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진학사-텐덤 부정경쟁행위 금지 소송 파기 환송
‘리뷰 데이터’ 성과 인정받았지만, 도용은 입증 못 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최근 입시정보업체 진학사가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과 교육 스타트업 텐덤이 낸 부정경쟁행위 금지·손해배상 반소에서 원심 일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데이터 제공 후 비슷한 서비스 출시
진학사는 대학 원서 접수와 입시정보 제공 사업 등을 하고 있다. 텐덤은 대학 재학생이 작성한 학교·학과의 리뷰를 수험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운영했다. 양사는 2018년 대학 리뷰 서비스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협약에는 관련 업무상·기술상 기밀을 상대방의 서면 동의 없이 다른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텐덤은 협약에 따라 진학사에 대학 리뷰 데이터를 엑셀 파일 형식으로 제공했다.
이후에는 자사 서버에 저장된 정보를 진학사에서 직접 조회할 수 있는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도 제공했다. 진학사는 이를 이용해 2018년과 2019년 초 자사 사이트 이용자들에게 대학 리뷰를 보여줬다.
하지만 진학사는 2019년 4월 자체 대학 리뷰 서비스를 출시했다. 텐덤은 진학사가 협업 과정에서 받은 리뷰 데이터와 API를 활용해 경쟁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학사는 별도 이벤트를 통해 직접 리뷰를 수집했고, 기존에 운영하던 인터넷 강좌, 기업 리뷰 서비스의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으로 개발했다고 맞섰다. 당시 특허청은 텐덤의 신고를 받아 진학사의 초기 리뷰 제공행위가 아이디어 탈취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일정 기간의 사용료 지급을 권고했다.
진학사는 텐덤에 대한 부정경쟁행위·불법행위 손해배상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본소를 제기했다. 텐덤 역시 리뷰 데이터와 API의 무단 사용을 이유로 서비스 제공 금지와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반소를 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2022년 텐덤의 반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진학사가 리뷰 데이터를 받아 이용자들에게 제공한 초기 행위는 정당한 사용이라고 판단했다. 텐덤이 부정경쟁행위라고 구체적으로 다투는 범위에서는 진학사의 손해배상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다만 나머지 서비스 제공행위까지 포괄적으로 채무부존재 확인을 구한 부분은 확인의 이익이 없다며 소를 각하했다. 텐덤은 1심 판결에 항소했다. 청구취지를 변경해 리뷰 데이터의 전부 또는 일부 사용금지, 특정 형식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금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2023년 9월 1심판결을 일부 뒤집었다. 텐덤이 수집·가공한 리뷰 데이터뿐 아니라 B사 서버의 정보를 조회하기 위해 제작한 API도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의 ‘성과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PI 제작에 노력과 비용, 기간이 투입됐고 구체적인 내용도 공공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항소심은 진학사가 텐덤의 리뷰 데이터와 API를 사용해 경쟁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봤다. 진학사는 텐덤의 리뷰 데이터와 API를 취급한 뒤 두 달 만에 자체 서비스를 출시했다.
항소심은 이러한 이유 등을 근거로 진학사의 서비스가 이용자에게 제공된 것은 부정경쟁행위로 봤다. 다만 서비스를 이미 종료해 서비스 금지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데이터가 개발에 쓰였는지 입증돼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API와 리뷰 데이터를 구분해서 살펴봤다. 대법원은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조회하는 텐덤의 API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API의 구동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텐덤의 API 구조가 범용적이었고 독자성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리뷰 데이터에 대해선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의 ‘성과 등’에 해당한다는 항소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무단 사용의 증명책임을 두고 결론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파)목의 부정경쟁행위가 성립하려면 침해자가 타인의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했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하고 이 책임은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다고 밝혔다.
텐덤의 리뷰 데이터가 진학사의 서비스 개발에 실제로 사용됐다는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반면 진학사는 2019년 4월 서비스 출시 무렵부터 이듬해 1월까지 여러 차례 이벤트를 통해 리뷰를 직접 수집하고 경품비를 지출했다는 자료를 냈다.
진학사의 대학 리뷰 서비스가 종전에 운영하던 기업 리뷰 서비스와 상당 부분 유사한 표현 방식과 구성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독자 개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정으로 평가됐다. 결국 부정경쟁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플랫폼·데이터 산업에서 보호 대상의 범위와 침해 입증의 기준을 함께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용자가 작성한 개별 리뷰라도 사업자가 수집·가공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면 집합적 결과는 부정경쟁방지법상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데이터가 상대방에게 제공됐다는 사실만으로 침해가 추정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 보유자는 어떤 데이터가 언제, 어떤 경로로 경쟁 서비스에 사용됐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해야만 침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상대방의 무단 사용 사실은 침해를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한다는 증명책임 법리를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부정경쟁행위 인정받으려면
경쟁업체가 비슷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곧바로 부정경쟁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법원 판례를 보면 먼저 원고가 주장하는 대상이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인지 살피고 상대방이 성과를 실제로 사용했는지, 사용 방법이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지 판단한다.
G마켓과 11번가 사이에 벌어진 상품 검색 기술 소송은 ‘성과’를 인정받지 못해 원고의 패소로 끝났다. G마켓은 2017년 자사 온라인쇼핑몰에 상품등록솔루션 ‘상품 2.0’을 도입했다. 판매자가 여러 개의 상품을 묶어서 팔 경우 구매페이지 첫 화면에서 상품별로 가격이 따로 표시되게 하는 기술이다. 이른바 ‘옵션 낚시 상품’이 논란으로 떠오르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선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몇 개월 뒤 11번가가 이와 유사한 ‘단일상품 서비스’ 플랫폼을 도입했다. G마켓은 자사 기술이 무단 도용됐다며 소송을 냈지만 1·2·3심 모두 패소했다. 대법원은 개별 상품 단위로 가격을 등록하는 구조가 공정위의 대안에 기초한 것으로 독창적이라 볼 수 없고 이를 구현하는 기술 역시 보호할 가치가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SM C&C와 제너시스BBQ 간의 소송에선 부정경쟁행위가 인정됐다. BBQ의 마케팅을 맡아 온 SM C&C는 2017년 신제품의 마케팅 방향을 정해달라는 제너시스BBQ의 요청을 받았다. 이 업체는 ‘써프라이드’라는 제품명을 제안했고 최종 광고 콘티도 제공했다.
하지만 제너시스BBQ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새로운 업체와 마케팅 대행 계약을 맺었다. 다음 달 새 업체가 제작한 ‘써프라이드’ 치킨 광고가 공개되자 SM C&C는 소송을 냈다. 1심에선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지만 2심에선 콘티와 실제 방송된 광고 사이의 유사성이 인정됐다.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부정경쟁행위로 결론을 내렸다.
이승우 한국경제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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