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발전, 화력발전 인명사고 책임 없어”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도급인과 발주자. 두 개념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법률적 의미는 다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건설공사 발주자는 도급인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건설공사 발주자는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않으면서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를 일컫는다.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도급인은 처벌받는다. 다만 발주자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 근로자 사망사고가 일어난 한 화력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발전사를 도급인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 사건의 재판 결과가 최근 나왔다.

대법원은 안전관리에 관한 책임은 시공사에 있다며 발전사는 도급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1심 무죄, 항소심에선 유죄

2020년 4월 충남 서천에 있는 신서천화력발전소의 배연탈황설비 공사 현장에서 전기폭발 사고가 터져 근로자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 프로젝트의 발주자는 한국중부발전, 시공사(1차 수급인)는 금호건설이었다.

그리고 금호건설은 한 전기제어공사 업체에 재하도급을 줬다. 검찰은 중부발전과 금호건설 법인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중부발전 본부장과 금호건설 현장소장 등 관련자들도 재판에 넘겼다. 중부발전 법인과 임직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중부발전이 시공을 총괄·관리한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중부발전이 발전소 공사를 위한 전담 조직을 설치해 시공사들에 대해 안전작업허가서를 승인하고 주간공정 회의를 주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는 2022년 8월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중부발전이 배연탈황설비를 설치하기 위한 종합건설업 면허를 보유하지 않았고 관련 전문인력도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면 금호건설은 2020년 기준 시공 능력순위 23위에 해당하는 건설사였다.

재판부는 금호건설은 스스로 안전 보건 조치를 이행할 능력이 충분한 회사라고 봤다. 1심 법원은 “중부발전이 금호건설에 시공비로만 279억원을 지급하도록 약정한 사정에 비춰볼 때 금호건설 측이 안전관리에 대한 권한과 위험을 모두 인수했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대전지법은 2024년 4월 중부발전 법인에 벌금 5000만원을, 중부발전의 본부장 A 씨에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중부발전과 A 씨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발전소 건설 공사는 중부발전이 시행하는 전력 사업의 주목적을 수행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공사에 해당하고 중부발전은 이 공사에 대한 상당한 전문성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중부발전은 발전소 건설사업을 27개 사에 분리·도급을 줘 시공하면서도 L 본부라는 별도 조직을 갖춰 이를 총괄·관리했다”며 “사업장 내에 있는 배연탈황설비 공사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면서 전기 작업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수전 업무를 직접 담당해 고압의 전력 공급에 따른 위해·위험 요소를 실질적으로 관리해 온 사실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금호건설은 유죄 확정

대법원은 판단을 재차 뒤집었다.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6월 중부발전에 대한 유죄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도급인과 건설공사 발주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 지배·관리 권한을 가졌는지를 중심으로 해당 공사에 대해 행사한 실질적 영향력의 정도와 전문성, 시공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중부발전의 주된 설립 목적 및 영위하는 주요 사업은 전력 자원의 개발 및 판매, 즉 발전 사업”이라며 “발전소의 운영과 발전소의 건설은 구분되는 사업이고 중부발전 입장에서 이 발전소 건설공사는 일회성 사업”이라고 밝혔다. 중부발전이 발전소 공사를 위한 별도 조직을 갖추고 주간공정회의를 주관하고 부진 공정에 대해 만회 대책을 세운 사실이 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중부발전의 조치들은 도급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점검, 조정 및 확인 등의 차원”이라며 “발전소 공사의 세부 공정과 작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금호건설에 대해선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금호건설은 현장 안전보건 위험성 평가 지침 및 이에 따른 계획수립서 등을 작성해 운용하는 등 작업 내용 및 방법과 관련한 실질적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금호건설은 현장소장 아래 공무, 토목·건축, 기계, 전기, 품질, 안전 등 각 조직 및 업무분장을 갖췄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금호건설 법인은 벌금 5000만원을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고도의 기술력과 비용을 수반해 관련 전문성이 있는 대형 건설사에 시공 및 안전 권한을 일임한 도급계약을 가리켜 ‘위험의 외주화’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발주자가 도급인으로서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수급인의 건설공사에 대한 관여를 주저하거나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산업재해 발생의 위험성을 가중하는 결과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인천항만공사는 왜 유죄를 받았을까?

한국중부발전과 달리 건설공사를 발주한 공공기관이 도급인으로 인정돼 형사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인천항만공사 사건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20년 6월 인천항 갑문 상부에서 H빔을 내리는 작업을 하던 한 근로자가 갑문 바닥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인천항만공사가 A 건설사와 도급 계약을 맺고 인천항 갑문 정기 보수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인천항만공사 법인과 당시 대표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 항소심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2024년 12월 원심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인천항만공사가 항만의 핵심 시설인 갑문 유지·관리는 인천항만공사의 주된 설립 목적 중 하나라는 데 주목했다. 비록 인천항만공사가 갑문 유지보수공사를 위한 철강구조물공사업 등록을 하진 않았지만 유지보수 관련 전담 부서를 두고 있었다.

중부발전 사건에서 대법원이 “중부발전의 주된 설립 목적은 발전사업”이라며 발전소 운영과 건설을 구분한 것과 대비된다. 무엇보다 인천항만공사는 대규모 공기업이지만 A 건설사는 자본금 10억원에 상시 근로자 수가 약 10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이었다.

중부발전 사건에서 시공사가 대형 건설사였던 점과 차이가 크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인천항만공사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진행된 갑문 정기 보수공사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산업재해의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갖고 있었다”며 “갑문 정기보수공사에 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닌 도급 사업주”라고 판단했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