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당신이 강한 이유 [EDITOR's LETTER]
지난 7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안도시 카멀에서는 결혼식을 앞둔 한 젊은이가 월가 투자회사들과 밤새 협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객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운용하던 주식 포트폴리오부터 서둘러 팔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24세인 그는 얼마 전까지 ‘AI의 노스트라다무스’, ‘AI의 황금아이’로 불렸습니다. 19세에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오픈AI를 거친 그는 2024년 발표한 165쪽짜리 에세이로 실리콘밸리의 스타가 됐습니다. 범용인공지능이 수년 안에 등장하고 반도체와 전력, 데이터센터가 AI 확산의 병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그가 세운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도 AI 인프라 기업에 집중 투자해 경이적인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자 레버리지가 손실을 키웠습니다. 지난 7월 포트폴리오 가치가 67% 급락하고 마진콜이 이어지면서 결국 상장주식 대부분을 켄 그리핀의 시타델에 넘겨야 했습니다.

그의 AI 전망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미래가 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급격한 변동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미래를 맞히는 것과 그 미래가 올 때까지 살아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인류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도 주식시장에서는 크게 넘어졌습니다. 그는 1720년 남해회사 주식으로 이익을 남기고 빠져나왔지만 주가가 계속 오르자 더 높은 가격에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곧 거품이 터지면서 큰돈을 잃었습니다. 천체의 운동은 계산했지만 다른 사람의 수익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까지 계산하지는 못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천재들이 모인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LTCM이 등장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최고의 금융 전문가들은 자산 간 가격 차이가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막대한 차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 러시아의 채무 지급 중단으로 시장이 예상 밖으로 움직이자 한 달 만에 자산 가치의 44%를 잃었습니다. 이들의 계산은 언젠가 맞을 수 있었지만 시장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천재들의 투자 실패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 불린 어빙 피셔는 1929년 대공황 직전 주가가 영구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낙관했습니다. 시장이 무너진 뒤에도 빚을 내 투자를 이어가다 막대한 재산을 잃었습니다. 통계적 투자의 선구자이자 한때 미국 최고의 헤지펀드 매니저로 꼽힌 빅터 니더호퍼도 주가 급락의 반대편에 베팅했다가 1997년 하루 만에 펀드와 개인 재산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미국 최고의 경제학자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모인 펀드도, AI의 미래를 누구보다 먼저 읽었다는 젊은 천재도 시장에서는 크게 넘어졌습니다. 이들은 어리석어서 실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지성과 통찰을 갖고 있었고 판단도 처음부터 모두 틀렸던 것은 아닙니다. 뉴턴은 한 차례 적절한 시점에 수익을 실현했고, LTCM이 믿었던 가격의 수렴도 평상시에는 합리적인 논리였습니다. 아셴브레너가 내다본 AI 인프라의 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식시장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장은 정답만 맞히면 점수를 주는 시험장이 아닙니다. 좋은 기업을 골라도 너무 비싸게 사면 실패합니다. 장기적인 방향을 맞혀도 중간의 폭락을 견디지 못하면 사라집니다. 최종적으로 옳더라도 레버리지가 크면 시장이 그 판단을 인정하기 전에 계좌가 먼저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천재들의 이야기에는 실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도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약 70%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시장에서 퇴장하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복기했고, 기업가치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사되 잘못된 판단을 견딜 여유를 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훗날 이를 ‘안전마진’이라고 불렀습니다. 대공황에서 살아남은 경험은 가치투자라는 거대한 철학의 토대가 됐습니다. 그레이엄이 위대한 이유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70%를 잃고도 다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는 가장 정확한 전망을 내놓거나 한때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사람이 반드시 승리하지 않습니다. 위기에도 모든 것을 잃지 않고 다음 기회를 맞는 사람이 결국 남습니다.

우리는 투자하면서 수없이 틀립니다. 사자마자 주가가 떨어지고 팔자마자 오르기도 합니다. 잃은 돈과 놓친 기회는 오래 기억하면서도 정작 시장에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습니다. 하지만 생존은 결코 사소한 성과가 아닙니다. 다시 투자할 자본을 남겼고, 폭락 뒤에도 시장을 바라볼 용기를 지켰으며, 유혹 앞에서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세계 최고의 천재들도 시장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아직 주식시장에 남아 있는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투자자입니다. 가장 많은 돈을 벌거나 미래를 가장 정확히 맞히지는 못했어도 모든 것을 잃지 않았고 다음 기회를 남겨뒀습니다.

강한 자가 항상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주식시장에서는 살아남은 자가 결국 강한 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남은 당신이 강한 이유입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