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명 굶을 판”… 전쟁·기후·무역 3중고에 세계 밥상 ‘휘청’
전 세계 주요 곡창지대가 전쟁과 이상기후, 무역 갈등이라는 ‘3중고’에 직면하면서 글로벌 식량 공급망에 경고등이 켜졌다. 생산량 감소에 주요 운송로 차질까지 겹치며 곡물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부담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세계 식량 체계가 원활한 교역과 저렴한 에너지, 안정적인 기후라는 세 가지 전제에 의존해왔지만 최근 이들 조건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곡물은 밀이다. 밀은 빵과 면류를 비롯해 전 세계 식탁에서 폭넓게 소비되는 대표적인 곡물인 만큼 그 파급력 역시 크다. 미국 농무부는 올해 미국의 밀 수확량이 1970년 이후 56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산지인 대평원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재배 면적과 단위당 생산량이 모두 감소한 영향이다. 미국산 밀 가격은 올해 약 25% 상승했다.

프랑스 또한 기록적인 폭염에 밀 수확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으며 독일에서도 가뭄과 고온의 영향으로 밀을 비롯한 주요 작물의 수확량이 감소했다. 유럽 농업무역단체 코세랄은 올해 유럽과 영국의 전체 곡물 생산량을 2억8660만t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3억1000만t보다 크게 줄어든 수준이다. 호주 역시 비료 가격 상승으로 올해 밀 재배 면적을 줄였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비료 비용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운송 차질도 식량 공급을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교역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요 수출국이다. 하지만 최근 흑해에서 양국의 곡물 수출 터미널과 선박을 겨냥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곡물 운송에 제동이 걸렸다. 실제로 러시아 노보로시스크항의 곡물 터미널은 운영이 중단됐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 역시 공격으로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다.

홍해에서도 예멘 후티 반군으로 인해 곡물 운송선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면서 운송 거리와 비용이 늘고 있다. 기후 악화로 인해 대체 수송로 차질도 겹쳤다. 다뉴브강과 라인강은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졌으며, 엘니뇨의 영향으로 파나마운하의 수위도 떨어진 상태다.

식량 가격 상승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집트는 밀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어 가격 상승에 취약하며, 방글라데시 등 일부 신흥국은 미국의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국산 밀 대량 구매에 합의하면서 높은 가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밀 자급률이 1%대에 불과한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식량계획(WFP)은 하루 세끼를 해결하기 어려운 인구가 현재 2억2500만명에서 2억7400만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중미·아프리카 남부 지역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전쟁과 기후 충격, 무역 갈등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기존의 글로벌 식량 공급 체계가 한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궬프대의 에반 프레이저 교수는 “원활한 무역, 저렴한 에너지, 안정적인 기후”를 전제로 구축된 식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