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남긴 유일한 자서전 20년 만에 재출간,
시대 변혁기에 다시 본질 묻는 기업가들에게 나침반 역할

[서평]
AI 시대, 데이터 너머의 맥락을 아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동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3만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기업의 핵심 경영전략부터 의사결정까지 주도하는 시대다. 하지만 기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알고리즘이 놓치기 쉬운 ‘인간적 맥락’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유일한 자서전인 ‘피터 드러커 자서전’이 20년 만에 전면 리커버 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이유다. 이 책은 여느 대가들의 회고록처럼 성공 신화나 평범한 일대기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책의 본질은 격동의 20세기를 통과한 지성인이 그려낸 거대한 시대적 풍경화이자 경영의 본질을 넘어 삶의 태도를 묻는 불후의 회고록이다.

책 속에서 드러커는 자신을 연극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라 경계에 선 ‘관찰자(구경꾼)’로 지칭한다. 무대 한쪽에 선 관찰자는 사건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물의 이면과 시대의 본질을 여과 없이 굴절시켜 포착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드러커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와 다양성을 깨우쳐준 빈의 유쾌한 할머니, 교육의 진정한 본질을 몸소 보여준 엘자와 소피 선생님 등 일상 속 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조명한다.

나아가 정신분석학의 모순을 짚어낸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해 미디어 시대를 예견한 마셜 맥루한, 거대 잡지 왕국을 건설한 헨리 루스, 그리고 절대적인 권위로 제너럴모터스를 이끌었던 앨프리드 슬론 등 20세기 역사를 수놓은 거물들까지 자신의 여정에서 마주한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초상화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드러커 사상의 궤적을 묵묵히 보여준다. 제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를 통해 만나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대전환기였던 오스트리아 빈의 풍경과 일상 속 인물들의 일화는 훗날 드러커가 주창한 ‘강점 중심 경영’의 기원을 엿보게 한다.

이어지는 2, 3부에서는 나치즘의 광기를 목격하며 다원성과 독창성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다지는 과정, 미국으로 이주해 뉴딜 시대의 활력 속에서 전문경영인과의 교류를 통해 경영자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을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드러커는 이처럼 개별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 하나의 거대한 사회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 속에서 ‘인간 다양성의 수용’과 ‘권한분산’이라는 자신의 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증명한다.

20년 만에 새 단장을 한 책에는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과 장영철 한국피터드러커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의 추천사가 새롭게 수록되어 깊이를 더했다. 두 추천인은 기계가 답을 낼수록 인간은 질문을 품어야 하며, 주체적인 경영을 실천하고자 하는 리더들에게 이 책이 가장 강력한 실천적 인문 지혜의 보고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알고리즘이 놓친 인간적 맥락을 경청하는 ‘관찰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리더에게 요구되는 마지막 보루라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은 어떻게 조직을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얄팍한 매뉴얼을 건네지 않는다. 거대 담론이나 시스템보다 ‘사람’ 자체에 매료되었던 거장의 시선을 통해 시대의 풍랑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리더십의 본질이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에 있음을 묵묵히 일깨워준다. 경영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의 성취를 돕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실천적 학문임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데이터 너머의 맥락을 알고자 하는 현재의 리더들에게 이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거장의 나침반을 선사할 것이다. 경영자를 넘어 삶의 통찰을 구하는 모든 이의 서재에 깊이 자리 잡을 지혜의 정수다.

최승헌 기자 sh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