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경로 법제화
배출권거래제 등 기업 규제 하한선 명시
전환금융·녹색국채 등 감축 지원 기반 마련
국회는 26일 본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찬성 174표, 반대 15표, 기권 15표로 가결했다. 개정안은 2024년 헌법재판소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법률에 제시하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입법이다.
2035년 이후 감축 ‘하한선’ 법제화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2050년까지의 감축경로가 법률에 구체적으로 들어간 점이다. 2018년 국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2035년 감축목표는 53~61%로 정했다. 2040년은 하한 69% 이상, 상한 80% 수준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2045년은 하한 84% 이상, 상한 90% 수준에서 정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2030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까지 어떤 속도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지가 법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았다. 헌재는 2024년 8월 미래세대에 과도한 감축 부담이 넘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탄소중립기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번 개정으로 2035년 이후 감축경로의 최소 기준이 법률에 들어가게 됐다.
특히 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감축목표의 ‘하한’이다. 개정안은 2035년 이후 감축목표를 상한과 하한의 범위로 제시하면서 하한에는 배출권거래제 등 규제를 적용하도록 명시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2035년 53%, 2040년 69% 이상, 2045년 84% 이상이라는 감축경로가 향후 배출권 할당과 산업·에너지 정책을 설계하는 최소 기준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2040년과 2045년의 정확한 목표가 당장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40년 감축목표의 상·하한을 2031년 6월 말까지, 2045년 목표는 2036년 6월 말까지 각각 확정해야 한다. 먼저 2035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2031~2034년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를 2027년 6월 말까지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산업·발전·수송·건물 등 부문별 감축량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기업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환금융·녹색국채 지원 길 열려
산업계의 부담을 고려한 지원 근거도 함께 마련됐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기술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상용화 등에 행정·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감축목표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업이 저탄소 설비와 기술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병행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정의 또 다른 핵심은 ‘전환금융’의 법제화다. 개정안은 전환금융을 녹색분류체계나 정부가 마련한 전환 경로에 기초해 저탄소 전환 활동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완전히 친환경적인 사업뿐 아니라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지만 단기간에 녹색산업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업종의 감축 투자에도 금융을 공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은 녹색금융과 전환금융 대상 사업에 자금을 우선 공급하거나 보증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한 별도 계정을 운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정부가 직접 ‘녹색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녹색국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기후대응기금의 재원으로 편입하되 다른 재원과 구분해 별도 계정으로 관리해야 한다. 사용처도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등 발행 목적에 맞는 사업으로 제한된다.
민간 녹색채권 시장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정부는 녹색·전환 활동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이나 기관에 이자 비용 등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기업의 저탄소 설비투자에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 채권시장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는 셈이다.
금융회사에도 기후 대응과 관련한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다. 금융회사는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을 위한 전략과 목표,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금융상품을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부위원회와 전담임원 등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기후위험 관리 기준을 마련하며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이 조항은 직접적인 의무보다 ‘노력해야 한다’는 책무 형태다. 위반 시 제재를 부과하는 규정도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제 금융회사 경영과 금융상품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향후 정부 정책과 감독체계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기후과학위 신설…정책 검증 강화
기후정책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장치도 강화된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산하에 15~20명 규모의 독립적인 기후과학위원회를 설치한다. 위원회는 국가 감축목표와 기후적응 정책의 진행 상황을 분석하고 필요하면 정부기관에 정책 수정을 권고할 수 있다. 권고를 받은 기관은 조치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국립기후과학원의 역할도 확대된다.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 전망뿐 아니라 탄소 배출로 발생하는 피해를 화폐가치로 계산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과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총량인 ‘탄소예산’을 분석하게 된다.
개정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나 시행된다. 이에 따라 국내 기후정책의 초점도 단순히 장기 감축목표를 선언하는 단계에서 목표를 실제 산업·금융정책으로 연결하는 단계로 이동할 전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2035년 이후 감축목표 자체보다 내년부터 구체화될 부문별·연도별 감축경로와 배출권거래제 할당 방식, 전환금융 지원 기준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이번 개정안에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여야의 의지가 담겼다”며 “산업과 농어업,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 등 많은 정책이 앞으로 상임위원회 활동을 통해 구체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경제 체제를 바꾸고 더 빠른 감축을 통해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감축 경로가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서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매년 같은 양을 기계적으로 줄이는 선형 감축 경로를 택했다”며 “기후위기 대응은 특정 연도의 감축량이 아니라 대기에 누적되는 온실가스 총량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에 충분히 감축하지 못하면 그 사이 배출된 온실가스로 온난화가 더 심해지고, 남은 탄소예산이 줄어 그 부담이 미래세대에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