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협약 신뢰보호 인정…소각시설 거부는 위법
청주시 폐기물 입지 규제권도 인정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한국경제신문
충북 청주의 폐기물 처리시설 이전사업을 둘러싸고 같은 날 대법원에서 두 개의 판결이 나왔다. 한 판결에선 청주시가 회사와 맺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다른 판결에선 청주시의 규제권을 인정했다.

지난 8월 13일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서원환경(옛 ESG청원)이 청주시를 상대로 낸 ‘도시관리계획 입안 제안 거부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반면 같은 날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에서 진행된 ‘폐기물처리 사업계획 부적합 통보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선 청주시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두 소송 모두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됐다. 오창과학산업단지 옥산면 남촌리에 폐기물 매립장을 운영하는 서원환경은 소각시설을 추가로 지으려 했으나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논란이 일자 청주시는 2015년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소각시설과 매립장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사는 오창읍 후기리 일대에 새 부지를 마련했다. 협약에는 소각시설과 매립장이 명시됐다. 업체는 이후 파·분쇄 시설을 별도로 추진했다.

청주시·업체 간 약속 어디까지 지켜야 하나

청주시는 2018년 2월 업체의 파·분쇄 시설에 대한 폐기물처리 사업계획 적합 통보를 내렸다. 회사가 법정기간 내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받지 못해 적합 통보가 실효됐다.

소각시설은 금강유역환경청이 2020년 3월 사업계획 적합을 통보했다. 두 시설 모두 실제 설치를 위해선 폐기물관리법상 절차 외에 해당 부지를 국토계획법상 폐기물처리시설로 반영하는 도시관리계획 절차가 필요했다.

회사는 2020년 12월 소각시설과 파·분쇄 시설을 새 부지에 설치하기 위한 도시관리계획 입안을 청주시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듬해 2월 청주시는 환경훼손 우려, 주민 건강 악영향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회사는 거부처분의 취소를 청구했다.

청주지법은 2022년 4월 회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청주시와 업체가 맺은 업무협약을 확정적 약속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협약에 후기리라는 구체적 이전 부지가 명시되지 않았고 협력한다는 내용이 모든 법정 요건과 환경상 우려를 불문하고 사업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2023년 대전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선 소각시설에 관한 거부처분은 취소를, 파·분쇄시설에 관한 거부처분은 적법하다고 봤다.

양자 간 업무협약을 단순한 행정적 선언 이상으로 간주했다. 청주시는 주민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와 이전협약을 체결했고 회사도 기존 사업을 포기·이전하는 등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만큼 청주시의 협력 약속이 공적 견해 표명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행정청이 약속을 뒤집으려면 충분한 사유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청주시가 제시한 환경·주민 건강상 우려 중 상당 부분은 협약 체결 당시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다. 따라서 소각시설 입안 제안 거부는 신뢰 보호 원칙에 반해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파·분쇄시설은 다르게 판단했다. 2015년 협약에 명시된 시설은 소각시설과 매립장이었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협력 약속이 파·분쇄시설까지 미치지 않는 만큼 신뢰 보호 원칙 위반이 없었다는 얘기다. 회사와 청주시 모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대전고법의 판단을 수긍해 원심을 유지했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단계의 기준 적용 가능할까

양자 간 두 번째 소송은 실효된 2018년 파·분쇄시설 폐기물처리 사업계획 적합 통보를 다시 받기 위해 업체가 2021년 사업계획을 재제출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청주시는 2018년 2월 업체 측에 적합 통보를 해줬지만 절차를 거치는 사이 허가 기간이 지났다. 업체는 2021년 3월 적합 통보 효력 상실을 이유로 사업계획서를 다시 제출했다. 종전 계획과 유사했지만 청주시는 부적합 통보를 했다.

사업 부지가 국토계획법 및 도시·군계획시설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른 폐기물 처리시설 결정 기준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업체는 이 처분의 취소를 청구했다. 폐기물관리법 제25조는 사업계획서를 심사할 때 폐기물처리시설의 입지 등이 ‘다른 법률’에 저촉되는지를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국토계획법상 도시·군관리계획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단계에서 청주시가 국토계획법과 도시계획시설규칙의 입지 기준을 적용해 폐기물처리 사업계획을 부적합 처리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청주지법과 대전고법 모두 업체의 손을 들었다. 청주시가 도시계획 단계의 결정 기준을 앞선 사업계획 단계에 적용한 것은 위법하다고 보고 부적합 통보를 취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후속 절차에서 필수적으로 적용될 입지 기준이라면 사업계획 단계에서 미리 심사할 수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폐기물관리법 제25조에 따른 ‘폐기물 처리시설의 입지 등이 다른 법률에 저촉되는지 여부’의 ‘다른 법률’의 의미와 그에 국토계획법령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최초로 판시한 사건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돋보기]
적합 통보가 인허가 보증수표는 아니다

행정청이 폐기물처리 사업계획에 대해 적합 통보를 했다면 사업자는 후속 절차도 통과할 수 있다고 확신해도 될까.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폐기물처리업체와 전북 진안군 사이에서 벌어진 소송에 대한 2005년 대법원 판결이다. 이 업체는 사업계획 적합 통보를 받은 뒤 사업 부지의 국토이용계획 변경을 신청했다. 진안군은 수질오염과 주민 생활환경 피해 우려를 이유로 거부했고 업체는 진안군이 신뢰 보호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폐기물관리법상 사업계획 심사와 국토이용계획 변경은 제도적 목적과 판단 단계, 고려사항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환경 피해를 방지하려는 공익이 업체의 불이익보다 크다고 보고 계획 변경 거부도 적법하다고 판단해 진안군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 인천시와 롯데그룹이 계양산 골프장 개발을 놓고 벌인 소송에서도 환경보호가 중요한 가치로 간주됐다. 인천시는 2009년 계양산을 골프장으로 조성하는 내용의 도시관리계획을 승인했지만 2012년 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도시관리계획을 철회하면서 소송이 벌어졌다.

대법원은 행정청이 환경보전 등 공익과 사업자의 신뢰·투자이익을 비교해야 하지만 객관성과 합리성을 갖췄다면 계획을 변경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청주 폐기물 시설 사건에서 법원이 업체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적합 통보 외에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는 주민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업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기존 소각시설과 매립장을 옮기면 이전사업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업체도 이를 믿고 기존 사업권을 포기하고 새 부지를 마련하는 등 희생을 감수했다.

결국 판례가 제시한 기준은 ‘사업자의 신뢰와 주민 환경권 중 어느 하나가 우선한다’는 것이 아니라 행정청이 어느 정도로 구체적인 약속을 했는지, 사업자가 그 약속을 믿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약속을 뒤집을 만큼의 환경상 위험이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됐는지다.



이승우 한국경제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