지는 연간 약 300만 톤에 달한다. 알맹상점이 응기픽 매립지 인근 감핑안 마을을 둘러본 결과, 펜스로 내부를 가린 무단 투기장 주변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 폴란드 등에서 들어온 수입 폐기물이 다수 발견됐다. 재활용 가치가 낮은 플라스틱은 노천에서 태워지거나 공장 연료로 사용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지 환경단체 에코톤(EOCOTN)의 창립자 프리기 아리산디 대표는 “재활용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플라스틱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플라스틱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만으로 오염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수입 폐지에 섞여 들어온 플라스틱이 노천에서 소각되거나 두부 공장 등의 연료로 쓰이면서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리산디 대표는 “불법 소각 지역 인근에서 생산된 두부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지역 보건소에는 급성호흡기감염증 환자도 다수 보고되고 있다”며 “법과 제도뿐 아니라 생산과 소비를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감대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5 플라스틱에코사이클 캠페인 굿즈 사진(인형, 티셔츠). 사진=환경재단
2025 플라스틱에코사이클 캠페인 굿즈 사진(인형, 티셔츠). 사진=환경재단
폐페트병 702kg 곰인형·티셔츠로 변신

환경재단이 현대자동차그룹의 후원을 받아 추진하는 플라스틱에코사이클은 이 같은 문제를 지역 안에서 풀어보려는 시도다. 시민들이 폐페트병을 분리배출하고, 수거와 선별, 업사이클링, 지역사회 환원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폐플라스틱을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보다 시민의 인식과 행동을 바꾸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2024년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1차 사업은 폐페트병을 모아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순환경제 모델의 기반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환경재단은 약 1년에 걸쳐 현지 여건에 맞는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과 품질 검증 체계를 마련했다.

현대차와 세이브더칠드런은 자카르타 학교 20곳을 포함한 공공시설 89곳에 폐페트병 수거함을 설치했다. 이렇게 모인 폐페트병 701.76kg은 현지 원단업체 윈텍스타일과 봉제업체 위너스를 거쳐 곰인형 5000개와 티셔츠 4600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아상역은 기술 지원을 맡아 현지 생산 역량과 제품 품질을 높였다.

사업의 특징은 폐플라스틱 수거부터 제품 생산, 지역사회 환원까지 전 과정을 인도네시아 안에서 연결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완제품을 가져와 나눠주는 일회성 지원에서 벗어나 지역 안에서 폐기물이 새로운 자원과 제품으로 다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올해 2차 사업은 시민 참여와 교육을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경재단은 현지 자원순환 플랫폼 플라스틱페이(PlasticPay)와 함께 시민들이 사용한 폐페트병을 학교와 지역 거점의 수거함에 직접 배출하고, 그 과정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온라인 챌린지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 인플루언서들도 동참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참여가 확산하고 있다.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지역 학교에서는 에코톤과 함께 실천형 자원순환 교육도 진행한다.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이론 수업뿐 아니라 현미경을 활용한 미세플라스틱 관찰, 플로깅, 교내 정화활동 등을 함께 구성했다. 학생들이 오염 실태와 자원순환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일상에서 분리배출을 실천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환경재단은 인도네시아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원순환 모델과 시민 참여형 캠페인을 다른 아시아 국가로 넓혀갈 계획이다. 서희주 환경재단 매니저는 “한국 기업과 시민사회, 아시아 현지 혁신가를 연결해 폐플라스틱 수거와 재활용을 넘어 시민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며 “지역사회가 스스로 참여하고 운영하는 환경 거버넌스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