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함으로 문 연 미셸 스틸, 신뢰로 연결해야 할 과제 남아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8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과 접견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한국경제신문 기자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8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과 접견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한국경제신문 기자
새로 부임한 대사가 처음 어디를 찾고 누구를 만나는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의 부임 초기 행보가 눈길을 끄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 7월 30일 한국에 부임한 스틸 대사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8월 4일 조현 외교부 장관에게 신임장 사본을 제출했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도 만나 양국 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8월 12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이후 조정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일본·이스라엘 등 주요국 대사들과 만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 장면은 따로 있었다. 그는 부임 직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찾고 남대문시장을 걸었다. 호떡을 들고 상인들과 어울렸고 남편과 손 하트를 만들기도 했다. 부모가 다녔던 것으로 알려진 영락교회도 방문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국 위원,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등을 거쳐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이제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태어난 나라에 돌아왔다. 한국계 첫 여성 주한 미국대사라는 상징성도 작지 않다.
남대문시장을 찾아 호떡을 사먹고 상인들과 한국어로 인사하는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 사진=주한미국대사관 SNS
남대문시장을 찾아 호떡을 사먹고 상인들과 한국어로 인사하는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 사진=주한미국대사관 SNS
Appearance
화려함보다 역할을 앞세운 옷차림


스틸 대사의 옷차림에서 먼저 읽히는 것은 절제다. 블랙과 네이비, 그레이, 화이트처럼 차분한 색을 중심으로 공식 석상의 격식을 지킨다. 유행이나 장식보다 단정한 실루엣을 택하는 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신임장 제정식에서는 짙은 재킷에 그레이 톱을 매치하고 브로치로 포인트를 줬다. 장식을 최소화해 옷보다 얼굴과 태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게 한다. 조정식 국회의장을 만났을 때는 짙은 재킷에 화이트 이너를 입었다. 어두운 재킷과 밝은 이너의 대비가 단정하고 명료한 인상을 만든다.

다른 나라 대사들과의 만남에서는 블랙 원피스를 선택해 격식은 유지하면서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그의 옷차림은 ‘보여주기’보다 ‘역할에 맞추기’에 가깝다.

색과 장식을 절제하고 자리의 성격에 따라 격식의 정도를 조절한다. 외교 현장에서 옷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기 이전에 상대와 자리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언어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미셸 스틸 주한 미국 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미셸 스틸 주한 미국 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Behavior
손 하트는 가벼웠지만 선택은 가볍지 않았다


스틸 대사의 초반 행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국과의 인연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직접 움직였다는 점이다. 남대문시장에서 호떡을 들고 상인들과 대화하고 남편과 손 하트를 만든 모습은 전형적인 외교 행보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남대문시장에서 옛 추억이 떠올랐다는 소회도 밝혔다. 한국과의 연결을 익숙한 장소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준 셈이다. 반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자세와 표정이 절제돼 있고 제스처도 크지 않다.

시장에서는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공식 석상에서는 의전에 맞는 태도를 취한다. 상황에 따라 행동의 온도를 조절한다. 연방 하원의원 경력을 현재 역할과 연결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양국 의원 간 교류를 뒷받침할 협력체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스틸 대사는 의회 차원의 소통이 중요하다며 자신이 일조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거의 경력을 내세우기보다 현재의 외교 관계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이야기한 것이다.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8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정식 국회의장에게 감사패를 받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8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정식 국회의장에게 감사패를 받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Communication
700권의 책에서 드러난 소통의 감각


스틸 대사의 소통 스타일을 잘 보여준 장면은 국회에서 나왔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6·25전쟁 당시 미국 대사관이 피란 국회에 제공한 책 700권이 국회도서관의 출발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하자 스틸 대사는 자신이 알기로는 ‘기증’이 아니라 ‘대여’였다며 다시 돌려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짧은 농담이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역사적 의미를 흐리지 않는 선에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유머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보다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한 것이다.

공식 메시지는 보다 분명하다. 스틸 대사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와의 만남에서는 한·미·일 협력을 통한 평화롭고 안전하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이라는 공동 비전을 언급했다.

개인적 인연을 말할 때는 경험과 추억을, 미국을 대표할 때는 동맹과 협력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 두 언어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느냐가 그의 소통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친숙함 다음에 보여줘야 할 것

스틸 대사에게 한국계라는 배경은 남다른 자산이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한국 사회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에서 친숙함이 곧 합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한·미 사이에는 안보뿐 아니라 통상, 투자, 원자력, 조선 등 세밀하게 조정해야 할 의제들이 놓여 있다.

생각이 엇갈릴 때 서로의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고 접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미국에 정확히 전달하고 미국의 입장을 한국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옷차림에서 보여준 절제와 안정감, 시장에서 보여준 친근함이 신뢰로 연결된다면 그의 강점은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 소통에서도 공감을 넘어 이해가 충돌하는 순간 설득과 조정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남대문시장의 호떡과 손 하트는 좋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외교관의 진짜 역량은 양국 사이에 쉽지 않은 문제가 놓였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친숙함으로 문을 연 미셸 스틸. 이제 그 문을 신뢰로 연결하는 일이 남았다.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사진=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제공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사진=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제공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