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학습공간 제공…동질성 인정”
[법알못 판례 읽기]
소비자에게 학습 공간을 제공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는 동종 영업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최근 나왔다. 수원지방법원 제17민사부(부장판사 이민수)는 A 씨가 B 씨를 상대로 제기한 경업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지난 7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B 씨가 영업 양도 후 일정 기간 동종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제한한 의무를 어겼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B 씨에게 스터디카페 영업을 폐지하고 2034년까지 인접 지역에서 스터디카페나 독서실 등을 열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권리금 4500만원에 독서실 양수
B 씨는 경기 수원의 한 독서실 운영자였다. B 씨는 2024년 8월 A 씨에게 해당 독서실을 권리금 4500만원에 넘기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A 씨는 이후 B 씨에게 계약금과 잔금 등을 모두 지급했다.
그런데 B 씨는 A 씨에게 독서실을 양수한 지 8개월 만인 작년 5월에 이 독서실 인근에서 관리형 스터디카페를 열었다. 이후 A 씨와 B 씨의 갈등이 시작됐다. A 씨는 B 씨와 맺은 계약은 ‘영업양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 씨가 인접한 지역에서 동종 영업을 하면 안 되는 경업금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B 씨는 2024년 9월(A 씨가 독서실 운영을 시작한 날)부터 10년간 수원 또는 인접한 시·군에서 독서실과 동종의 영업을 해선 안 되며, 판결 확정일부터 스터디카페 영업을 폐지하는 날까지 1일당 30만원의 간접강제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 씨는 이번 계약은 영업양도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설령 영업양도에 해당하더라도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는 동종 영업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자신에게 경업금지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A 씨는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진행한 독서실 환경개선공사 비용(471만원)에 대한 손해배상과 위자료 1000만원도 청구했다.
B 씨는 이에 대해 “환경개선공사와 스터디카페 영업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고 위자료 액수는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A 씨와 B 씨가 맺은 계약이 영업양도에 해당하는지가 첫 번째 쟁점으로 떠올랐다.
두 사람의 계약서 제목은 ‘상가건물 임대차 권리금 계약서’였다. 또한 계약서에 경업금지 의무 관련 내용은 기재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독서실의 영업과 관련된 일체의 재산을 양도·양수하는 내용의 (이번) 계약은 상법에서 정한 영업양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A 씨 손을 들어줬다.
B 씨는 권리금의 대가로 A 씨에게 영업시설과 비품을 포함해 독서실과 관련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모두 이전했다. 특약사항에 B 씨는 A 씨가 독서실 운영 업무를 배울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A 씨는 B 씨가 사용하던 상호를 계속 썼고 B 씨가 고용한 직원들도 그대로 승계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할 때 계약서에 영업양도 관련 내용이 명시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더라도 영업양도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두 번째 쟁점은 독서실과 스터디카페가 동종 업종에 해당하는지였다. B 씨가 운영한 스터디카페는 생활 관리(입퇴실 시간 관리, 핸드폰 수거, 학습 외 사이트 차단, 수면 또는 소음 시 벌점 등)와 학습관리(공부 시간 관리, 일일·주간 학습 플랜 관리, 학습 결과 관리, 상담 등), 학습·콘텐츠 관리(모의고사, 주간 학습 리포트 제공, 시험성적 분석 등)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반면 독서실에선 ‘총무’라 불리는 직원이 정리, 청소, 비품 관리 등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했다. 학생들은 키오스크를 통해 입실과 자리 이동, 이용 시간 연장, 퇴실 등을 자유롭게 결정했다.
가격 차이도 컸다. 독서실 이용 가격은 월 10만원(오픈석)에서 14만원(독립석) 사이였다. 그러나 스터디카페 이용 가격은 월 43만~54만원 수준이었다. 과세관청도 독서실과 스터디카페에 다른 업종코드를 부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본질적으로는 소비자에게 학습 공간을 제공하는 장소라는 측면에서 동질성을 지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는 소음 수준과 편의성, 가격, 이용 방법, 제공되는 학습 관련 서비스의 수준 등 여러 측면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이 같은 차이는 소비자가 하나를 선택하면서 고려하는 여러 요소에 해당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독서실과 스터디카페가 직선거리로 불과 110m 떨어져 있었고 A 씨의 독서실에서 B 씨의 스터디카페로 이탈한 학생이 일부 있었던 점도 두 업종이 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재판부는 “B 씨는 스터디카페 영업을 폐지해야 하고 2034년 9월까지 수원 및 인접한 시·군에서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 영업을 해선 안 되는 의무를 부담한다”고 결론 내렸다.
[돋보기]
손해배상은 기각, 위자료는 인용
이번 사건에서 A 씨가 요구한 손해배상과 위자료 청구 부분에 대해선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다. A 씨는 2025년 10월 독서실에 새로운 책상을 설치하는 작업에 471만원을 지출했다. A 씨는 B 씨가 독서실 인근에 스터디카페를 열어 고객 이탈과 매출 하락이 우려되자 이 돈을 쓰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 씨가 B 씨의 경업금지 의무 위반으로 인해 이 환경개선공사 비용을 지출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 씨가 새 책상을 설치한 건 기존에 사용하던 책상의 노후화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즉 A 씨가 지출한 471만원은 본인 영업을 위해 쓴 돈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는 판단이다.
B 씨가 A 씨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700만원으로 정했다. A 씨는 당초 1000만원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B 씨의 경업금지 의무 위반으로 A 씨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리란 점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판단된다”며 “독서실의 양도 경위,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한 권리금의 액수, 독서실과 스터디카페 사이의 거리, 피고의 영업 기간 및 매출액 감소 현황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해 액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B 씨가 경업금지 의무를 위반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며 B 씨에게 배상금 지급 명령도 내렸다. 이번 판결의 실효성 있는 집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재판부는 만약 판결 확정 이후에도 B 씨가 스터디카페 영업 폐지 등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B 씨가 A 씨에게 의무 위반일 하루당 3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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