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값 '사상 최고치' 찍었는데...'트럼프 변수'남았다
국제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로 수요가 급증한 데다 주요 광산의 공급 차질까지 겹친 결과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향방에 따라 구리 가격의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이날 구리 선물가격은 파운드당 약 6.90달러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장 마감 직전 상승폭을 일부 반납했으나 강세는 유지됐다.

통상 구리 가격 상승은 글로벌 경제 활동의 확장을 나타내는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구리는 건설과 전자제품, 운송을 비롯해 AI 관련 산업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핵심 산업용 금속이다. 이처럼 산업 전반에 활용돼 실물경제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닥터 코퍼'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상승세는 단순한 경기 회복에 따른 것이 아니라 AI 인프라 확충과 전력망 고도화에 따른 구조적 수요가 이끌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에는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며 이를 연결하는 전력망 확충에는 구리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남미와 아프리카의 공급 차질까지 더해졌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폭설·폭우·강풍 등 이상기후로 광산 가동에 차질을 겪고 있으며 콩고민주공화국은 자국 내 가공산업 육성을 이유로 구리·코발트 정광 수출을 금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마이클 위드머 금속 리서치 총괄은 공급 측 요인이 구리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규 광산을 통한 공급 증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기존 광산의 생산 차질까지 겹쳐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시장 일각에서는 재고 쏠림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구리에 최대 15~50% 수준의 관세 부과를 검토하자 관세 적용 전 미국으로 물량을 밀어 넣는 조기 수입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인용한 IHS 마킷 분석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으로 유입된 구리 물량은 20만 톤을 넘어서며 12년 만에 월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관세 부과 여부가 결정될 시한이 임박하면서 관세 시행 전 물량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 영향으로 COMEX와 런던금속거래소(LME)의 미국 내 창고 재고는 74만 톤을 돌파했다. 반면 물량이 미국으로 쏠리면서 주요 허브인 중국 상하이 링강 보세 창고의 비축량은 수년래 최저치인 3만 톤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장 반발이나 경기 후퇴 우려 등을 이유로 관세 정책을 번복하는 이른바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언제나 겁을 먹고 후퇴한다)’ 시나리오를 꺼내들 경우, 미국에 과잉 축적된 대규모 재고가 한꺼번에 풀리며 구리 가격이 단기 급락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관세가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COMEX 구리 가격은 프리미엄을 유지하며 강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결국 구리 가격의 향방은 AI·전력망 투자에 따른 구조적 수요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관세 정책과 이에 따른 재고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세은 기자 seni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