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화제의 리포트는 LS증권 최광혁 애널리스트가 8월 31일 펴낸 ‘무엇이 환율을 흔들었나-시선은 수급에서 펀더멘털로’를 선정했다.
최 애널리스트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자금의 이동이나 기업의 달러 환전 등 단기적인 수급 요인에 크게 좌우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같은 단기 변수의 영향이 줄어들고 성장률과 금리, 달러의 방향성 등 펀더멘털 요인이 환율의 방향을 가를 것으로 봤다. 국내 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는 데다 달러도 장기적으로 약세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원·달러 환율은 점차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 환율, 왜 올랐나?
통상 수출이 늘어 무역흑자가 확대되면 국내로 유입되는 달러가 늘면서 원화 가치에는 상승 압력이 생긴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받은 달러를 국내에서 원화로 환전하면 외환시장 내 달러 공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 같은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수출대금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외화예금으로 쌓아두면서 달러 유입이 실제 시장 공급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역흑자는 커졌지만 달러가 원화로 환전되지 않으면서 원·달러 환율과의 괴리가 커진 셈이다.
여기에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까지 겹쳤다.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가 빠르게 오르는 과정에서 외국인의 순매도가 크게 늘었고 주식 매도 대금이 달러로 환전돼 빠져나가면서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웠다.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 역시 달러의 국내 유입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내 외환시장 자체에 달러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외화자금시장의 흐름을 보면 달러 부족이 심화됐다고 볼 만한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최근 고환율은 달러 자체의 부족보다는 기업의 환전 지연과 외국인 자금 이동 등 수급 변화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해석된다.
◆ 흔들리는 달러 강세
수급이 정상화되는 것만으로 환율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달러 자체의 방향도 중요하다. 최 애널리스트는 달러의 약세 흐름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가장 큰 배경은 미국의 재정과 부채 문제다. 미국 재정수지 적자는 2조달러를 넘어섰고 총부채 역시 40조달러를 돌파했다. 국채 발행과 이자 부담이 함께 늘면서 미국 재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달러 가치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성장 우위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도 달러 강세를 제약한다.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간 성장률 전망 격차가 좁혀지는 가운데 미국 내 소비와 고용 증가세도 점차 둔화하고 있다. AI 투자 역시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지만 증가 속도는 낮아지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예전만큼 강하게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금리를 동결하는 사이 한국과 일본 등이 금리를 올리면서 국가 간 금리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도 달러 강세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다만 달러가 일방적으로 약해질 가능성은 낮다.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어 위험회피 국면에서는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다시 커질 수 있다. 여기에 반도체와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라 관련 거래에서 달러 결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도 달러 가치를 떠받치는 요인이다. LS증권은 이 같은 상승·하락 요인을 종합해 달러인덱스가 96~101포인트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 달러 유입에 웃는 원화
하이닉스의 ADR 조달액은 265억달러로 상반기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액(316억달러)에 육박한다. 조달 자금은 7월 이후 국내로 분산 유입됐고 일부는 원화로 환전됐다. 여기에 앞으로 추가 환전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더해지면서 외환시장 내 달러 공급 압력이 커졌다.
대규모 달러 유입은 시장 전반의 분위기도 바꿨다. 환율이 내려가기 시작하자 수출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고 원화 강세를 예상한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이어졌다. 앞으로 기업들이 국내 투자나 주주환원을 위해 보유 달러를 원화로 바꾸기 시작하면 환율 하락 압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4월부터 시작된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도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탤 전망이다. WGBI는 세계 주요국의 국채를 담은 지수다. 지수 편입에 따라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 국채 투자가 늘면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과 원화 수요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 연말 환율 전망은
수급 요인의 영향력이 줄어든 자리에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다시 환율의 방향을 좌우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3.3%로, 2027년은 2.1%에서 2.9%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두 해의 성장률 전망을 동시에 큰 폭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연속적인 금리인상을 통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원화 가치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다만 원화에 우호적인 여건이 늘고 있다고 해서 환율이 과거의 낮은 수준까지 되돌아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성장률 회복과 금리 상승 등이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미국보다 낮아진 만큼 환율의 평균적인 수준은 과거보다 높게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LS증권은 올해 말 원·달러 환율이 1346~1452원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의 달러 환전 수요까지 반영한 모형에서는 12월 말 환율을 1360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주요 환율 변수의 변화에 따른 12개월 전망에서는 기본 시나리오로 1345원을 제시했다. 대규모 주주환원이 이뤄져 기업의 달러 환전이 크게 늘어날 경우에는 1285원까지 내려갈 수 있는 반면,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질 경우에는 1492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최근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키운 것은 외국인과 기업의 달러 수급이었지만 앞으로 환율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는 성장률과 금리, 달러의 장기 흐름 등 펀더멘털로 옮겨갈 전망이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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