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지분 투자로 글로벌 영토 확장
국내 금융지주의 해외 사업이 지상사 금융(한국계 진출 기업 대상 영업)에서 현지 금융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따라가며 금융을 제공했다면 이제는 현지 개인·기업을 직접 공략하고 현지 금융사와 지분투자·제휴를 통해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해외 점포를 늘리는 양적 확대에서 벗어나 현지화와 수익성을 앞세우는 모습이다.
가장 앞선 곳은 신한금융지주다. 지난해 국내 금융사 최초로 글로벌 사업 세전이익 1조원을 넘어섰고 당기순이익은 8243억원으로 전년보다 8.0% 증가했다. 그룹 전체 손익에서 글로벌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16.6%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해외 부문 손익은 4725억원이다. 일본 SBJ은행과 신한베트남은행이 대표적인 수익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올해 상반기 순이익 130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총자산이익률(ROA)은 2.0%, 순이자마진(NIM)은 3.8%로 나타났는데 이는 국내 시중은행 평균치(ROA 0.6%, NIM 1.6% 내외)를 3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현지 리테일과 중소기업(SME) 금융을 확대하며 현지 고객 기반을 키운 것이 실적을 뒷받침했다.
KB금융지주는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사업 재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도에서는 구루그람(인도 북부)에 이어 첸나이(남부)와 푸네(서부)까지 영업망을 확대하며 현지 진출 기업을 겨냥한 기업금융 기반을 넓히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18년 부코핀은행 지분을 처음 인수한 이후 추가 지분 확보와 유상증자를 거쳐 KB뱅크를 계열사로 편입했다. 부실자산 정리와 자본 확충을 거치며 지난해 현지 회계 기준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올해는 현지 금융당국으로부터 은행종합건전성등급 2등급을 받았다. 한때는 국내 금융권 해외 진출사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거론됐던 인도네시아 사업이 장기간 부진을 털고 정상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현지에서 얼마나 빠르게 수익 기반을 키우느냐가 관건이다.
하나금융지주는 현지 금융사와의 전략적 제휴와 지분투자를 앞세워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 SBI은행, 대만 CTBC은행, 사우디 수출입은행, 프랑스 크레디트아그리콜 등과 협력 관계를 구축한 가운데 베트남 BIDV가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하나은행은 2019년 BIDV 지분 15%를 취득한 이후 전략적 협력을 이어왔다. BIDV는 지난해 총자산이 전년 대비 20.5% 증가한 약 3265조동(약 178조원), 순이익은 15.9% 늘어난 28조5000억동(약 1조5558억원)을 기록했다. 하나은행도 지난해 BIDV에서 1587억원의 지분법이익을 거뒀으며 투자 이후 누적 지분법이익은 취득이익을 포함해 9288억원에 달했다. 현금 배당이익은 551억원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은 베트남 성장세를 바탕으로 BIDV와 공동사업을 확대하고 비은행 부문으로 협력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우리금융지주는 24개국 46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양적 확대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NH농협금융지주도 10개국 20개 네트워크를 재편해 수익성 높은 사업에 자원을 집중할 계획이다.
◆AI, 성장동력 될까 비용절감에 그칠까
금융지주들이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며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KB금융은 AI를 전사 업무에 확산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AI Dev센터를 출범시키고 클라우드 기반 개발환경에서 AI 코딩 도구를 활용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기업금융에서는 RM 에이전트를 도입해 기업정보와 재무현황 등을 분석하고 신용평가 종합의견 작성 시간을 기존 35.5분에서 약 30초로 줄였다. 또 KB GenAI 포털을 통해 현업 직원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업무에 적용하도록 하고 우수 사례를 실제 업무로 확산하는 방식으로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하나금융은 비교적 일찍부터 자체 AI 역량을 키워왔다. 2018년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을 설립해 자연어처리와 AI 플랫폼 등 금융 특화 기술을 연구해왔으며 최근에는 생성형 AI를 여신심사에 적용했다. 기업 재무정보와 산업 데이터를 분석해 심사의견 초안을 작성하는 시스템으로 작성 시간을 약 30분에서 10초 수준으로 단축했고 연간 약 2만7000시간의 업무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AI 신용평가모형을 통해 신용평가 데이터 업데이트 주기도 기존 3개월에서 5일 수준으로 줄였다.
우리금융도 AI를 업무와 고객 접점으로 확대하고 있다. 상담과 문서 작성, 정보 검색 등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한편 고객 맞춤형 금융서비스와 디지털 채널 고도화에 AI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농협금융 역시 AI를 고객 추천과 마케팅, 상담·업무 자동화 등에 적용하고 있으며 향후 통합챗봇과 종합자산관리, 기업고객관리, 신용평가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성과만 놓고 보면 금융지주의 AI는 아직 ‘성장동력’이라기보다 ‘업무 효율화 도구’에 가깝다. AI는 공장이나 건물처럼 투자 규모를 자산으로 확인하기도 어렵고 매출이나 영업이익처럼 성과를 바로 숫자로 보여주기도 쉽지 않다. 금융권 안팎에서 “AI는 실패해도 책임을 묻기 어렵고 성공하면 미래 성장동력으로 포장하기 쉽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금융사의 AI 활용도 문서 작성과 상담, 정보 검색, 신용평가 등 기존 업무의 자동화와 효율화에 집중돼 있다. 인력과 시간을 줄이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용 절감의 영역이다. 아직 AI 자체가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 금융사의 실적을 끌어올리는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지주의 AI 투자가 진짜 성장동력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AI를 도입했는가’가 아니라 ‘AI로 얼마나 새로운 돈을 벌었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비용 절감을 넘어 실제 수익으로 연결되는 순간부터 금융지주의 AI 경쟁에 대한 진짜 평가가 시작될 전망이다.
◆스테이블코인 동맹 속도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이 지연되고 있지만 주요 금융지주들은 오히려 빅테크·대형 커머스 기업들과의 연합을 서두르고 있다. 제도적 틀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전통 금융의 신뢰도와 플랫폼 기업의 막강한 사용자 접점을 결합해 향후 열릴 디지털 지급결제 시장의 주도권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하나금융이다. 하나은행은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원에 인수하며 4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번 투자는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디지털자산 시장 선점을 위해 강하게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은 두나무의 블록체인 메인넷 ‘기와(GIWA)’를 활용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공동 구축하는 한편 BNK·iM금융 등 지방 금융지주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연합 컨소시엄 구성도 주도하며 초기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금융은 유통 공룡 쿠팡과 디지털 금융 협력을 추진 중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쿠팡의 스테이블코인 특화 블록체인 ‘템포(Tempo)’ 환경을 기반으로 쿠팡이츠 결제 대금이 가맹점주에게 실시간으로 정산되는 전 과정의 기술 검증(PoC)을 마쳤다. 대규모 유통망과의 결합을 통해 향후 정산 기간 단축과 금융 비용 절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스케이스(적용 사례)를 확보한 셈이다. 신한금융 역시 자체 배달 플랫폼 ‘땡겨요’를 활용해 상용 환경에서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KB금융은 토스와 협력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맡고 토스가 유통 플랫폼 역할을 담당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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