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메타·알파벳·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엔비디아·브로드컴·스페이스X·AMD 등 9개 주요 기술기업의 공시 주석을 분석한 결과,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은 AI 관련 장부 외 약정 규모가 총 3조달러(약 42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들 기업이 최근 1년 동안 집행한 전체 자본지출(6000억달러)의 5배에 달하며, 장부에 기록된 리스부채(시설 임차료)와 장기 차입금을 합친 금액보다도 3배가량 많은 수치다.
장부 외 약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아직 사용을 시작하지 않아 부채로 인식되지 않는 ‘미개시 리스’다. 총 1조2000억달러(약 1700조원)로 1년 전보다 4배 급증했다. 다른 하나는 AI 칩이나 데이터센터용 전력 등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에 체결한 ‘구매 약정’으로 1조 9000억달러(약 2690조원)를 기록했다. 두 항목 모두 실제로 자산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점부터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타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이페리온’이다. 축구장 1700개 크기에 달하는 이 시설의 건설 비용은 270억달러에 이르지만 관련 부채는 메타의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사모펀드 블루아울캐피털이 주도하는 합작사와 특수목적법인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메타는 소수 주주이자 임차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메타는 2029년부터 4년간 시설을 빌리되 최장 20년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을 뒀다. 20년을 채우지 못할 경우 채권자들의 손실을 보증하기로 했지만 실제 지급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해 장부상 부채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처럼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은 메타의 미개시 리스 규모는 지난 6월 말 기준 3470억달러에 달한다.
구매 약정이 가장 가파르게 늘어난 곳은 알파벳이다. 알파벳의 구매 약정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8110억달러(약 1140조원)로 불과 석 달 만에 2.4배로 늘었다. 여기에는 오는 2054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전력 공급 계약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역시 타사 주식 인수 등을 위해 2027년 회계연도까지 27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약정의 대부분이 취소가 어려운 고정 비용이라는 점이다. 장기 약정은 AI 수요가 지속될 때는 선제적인 인프라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AI 서비스 수요나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사용하지 않을 설비와 전력에 막대한 대금을 치러야 하는 위험을 안게 된다.
모건스탠리 회계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를 통해 "장부 밖 약정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규모도 커지며 구조까지 복잡해지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기업의 실제 부채 수준과 총 잠재 레버리지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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