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에 한국 품에 돌아온 용산공원
반환률은 31.5%에 불과
전문가 "공급 속도전? 수요조사가 우선"
을사늑약 이후 120년 만에 한국의 품으로 돌아온 땅, 남산과 한강을 잇는 서울의 마지막 대형 녹지. 용산공원을 둘러싼 주택 공급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서울 한복판에 생긴 여의도 면적에 맞먹는 빈 땅을 두고 주택 공급 카드를 꺼냈고, 서울시는 용산공원 본체 부지는 건드릴 수 없다고 맞섰다. 서울 집값이 뛸 때마다 그린벨트와 군 골프장, 공공부지가 공급 카드로 등장했지만 용산을 둘러싼 문제는 더 복잡하다. 20년간 국가공원으로 만들기로 한 약속과 특별법, 미군기지 반환 과정과 오염토 정화, 서울의 녹지축이라는 문제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대신 오 시장이 강남구 탄천물재생센터를 이전해 주택과 산업시설을 짓는 대안을 제시했고 김 장관이 이를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역시 “용산공원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체 부지를 검토할 뜻을 밝혔다. 공급 부족 때마다 불려나온 ‘녹지’
2020년 문재인 정부의 8·4 대책에서는 ‘쓸 수 있는 땅은 모두 찾는다’는 식의 공급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태릉CC 1만 가구, 정부과천청사 4000가구, 캠프킴 3100가구를 한꺼번에 내놨다. 다만 태릉CC는 교통·녹지 훼손·세계유산 논란으로 1만 가구에서 6800가구로 줄었고 수년간 표류했다. 과천청사 4000가구 계획은 주민 반발 끝에 철회됐다. 2024년 발표된 서리풀지구 2만 가구는 올해 공공주택지구 지정까지 마치며 실제 사업 단계에 들어갔다.
용산공원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은 처음이 아니다. 20년 전인 2006년 8월 2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을 열었다. 100년 넘게 외국군이 차지했던 서울 한복판의 땅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용산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야 할 자산으로 규정하며 긴 시야에서 공원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20년 전에도 용산 미군기지의 완전한 공원화를 주장했다. 서울시는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특별법에 향후 공원 일부를 개발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보고 반환기지 전체를 온전히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반발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공원의 범위와 개발 가능성을 놓고 충돌했던 것이다.
그 갈등을 거쳐 2007년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법은 국가가 ‘본체부지 전체’를 용산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공원 외 목적으로 용도를 바꾸거나 처분할 수 없도록 했다. 20년 후 용산은 또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섰다. 고려 시대부터 외국군 주둔했던 ‘요충지’
지금과 같은 대규모 군사기지가 들어선 것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다. 일본은 용산에 군용지를 확보해 병영과 군수시설을 세웠고 광복 뒤에는 미군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1953년 미8군사령부가 들어선 뒤 용산은 수십 년간 시민이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땅’으로 남았다.
반환 논의는 1990년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에 합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03년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이 확정되면서 공원화 논의가 본격화됐고 2005년 정부는 이 땅을 국가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30여 년에 걸쳐 반환을 논의한 용산기지는 아직 한국 정부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땅으로 모두 돌아온 것도 아니다. 용산기지 본체부지 300만㎡ 가운데 현재까지 반환된 면적은 31.5%에 불과하다. 전체의 68.5%는 여전히 반환 과정에 놓여 있다. 2019년 한·미가 전체 기지를 한꺼번에 넘겨받는 대신 단계적으로 반환하기로 한 뒤 2020년부터 반환 속도가 빨라졌지만 2023년 말 이후 대규모 추가 반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용산공원 주택 공급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미군기지 반환이 언제 끝날지 정해지지 않은 데다 반환 뒤에도 오염 조사와 정화, 각종 행정절차가 남아 있다. 지금 공급을 결정해도 당장 착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환과 무관한 부지도 마찬가지다. 옛 방위사업청과 군인아파트 부지는 우리 정부 소유지만 이미 용산공원조성지구에 포함돼 있다. 한국조경학회는 이곳을 고밀 개발할 경우 남산과 해방촌, 용산공원을 잇는 녹지축과 남산 경관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식 입장문을 발표한 한국조경학회는 2005년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부터 종합기본계획과 국제설계공모, 공론화 과정 등에 참여해온 단체다. 현재 학회장을 맡고 있는 배정한 서울대 교수는 용산공원추진협의회 의장을 지내고 종합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물론 반환된 부지부터 환경조사와 정화 절차를 밟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먼저 반환된 캠프킴 등에서는 오염 정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군사기지로 장기간 사용된 땅인 만큼 토양과 지하수 오염 문제를 건너뛸 수 없다. 캠프킴도 2020년 반환된 뒤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정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조경학회는 실제 공급까지 10년 이상 걸릴 가능성도 제기한다. 미군기지 반환과 오염 정화, 법·행정절차 등을 감안하면 용산공원 주택이 2040년 전후에야 입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회는 “2040년에야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로 현재의 집값을 잡을 수 없다”며 신속 공급 대책으로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2040년 입주할 집으로 집값 잡을 수 있나”오 시장이 용산 대신 꺼내든 카드는 재개발·재건축이다. 서울시는 현재 추진 중인 정비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면 2031년까지 31만 호 착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035년까지 준공 목표는 37만7000호다. 현재 진행 중인 253개 정비구역 가운데 85개 구역 8만5000호는 2026~2028년 착공을 집중 관리하는 핵심 사업으로 분류했다.
서울시는 새로운 부지를 찾기보다 기존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완화,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상향, 재개발 임대주택 비율 조정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오 시장이 동시에 내놓은 탄천물재생센터 카드도 같은 맥락이다. 용산공원을 포기하지 않고도 이미 도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부지를 입체적으로 재편해 공급하자는 것이다. 서울시는 강남구 일원동 탄천물재생센터 39만3000㎡ 일대에 산업 기능과 청년주택을 결합하면 최대 1만3000가구 수준의 공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용산 부지 활용을 두고 전문가들의 입장 역시 갈린다. 하지만 집값이 오를 때마다 공급 물량부터 서둘러 내놓는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수요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는지 충분히 따지지 않은 채 ‘몇만 가구’라는 숫자부터 제시해서는 시장 안정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원철 연세대 미래부동산개발 최고위과정 책임교수는 “용산공원이든 서리풀이든 개발에는 10년 이상 걸린다”며 “집값이 오를 때마다 공급 대책을 쏟아내기보다 실제 수요가 어디에 있고 어떤 주택을 원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아자부다이힐즈처럼 서울의 중심이자 도시 경쟁력이 큰 용산 역시 고밀 아파트로 채우기보다 공원을 유지하면서 저층 주거와 상업시설 등을 결합하는 복합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청년주택 등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한 공급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붙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주택을 대량 공급하면 용산의 소형 주택에는 일부 영향을 미치겠지만 청년이나 신혼부부의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가격 안정이 아닌 남는 것 집밖에 없는 결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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