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 확산으로 폭발한 글로벌 메모리 수요를 두고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메모리 업체들의 증설 속도보다 AI 인프라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내년에는 공급 부족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최 회장은 미국 내 전공정 팹 건설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공급 확대 의지도 드러냈다.
최 회장은 미국 경제매체 CNBC가 13일(현지시간) 공개한 인터뷰에서 "모두가 메모리 칩을 사고 싶어하고 칩 없이는 AI 컴퓨팅 시스템을 만들 수 없는 전쟁과 같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메모리 기업들이 충분한 증설 준비를 마치기 전에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난 만큼 내년 글로벌 메모리 수급 불균형이 최고조에 이르며 가장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 회장은 최근 메모리 가격 흐름에 대해 "가격이 너무 빨리 올랐다"며 공급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 HBM뿐 아니라 범용 D램과 낸드까지 확산하면서 글로벌 IT 기업들의 메모리 확보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엔비디아의 다급한 메모리 확보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도 공개됐다. 최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더 많이 만들어 달라(Please make more)'는 문구를 남긴 웨이퍼를 카메라 앞에 꺼내 들었다. 글로벌 AI 가속기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조차 SK하이닉스에 증산을 직접 요청할 만큼 AI용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현지 생산 가능성도 내비쳤다. 현재 미국에서 추진 중인 첨단 패키징 시설을 넘어 웨이퍼 생산부터 담당하는 전공정 팹까지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미국 전공정 팹 추가 건설에 대해 "기꺼이 할 의향은 있다"면서도 적합한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입해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달 27일 착공식을 앞두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웨이퍼 생산까지 담당하는 전공정 투자는 사업성과 입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신중하게 검토하는 단계다.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공급 확대가 다시 가격 하락 사이클을 불러올 가능성에는 과거와 다른 시장 구조를 강조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가 범용 D램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업계에서는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AI가 메모리 산업의 수요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AI 시대는 더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해 과거와 다르다"며 메모리 산업의 사이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주기가 확실히 길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AI 학습에서 추론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데이터센터당 필요한 메모리 용량까지 급증하면서 중국 업체들의 공급 확대만으로 전체 시장이 과거와 같은 다운사이클에 빠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인터뷰는 CNBC가 해외 언론 최초로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진행됐다. SK하이닉스는 용인을 중심으로 국내 생산 기반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청주와 서남권, 미국 등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며 AI 시대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 네트워크 구축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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