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막히자 홍콩으로”…러시아 금, 7개월간 100t 대이동
서방의 경제 제재로 주요 시장에서 판로가 좁아진 러시아산 금이 홍콩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러시아가 금 수출의 무게중심을 아시아로 옮기는 가운데 중국의 막대한 수요가 맞물리면서 홍콩이 새로운 금 거래 거점으로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홍콩 무역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1~7월 홍콩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금은 약 100t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로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한 전체 금 물량(104t)과 맞먹는 수준이다. 금 현물 가격을 온스당 4491달러로 적용하면 약 144억달러(약 19조400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산 금의 유통 경로가 바뀐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본격화된 서방 제재 때문이다.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은 2022년부터 러시아산 금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런던귀금속시장협회(LBMA)도 러시아 정련소들을 국제 금 거래의 기준이 되는 ‘굿딜리버리’ 명단에서 제외했다.

런던과 뉴욕 등 주요 금 시장에서 거래가 어려워진 러시아산 금은 한동안 두바이로 향했다. 그러나 미국과 EU가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국까지 제재 범위를 넓히자 두바이 당국도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여기에 최근 지정학적 불안으로 중동 지역의 물류 차질까지 겹치자 러시아는 홍콩으로 눈을 돌렸다.

홍콩은 러시아산 금에 별도의 수입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2위 금 생산국이며 중국은 세계 최대 금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서방에서 판로가 좁아진 러시아산 금과 중국의 막대한 수요가 홍콩을 매개로 맞물린 셈이다.

홍콩으로 들어온 금 상당수는 중국 본토 수요와 연결된다. 중국은 금 수입 물량을 제한하고 있어 구매자들은 홍콩에서 먼저 금을 사들여 보관한 뒤 본토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중국 인민은행도 외환보유액 다변화를 위해 금 매입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초 이후 홍콩 소재 기관이 사들인 러시아산 금은 누적 350억달러(약 47조원)를 넘어섰다.

홍콩은 늘어난 거래를 발판으로 금 시장 인프라 확충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새로운 금 청산 시스템의 시범 운영을 시작했으며 싱가포르 등과 아시아 금 거래 허브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의 금 보관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현재 약 150t 수준인 금 보관 능력을 향후 3년 안에 2000t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다만 러시아산 금 거래가 늘어날수록 제재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거래 과정에 제재 대상 러시아 업체가 포함되면 홍콩을 거쳐 거래한 서방 금융기관도 규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히 금은 정련하거나 다시 주조할 경우 원산지 추적이 어려워질 수 있다. 러시아 금의 아시아 이동이 홍콩의 금 시장을 키우는 동시에 금융권에는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