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 중 하나가 바로 정부의 상장폐지 요건 강화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동전주, 시가총액 기준 이하 부실기업을 정리하기로 했는데 2026년 7월 1일 이후부터는 200억원, 단계적으로 300억원, 2027년에는 500억원까지 기준치가 상향될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수급 불균형과 대형주 쏠림 현상으로 재무적으로 우량한 기업까지 축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부채비율 3% 무차입 기업도 퇴출 위기7월 초부터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 30일 연속 지속됐다는 이유로 ‘관리종목 지정우려’ 공시를 낸 기업이 속속들이 보인다. 이들 중에 재무적 건전성과 별개로 강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자. 물론 대상 기업들은 대체로 심각한 부실의 경우다. 그러나 [표1]에 언급된 사례는 예외적이다. 오히려 재무구조가 지나칠 정도로 건전하다고 할 만큼 안정적인 기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진티에스는 광기능성 필름 제조사로 업황 부진으로 외형 성장은 정체됐으나 부채비율이 3%대에 불과한 사실상 ‘무차입 경영’ 기업이다. 총자산 490억원 중 당장 현금화 가능한 현금성 자산이 약 328억원에 달할 정도로 유동성은 넉넉하다. 이런 곳은 도산 위험이 제로에 가깝다.
육일씨엔에쓰 역시 한계 사업 구조조정으로 2024~2025년 손실이 발생했으나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현금 및 단기금융상품 약 100억원(현금성 35억+단기금융상품 79억) 이상 쥐고 있다. 정밀화학과 에듀테크 2개 사업 축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한다. 다만 사업부문별 시너지에서는 약점을 보인다.
에이에프더블류는 신규 사업(전장품)을 위한 선제적 설비 투자(고정비) 탓에 최근 심각한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자산총계 673억원에 부채비율 43%로 매우 양호하다. 특히 구미공장 등 512억원(장부금액 기준) 규모의 든든한 실물 유형자산이 기업 가치 펀더멘털을 지지한다. 수익성에는 확실히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다. 3년 연속 마이너스 매출총이익과 가파른 적자폭은 부실 쪽으로 기운다.
그 외에도 1977년에 설립되어 1995년에 상장한 수산물 제조 신라에스지와 1996년 자동차 부품사로 출발한 성창오토텍은 30~40년이 넘는 장수 기업으로 트렌디한 사업은 아니지만 성실한 경영활동을 펼치는 기업이다. 결론적으로 재무제표로 판단했을 때 이들은 ‘부실기업’이 아니며 단지 주식시장에서는 극단적 저평가를 받고 있는 종목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진 실질적 현금력과 우량한 자산가치를 외면한 채 시가총액 미달 기준만으로 퇴출시키는 것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물론 상장사인 기업 스스로 투자자와의 소통 및 주가 부양 등 적극적인 IR활동이 요구된다. 하지만 단기적인 노력만으론 한계다. 우진비앤지와 파인텍은 ‘무상증자’와 ‘액면병합’을 통해, 성창오토텍은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으로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려고 했으나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단기 시총 아닌 ‘내재가치’ 평가해야시가총액이라는 절대적 기준 앞에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이 많지 않다. 도산 위험이 낮고 사업 구조가 건전한 기업이라도 기계적인 시가총액 기준에 걸리면 퇴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펀더멘털과 주식 가치의 괴리가 커지는 국면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한계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기업과 대주주에게 예상치 못한 유혹이 발생할 수 있다.
2026년 3월 상장폐지 경고를 받은 뒤 결국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 일정실업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동차 시트 등 내장재를 생산하는 일정실업은 앞서 언급한 기업과 마찬가지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결국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일정실업의 2026년 3월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기업가치 제고와 주식 유동성 확대를 위해 액면가를 5000원에서 1000원으로 분할하고 발행주식 총수를 600만 주로 늘렸다.
또한 수탁자가 보유하던 자기주식 1만8383주를 전량 처분하는 등 시장과의 소통과 밸류업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과는 상장폐지. 그런데 상장폐지 과정에서 오히려 대주주에게 유익이 되는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 자진 상장폐지와 달리 강제 상장폐지에는 소액주주 보호 의무가 없다. ‘정리매매’에 들어간 일정실업의 주가가 급락하면 대주주가 지분을 낮은 가격에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대주주가 지배력을 강화할 유인을 갖게 되며 일정실업의 대주주 자녀들이 지분율을 높이면서 지분율이 65%에서 75%까지 올라 비상장사로 경영권이 공고해졌다. 결과적으로 우량한 기업의 지배력을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기업의 퇴출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단기적인 주가의 결과물인 시가총액이 아니라 기업의 재무적 흐름과 내재가치가 되어야 한다. 재무제표 곳곳에 담긴 숫자를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실질적인 경쟁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진정한 밸류업은 부실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장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기업의 가치를 보호하고 발굴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의 영업이익, 잉여현금흐름(FCF), 청산가치 등 장기적인 재무지표를 중심으로 기업의 존속 능력을 입체적으로 심사하는 체계가 보완되어야 한다.
아울러 미국 나스닥의 상장유지 유예기간과 청문회 제도를 참고해 일시적인 시장 환경으로 인해 기업이 억울하게 퇴출되지 않도록 충분한 소명 기회와 자구 노력을 보장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 AI에게 묻는다
상폐 위기 속 옥석 가리는 AI 프롬프트시가총액 기준치 미달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기업이 모두 부실기업은 아니다. 변동성이 높은 수급의 결과로 기업의 실질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지 못할 때 아래 AI 프롬프트를 통해 독자 스스로 판단해 보자.
“○○○(종목명)의 최근 5개년 재무제표를 DART 기준으로 분석해서 이 회사의 주가 부진이 ‘일시적 저평가’인지 ‘구조적 쇠퇴’인지 구분해줘. ①5년간 영업이익 추이와 흑자 지속 여부 ②영업활동현금흐름과 잉여현금흐름(FCF)의 방향성 ③순자산(청산가치) 대비 시가총액 비율(PBR) ④매출 정체의 원인이 업황 부진인지 사업 경쟁력 상실인지를 구분해서 설명해줘. 마지막으로 시가총액 200억원 기준으로 상장폐지 된다면 재무제표상 근거로 타당한지 아닌지 의견을 제시해줘.”
혹시 위 프롬프트로 일시적 저평가 기업임을 확인했는데도 상장폐지로 들어간다면 대주주 유혹의 정도까지 2번째 프롬프트로 점검해 보자.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 변동’ 공시를 기준으로 상장폐지 국면에서 대주주에게 유리한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지 점검해줘. ①최근 3년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변동 추이(특히 자녀 등 2·3세의 지분 증가 여부) ②관리종목 지정 전후 자기주식 취득·처분 내역과 그 상대방 ③액면분할·무상증자·자사주 매입 등 주가 부양 조치가 소액주주 보호 목적인지 지분 확대의 명분인지 시점과 규모로 판단해줘. 마지막으로 이 회사의 대주주가 ‘낮은 비용으로 지배력을 강화할 유인’이 있는지 지분율·순자산가치 숫자를 근거로 결론을 내려줘.”
※상기 글은 해당 회사의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를 참고해 작성한 내용입니다. DART(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재무제표 읽기’를 통해 기업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승환 재무제표 칼럼니스트
직장인 시각으로 재무제표 읽는 법을 연구했다. 회계사는 아니지만 숫자 너머의 사람과 세상을 읽어내는 스토리텔러로 재무제표로 글 쓰고 소통한다. 쓴 책으로 ‘숫자 울렁증 32세 이승환 씨는 어떻게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가 됐을까’, ‘핫한 그 회사, 진짜 잘나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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