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의 포스터 / 사진=유니버설픽처스
영화 오디세이의 포스터 / 사진=유니버설픽처스
“가장 원하는 것은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미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상실과 결핍, 그럼에도 끊임없이 원하고 갈망하게 되는 욕망의 굴레. 인간의 비극적 숙명이라 할 수 있다. 이 대사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 나온다. 영화의 원작은 고대 그리스 시인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이다. 고전 속 심오하고 묵직한 철학이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참전을 위해 집을 떠나고 승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만 20여 년. 이토록 지난한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낸,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가 영화로 재탄생했다. 한국에선 8월 5일, 북미 등에선 지난 7월 17일 개봉했다. 배우 맷 데이먼이 오디세우스를 연기했다. 톰 홀랜드는 아들 텔레마코스, 앤 해서웨이는 아내 페넬로페를 맡았다.

새롭게 재탄생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 국내외 많은 관객이 열광하고 있다. 한국에선 개봉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200만 명을 돌파했다. 글로벌 흥행도 이어지고 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8월 11일 기준 글로벌 매출 11억480만달러(약 1조5651억원)를 기록했다. 놀런 감독의 기존 최고 흥행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10억8542만달러)를 뛰어넘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이며 전쟁 이후 수많은 고난을 헤치고 마침내 집으로 귀환하는 전형적인 영웅에 해당한다. 그동안 여러 영웅 캐릭터가 나왔음에도 영화는 왜 고전으로 돌아가 다시 오디세우스를 소환했을까. 그리고 관객들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에 또다시 반응하고 있을까.
인간에 집중해 구현한 블록버스터
고전은 스토리의 원형이자 집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스토리노믹스’를 이야기할 때면 고전, 그중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엔 여러 신과 인간이 등장하는데 훗날 영화나 드라마로 가장 적극 활용된 것은 인간 중에서도 영웅에 해당한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일정한 서사구조를 갖춘 영웅들의 모습엔 어려움을 이겨내고 고귀한 존재가 되길 바라는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고전 속 영웅은 고난을 겪지만 스스로 이를 극복해 나가고 초월적인 힘을 길러 세상을 이롭게 한다. 결국 답답한 현실을 버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고 나아가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싶은 집단 무의식이 투영됐다고 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다시 소환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까. 그런데 ‘오디세이아’는 다른 영웅 서사와 차별화된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영웅들의 전투를 그린 작품이라면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방랑과 고난의 시간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오디세이아’는 대표적인 고전임에도 “현대적인 블록버스터로 각색된 적이 없다”는 놀런 감독의 말처럼 영화로 쉽게 제작되지 못했다. 화려한 전쟁이나 승리의 쾌감 대신 그 이후에 찾아온 불행과 좌절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모습이 블록버스터와 어울리진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런 감독은 오히려 이를 통해 뛰어난 블록버스터를 구현해낸다. ‘영웅’보다 ‘인간’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그 심연을 파고드는 방식이다. 오디세우스는 전쟁 승리 이후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거인족, 키르케, 세이렌 등을 차례로 만나며 수차례 목숨을 위협받는다. 그 과정에서 오디세우스의 기지가 발휘되긴 하지만 이보다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꾸만 찾아오는 고난 그 자체이다. 또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사랑한 칼립소에 의해 기억을 잃은 채 오랜 세월 아내와 아들마저 잊고 살아가게 된다. 가려고 해도 가지 못하고 잊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망각하게 되는 인간의 고된 운명과 같다.

이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영화는 원작과 달리 신의 등장을 최소화했다. 아테나를 제외한 제우스, 포세이돈 등은 언급만 될 뿐이다. 아테나도 죽은 트로이 여사제의 얼굴을 한 채 오디세우스의 환상처럼 그와 함께 늘 나타나고 묘사된다. 이를 통해 신보다 인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놀런 감독의 인문학적 통찰이 돋보인다.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함께 제시한다. 작품은 운명에 맞서기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믿고 몸을 맡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가족이나 고향처럼 삶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그것이 곧 인생의 나침반이 되니까.

이는 영화가 고전으로 돌아간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가야 할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서적 집으로 가는 방법조차 서서히 잊어가고 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도, 갖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이미 갖고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갈망해 보지만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고전, 그리고 고전을 각색한 영화는 사람들이 그 해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죄의식’이다. 오디세우스는 길고 긴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트로이 목마를 선물로 보내 적을 속인다. 즉 트로이 목마는 순리에 어긋나지만 목표를 위해 행해진 수단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어린 아군조차 속아 죽음에 이르고 많은 부하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오디세우스의 얼굴을 비추며 죄의식을 담아낸다. 영화는 초반엔 트로이 전쟁에서 오디세우스가 승리한 순간을 그린다. 그러나 후반엔 그 순간 절규하던 이들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그 얼굴엔 기쁨이 아닌 복잡미묘한 회한의 표정이 가득 담긴다. 이 죄의식은 오디세우스가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가는 길에 놓쳐버린, 알면서도 묵인해 버린 것들에 대한 처절한 참회이다. 전쟁이 난무하는 오늘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장면이 아닐까.
‘이야기의 집’, 고전으로 돌아가면

놀런 감독의 촬영 방식이 영화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놀런 감독은 ‘다크 나이트’(2008)부터 디지털보다 아이맥스 필름 촬영을 선호해 왔다. 나아가 이번에는 영화 사상 처음으로 전 분량을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했다. 아이맥스 필름 특유의 높은 선명도와 깊이감을 통해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놀런 감독이 관객들의 감상 자체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들의 스크린 경험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을 알 수 있다.

촬영하기 까다롭거나 비용과 시간이 많이 투입되는 장면을 CG(컴퓨터그래픽)로 처리하는 영상업계의 관행에도 경종을 울린다. 놀런 감독은 CG라는 상대적으로 쉽고 편한 길 대신 불편하고 어려운 과거의 방식으로 ‘오디세이’의 대부분을 찍었다. 특히 바다 항해 장면도 직접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배우와 선원들도 직접 고대 방식으로 만들어진 선박에 올라 노를 저었다. 이뿐 아니라 높이 10.7m, 무게 3톤이 넘는 트로이 목마를 직접 제작하고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도 18m의 기계식 인형으로 구현했다. 놀런 감독은 앞서 ‘오펜하이머’에선 핵실험 장면을, ‘인터스텔라’에선 거대한 우주 먼지를 CG 없이 촬영하기도 했다.

아이맥스 필름을 고집하거나 CG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두고 일부에선 놀런 감독만의 마케팅 방법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고집스러운 방식과 철학에 관객들이 더욱 매료되어 극장을 찾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놀런 감독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모티프 중 하나는 ‘귀환’이다. ‘인터스텔라’에선 머나먼 우주에서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려 하고 ‘오디세이’는 전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려 한다. 어쩌면 놀런 감독에게 귀환은 아무리 앞으로 가더라도,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본질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영화를 포함한 영상 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플랫폼과 첨단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그렇게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때면 ‘이야기의 집’ 고전을 떠올리는 게 어떨까. 고전으로의 귀환은 곧 스토리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며 영상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발견하게 해줄 테니.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