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생산성 높이면 물가 하방 압력 커지지만
반도체 수출 증가에 실질 구매력 개선된 韓 예외
그런데 이번 호황의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은 다소 역설적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인다면 같은 노동과 자본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경제의 공급 능력이 커지고 생산비용이 낮아지므로 다른 조건이 같다면 물가에는 하방 압력이 생겨야 한다. 생산성이 빠르게 높아진다면 성장률은 높아지면서도 물가는 안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 한국에서는 AI 호황이 오히려 금리인상의 배경이 되고 있을까.
답은 같은 AI 혁신이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에 서로 다른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AI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세계 전체에는 긍정적인 공급충격이다. 그러나 반도체를 대규모로 수출하는 한국에는 당분간 수출품에 대한 강한 수요충격으로 들어올 수 있다. AI가 생산성을 얼마나 높일지는 시간이 지나야 확인되지만 데이터센터와 AI 서비스에 필요한 반도체 주문은 이미 크게 늘고 있다. 생산성 효과는 천천히 나타나는 반면 수출과 소득 효과는 먼저 나타난다는 얘기다.
실제 소득 움직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3.8% 늘었지만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13.2% 증가했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좋아지면서 생산량보다 우리 경제의 실질 구매력이 훨씬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같은 양을 수출해도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면 기업·가계가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이 증가한다. 한국은행도 소득 개선이 기업의 투자여력과 가계 구매력을 높여 내수로 파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기업이익과 투자, 임금과 소비로 이어진다면 총수요가 커지고 물가압력도 높아질 수 있다.
대만은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대만은 올해 GDP가 11.1% 성장하고 민간 고정투자도 11.6% 늘어날 것으로 예상될 만큼 반도체 호황이 한국보다 강하다. 그런데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은 2.1% 정도고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2.0%로 유지하고 있다. 한 가지 차이는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이 국내 소비로 전환되는 정도다. 대만의 2025년 국민저축률은 43.7%로 적어도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 부분이 소비보다 저축과 해외자산 축적으로 흘러가면서 국내 수요와 물가로의 파급이 제한된 것이다. 같은 반도체 호황이라도 그 소득이 얼마나 빠르게 국내 수요로 전환되는지가 물가의 모습을 가르는 셈이다.
결국 AI의 생산성 효과는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의 공급능력을 높이지만 지금 한국에 먼저 도착한 것은 반도체 수출을 통한 강한 수요와 소득충격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라는 사실과 AI 호황이 지금 한국의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모순이 아니다. 같은 변화가 서로 다른 경로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물가압력이 얼마나 커지는지는 공급이 얼마나 빠르게 늘어나는지뿐 아니라 벌어들인 소득이 얼마나 빠르게 국내 수요로 전환되는지에도 달려 있다.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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