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트렌드]
전투 로봇이 급부상한 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다. 하늘에서는 소형 자폭 드론이 보병이나 장갑차, 보급 차량, 진지를 겨냥하는 저가 정밀타격 수단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자폭 드론의 공격 범위는 초기에 최전방이나 후방 보급로에 한정되다가 지금은 수백 km 떨어진 배후 산업 시설로 확장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 후방의 공군 기지와 정유시설 등 각종 산업 인프라를 공격하고 있고 러시아는 샤헤드 136 등의 자폭 드론으로 우크라이나의 전력망, 산업 시설을 반복 타격하고 있다.
해상에서는 해상 무인선(USV)이 우크라이나의 해군력 열세를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수단으로 대두했다. 소형·고속·장거리 공격용 무인선은 러시아 군함뿐만 아니라 후방의 항만, 교량, 연료 인프라까지 공격하고 있다. 2024년 우크라이나는 자폭용 무인정 마구라 V5(Magura V5)로 상륙함 카이사르 쿠니코프(Caesar Kunikov)와 순찰함 세르게이 코토프(Sergey Kotov)를 공격해서 대규모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드론과 해상 무인정이 기존 무기 체계만큼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전쟁의 장기화로 병력 손실 규모가 커지고, 병력 충원 문제가 대두하면서 드론, 무인정에 이어 지상에서도 전투 로봇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점점 발전하고 있는 지상 전투 로봇지상 전투 로봇은 보병이나 장갑차량을 대체하는 무기 체계가 아니라 드론의 위협이 극심한 전선에서 인간 병사 대신 위험 구간을 통과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소모성 원격 플랫폼으로 정착하고 있다. 소형 자폭 드론이 전선 후방 수십 km까지 위협하면서 보급, 후송 등 기본적인 이동 행위가 아주 위험한 행위로 바뀌었고 “누가 싸우는가”보다 “누가 위험 구간을 통과하는가”가 인명 손실을 결정하는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지상 전투 로봇의 주요 임무는 아직 드론이나 무인선 등이 수행하는 화력전보다 군수품 보급, 부상자 후송, 폭약 운송 등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일부 전장에서는 전방 보급의 약 90%가 지상 전투 로봇으로 이뤄졌다고 하며 간혹 부상병을 후송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지상 전투 로봇은 단독으로 활용되기보다는 공중–지상 공조 방식으로 드론과 함께 운용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중형 정찰 드론이 표적 탐지, 표적 좌표화, 통신 중계를 맡고 소형 자폭 드론이 정밀 타격을 수행하며 지상 로봇이 군수품 운반, 회수, 폭약 전달, 지뢰 부설과 제거를 담당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적진을 점령하는 임무는 여전히 인간 병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아직 임무 수행 측면에서의 한계가 분명하다. 지상 전투 로봇이 진지를 공격하거나 포로를 통제한 소수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아직 상징성이 커 보인다.
지상 전투 로봇들의 조종 방식은 완전 자율이 아니라 영상·통신 링크를 통해 조종사가 이동, 사격을 통제하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방식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이슈 중 하나는 통신 회복력(communication resilience)이다. 원격조종 기능은 차폐 재료, 방해 전파를 쏘는 재밍, 지형 구조 등에 취약해서 지상 전투 로봇의 작전 반경이 대폭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술적 성공은 차체 성능보다 전파 방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계속 조종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탄약보급·의무후송을 넘어 무장 전투형으로지상 전투 로봇을 구조 기준으로 분류하면 소형 차륜형, 중형 궤도형, 사족보행형 등으로 나뉜다. 소형 차륜형은 저가, 신속 생산, 은밀성 등에서 앞서고 근거리 보급, 정찰에 적합하지만 진흙, 파편, 경사지에 취약하다. 중형 궤도형은 적재량, 험지 돌파 능력, 다목적 수행 능력 등에서 강점을 보이나 비용, 피탐지성 등에서 약점을 보인다. 사족보행형의 경우 참호, 계단 등 복잡 지형 적응력이 최대 강점이지만 적재량이 적고 충전지 사용에 따른 짧은 운용 시간 등에서 불리하다.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적재함이나 물품을 탑재한 단순 차륜형과 궤도형이다.
지상 전투 로봇의 임무는 군수·보급형, 의무후송형, 자폭·폭약전달형, 무장 전투형, 공병형, 다목적형 등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현재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의무·군수형이다. 전투 로봇의 대중적 이미지와 직결되는 무장 전투형의 경우 현장 사용 사례는 있으나 아직 개발의 여지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지상 전투 로봇들을 실제 전장에서 가장 많이 운용하는 국가는 우크라이나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운용 중인 지상 전투 로봇들은 구조적으로나 수행 임무 측면에서 가장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운용하는 다목적 지상 전투 로봇의 대표 사례로는 현지 스타트업이 만든 오디세이(Odyssey)를 들 수 있다. 외형상 궤도와 차륜을 함께 장착된 구조이며 화물 적재함과 원격무장, 폭약 모듈을 교체 장착할 수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약 4일 만에 조립 가능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현장 개조성과 생산 단가를 앞세운 전시 현지생산 모델의 전형인 것으로 보인다. 자폭·폭약전달형 지상 로봇 중에서는 라텔S(Ratel S)가 잘 알려져 있다.
전기식 4륜 UGV로 약 40kg대의 탑재물을 목표 지점까지 운반한 뒤 자폭하는 로봇으로 저비용·소모성 설계가 강점인 반면 험지 통과성과 통신 지속성은 대형 궤도형에 비해 제한적이다. 탑재량이 더 큰 자폭 UGV도 등장해서 약 200kg의 폭약을 싣고 20km를 이동해 건물을 폭파한 사례가 보도됐다. 지상 전투 로봇은 폭탄 탑재 중량 측면에서는 중소형 드론의 성능을 압도하는 우수한 수단이라 볼 수 있다. 무장 전투형으로는 현지 기업이 만든 TW 12.7과 TW 7.62가 자주 거론된다. 조종사가 수km 떨어진 후방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TW 12.7은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탑재한 사례로 보도됐다. 지상 전투 로봇은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공격 행위를 지속하는 데 필요한 탄약의 재장전과 정비를 위한 인력 접근이 필수적이므로 실질적으로 장기간 독립 작전은 어렵다.
서방 국가들이 개발한 지상 전투 로봇 중에서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실사례로는 에스토니아 기업이 만든 궤도형 UGV인 THeMIS를 들 수 있다. 운송, 공격, 지뢰 제거 장비 등을 다양하게 교체 장착할 수 있는 다목적형 로봇으로 탑재량과 내구성, 표준화 측면에서는 다소 우위에 있다고 하나 조달 비용, 전장 수리성 측면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로봇들보다 불리하다고 한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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