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000m 고원 위 중국 시짱(티베트)
약초·포도·벌꿀이 성장동력으로

'세계의 지붕' 티베트의 산업 실험[김은정의 글로벌 현장]
해발 4000m의 거친 고원 위에서 중국 시짱(티베트) 경제가 빠르게 산업화하고 있다. 전통의학과 도자기, 와인, 양봉 등 고유 자원을 현대식 생산 시설과 관광산업에 접목해 지역 소득과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의 재정투자와 기반시설 확충이 맞물리면서 티베트는 보존의 공간을 넘어 고원 특화 산업과 생활 인프라를 함께 키우는 성장 실험에 들어섰다.

◆보존 벗고 산업화…성장판 열린 티베트

중국 국무원의 초청으로 최근 방문한 티베트자치구에선 전통문화가 현대식 생산시설과 관광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다. 실제 중국이 티베트에서 민족 단결과 함께 강조하는 것이 경제성장이다. 특색 있는 고도 경제를 기반으로 산업·관광을 결합해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빠르게 개선시키기 위해서다.

수도 라싸에 있는 티베트 전통의약품 기업인 티베트간루장약에 들어서니 반도체 제조 시설을 연상케 하는 무균 환경에서 직원들은 작업복과 모자, 마스크, 전용 신발을 착용한 채 자동화 설비 속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포장되는 과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배합된 원료는 정량에 맞춰 나뉜 뒤 멸균 환경에서 용기에 자동으로 투입되고 포장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중국 내에선 티베트 전통 의학을 민간 요법이 아닌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가진 완성된 의학으로 본다. 2000년 넘게 이어진 독자적인 의학 체계를 갖춘 것으로 여겨지며 기·바람, 담즙·불, 점액·물과 흙의 성질을 근거로 균형이 깨질 때 질병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티베트 의학은 오랜 세월 한의학, 인도 의학 등 주변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고원이라는 독특한 환경에 맞게 발전해 온 중국 전통 의학의 독립적인 한 축이다. 간루장약은 이 같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인 칠십미진주환 배합 기술과 쭤타이 제련 기술을 온전히 보유하고 있어서다. 쭤타이는 수은을 비롯한 광물성 원료를 여러 천연 재료와 함께 반복 가공해 만드는 티베트 전통 약재다. 간루장약 측은 이 공정을 통해 원료의 독성을 낮추고 약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의 산업 실험[김은정의 글로벌 현장]
연구개발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칠십미진주환의 뇌혈관 질환 관련 작용과 임상 활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신형 의료 기기를 개발하는 식이다. 직접 방문한 전시 공간에는 알약과 환제, 분말 형태로 가공한 다양한 티베트 의약품이 진열돼 있었다. 과거 의사가 약재를 직접 배합해 환자에게 제공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정해진 규격과 공정을 거쳐 대량 생산하는 제품들이다. 티베트 고원에서 채취하거나 거래되는 약재가 세척과 선별, 가공, 배합, 포장 공정을 거쳐 상품으로 전환되는 구조였다.

전문가들은 전통 의학이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유명한 처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같은 약을 어느 공장에서 생산해도 성분과 품질이 일정해야 하고 원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해서다. 유효 성분과 독성, 복용량에 대한 기준도 필요하다. 이런 측면을 감안해 티베트자치구는 의사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하던 지식을 공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표준과 데이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티베트 의약을 지역의 중점 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크 뼈가 71만원 찻잔으로

고지대에 서식하는 소의 일종인 야크 뼈를 활용한 고급 도자기 생산도 또 다른 시도다. 라싸경제기술개발구에 위치한 롄화즈바오를 방문하니 중국의 도자기 문화와 티베트의 전통 문화를 융합한 다양한 도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선 티베트 전통 탕카, 구게왕국 암각화 등 티베트의 풍부한 문화 요소를 현대 도자기 공예와 결합해 독특한 문화적 매력을 지닌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티베트의 야크 개체수만 약 400만 마리에 이른다.

티베트의 청정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야크 뼛가루는 산화철 함량이 제로(0)에 가깝고 다른 지표들도 일반 소·양에 비해 우수하다는 게 롄화즈바오 측의 설명이다. 과거엔 야크 뼈가 대부분 폐기됐다. 하지만 이런 야크 뼈를 원료로 활용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현장에서 독특한 문양의 매끄럽고 화려한 찻잔이 탐나 구입하려고 가격을 문의하니 한 세트에 3300위안(약 71만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 도자기 탕카 제품은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개당 200만위안에 소장된 사례도 있다. 티베트 불교 문화에서 뼈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오래도록 티베트에선 동물의 뼈를 이용해 다양한 의식구와 장신구를 만들어왔고 일부 의식구는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용기와 지혜를 의미한다고 믿어왔다.

현재 롄화즈바오는 10개 대분류, 5000여 종의 제품을 설계했으며 티베트 도자기라고 불리는 식기와 다기, 공예품, 관광 기념품을 생산하고 있다. 2020년엔 도자기 제작과 전시·판매, 관광을 결합한 문화관광산업원도 조성했다.

◆융복합 생태관광으로 소득 ‘껑충’

와이너리와 양봉도 티베트가 주력하고 있는 성장 산업이다. 평균 해발 3620m에 자리한 파주와이너리는 고원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 관광·숙박을 결합한 복합시설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포도밭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다. 극한의 환경을 경쟁력으로 전환한 티베트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일교차가 20°C를 넘고 자외선이 강한 환경은 포도가 스트레스를 받게 해 안토시아닌(항산화 물질) 함량을 평지 산지의 6~12배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 높은 고도의 강한 자외선이 천연 살균막 역할을 해 병해충 발생이 현저히 낮아 유기농 재배가 가능해졌다. 지하 300m의 빙하가 녹은 광천수와 리튬이 풍부한 토양이 와인의 깨끗한 맛에 기여했다는 게 파주와이너리 측의 설명이다.

중국과학원 식물연구소와 장기 협력을 통해 고원 환경에 최적화된 재배 기술을 확립하고 독자 품종 개발에도 성공했다. 667ha의 포도밭에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비달, 샤르도네 등을 재배하며 2017년 이후 누적으로 포도 3000톤 이상을 생산했다. 누적 생산액은 2억위안, 와인 생산량은 200만 병 이상이다. 연간 매출은 2000만위안을 웃돈다. 올초엔 홍콩 시장에 첫 수출에 성공했다. 중국 내 주요 도시에서도 꾸준히 시음회를 열고 있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의 산업 실험[김은정의 글로벌 현장]
양봉 기업 예반펑성은 고원 양봉과 벌꿀 제품 가공, 생태관광과 체험학습을 결합한 융복합 사업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 50여 개 마을에 양봉산업을 확산해 마을 집단경제 조직마다 평균 5만위안 이상의 소득 증가를 지원했다. 올 3월 기준 직원은 40명이며 지금까지 300명 이상의 양봉 기술자를 양성했다. 현재 약 1만1700군의 벌떼, 약 3억5000만 마리의 꿀벌을 보유하고 있다. 해발 약 3700m의 고원에 위치해 오염되지 않은 청정 환경이 고품질 벌꿀 생산을 뒷받침했다. 고원의 강한 자외선과 큰 일교차로 인해 벌꿀은 농도가 높고 수분활성도가 낮아졌다. 맛과 향이 독특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연간 생산량은 120톤을 넘어섰다.

예반펑성은 벌을 키워 꿀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한 산업사슬까지 구축했다. 우선 양봉 과정을 26개의 표준화 단계로 나눠 교육과 보급이 쉽도록 했다. 이후 티베트자치구 최초로 청정 기준을 충족하는 현대식 벌꿀 생산라인을 구축해 제품 품질과 식품안전을 확보했다. 뒤이어 약 2000만위안을 투자해 13만3000㎡ 규모 꿀벌 문화 테마 생태체험원을 조성했다. 꿀벌 문화 체험, 벌집 테마 민박, 자연 체험학습, 음식 서비스를 한데 결합한 몰입형 산촌 생활 체험의 일종이다. 올 5월 기준 누적 관광객은 약 3만 명에 달했다.

라싸=김은정 한국경제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