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화점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식품관의 전면 리뉴얼’이다. 의류나 잡화 매출이 둔화된 상황에서 고객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인하고 오래 머물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식음료(F&B)’가 떠올랐다. 과거 백화점 식품관이 단순 가공식품을 판매하거나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을 모아놓은 수준에 그쳤다면 최근의 백화점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미식의 목적지’로 점포를 재단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10층 식당가를 최근 대대적으로 리뉴얼해 글로벌 미식 공간인 ‘에피원(EP.1)’과 강남권 첫 이탈리안 그로서란트 ‘이탈리(EATALY)’를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역시 지난해 스타 셰프 및 명장들과 협업한 프리미엄 델리 전문관을 운영하며 오픈 이후 폭발적인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1년 사이 1000만 명이 넘는 고객이 방문하며 ‘미식의 성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온라인쇼핑이 가격과 편의성을 장악한 시대에 백화점들은 신선한 식재료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즉석에서 조리된 음식의 온도와 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해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백화점이 웅장한 프리미엄 공간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면 편의점은 골목상권에서 ‘일상 속 미식’을 실현하고 있다. 편의점 간편식은 삼각김밥과 저가 도시락으로 대변되던 가성비 한 끼의 틀을 깨고 상품의 완성도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세븐일레븐이 선보인 ‘지역미식 냉장안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춘천식 닭갈비, 안동식 찜닭, 대구식 불막창 등 전국의 유명 맛집 메뉴를 모티브로 삼아 스팀 오븐 공정과 직화 공정을 도입해 전문점 수준의 맛을 구현했다. 홈쇼핑이나 유명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편의점 단독 상품으로 판매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외식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줄서 먹는 검증된 맛집들을 한국으로 들여오며 미식 전쟁도 가열되고 있다. 미국 멕시칸 패스트 캐주얼의 절대강자 ‘치폴레(Chipotle)’의 한국 상륙을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치폴레는 미국 S&P500 지수에 편입될 만큼 탄탄한 기업가치를 지닌 글로벌 브랜드다. 그간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장 진출을 희망하는 외식 브랜드 중 하나였다.
이 브랜드를 국내에 성공적으로 들여온 주역은 바로 파리바게뜨 등을 전개하는 상미당홀딩스(옛 SPC그룹)의 외식 전문 계열사 빅바이트컴퍼니다. 치폴레의 한국 진출은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본사 직영이 아닌 빅바이트컴퍼니와의 파트너십 기반의 합작법인(JV) ‘에스앤씨레스토랑홀딩스(S&C)’를 설립해 추진됐다. 과거 빅바이트컴퍼니가 쉐이크쉑·잠바 등 글로벌 외식 브랜드를 이끌어 온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런 역량을 앞세워 한국과 싱가포르의 치폴레 사업권을 확보했다는 후문이다.
상미당홀딩스는 연내 국내 매장을 3호점까지 확대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싱가포르 1호점을 열어 아시아 영토를 공략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이처럼 유통 대기업들이 맛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배경으로는 이른바 ‘미식의 대중화’ 트렌드를 꼽을 수 있다. SNS의 발달로 전 세계의 다양한 식문화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소비자들의 입맛은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까다로워졌다. 평범한 프랜차이즈의 규격화된 맛보다는 조리 과정에 이야기가 담겨 있고 셰프의 철학이 묻어나는 ‘단 하나뿐인 한 그릇’을 경험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경기 불황으로 전반적인 외식 및 주류 시장이 침체 기로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식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추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파인 다이닝, 독특한 철학을 가진 로컬 맛집, 그리고 구하기 힘든 장인의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관광하고 이를 SNS에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한 끼를 먹더라도 취향과 건강, 그리고 심리적 만족을 모두 충족시키려고 한다”며 “미식은 고객을 끌어모으는 핵심 경쟁력이 됐다”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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