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코인거래소 삼킨다…2조 베팅 뒤엔 ‘미래 금융’ 계산법[꿈틀대는 디지털 금③]
여의도 금융권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삼키기 시작했다. 금융사들이 잇달아 거래소 지분 확보에 나서면서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거래소를 단순한 코인 거래 플랫폼이 아닌 ‘미래 금융의 인프라’로 보고 선점하려는 움직임이다.

반면 거래소 업계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가 위축되면서 주요 거래소의 실적이 크게 악화한 데다 ‘수수료 0원’ 출혈경쟁까지 벌어지며 기존 수익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사업 기반이 될 가상자산 2단계 입법(디지털자산기본법)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거래소의 사업 다각화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코인거래소에 2조 베팅한 금융권
미래에셋·한투·하나·삼성 참전


가상자산 거래소를 둘러싼 금융권의 지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금융권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확보에 투입한 금액만 2조원을 웃돈다. 이 가운데 하나은행의 투자를 제외하면 증권사 자금이 1조원 넘게 들어갔다. 과거 금융사들이 거래소와 제휴하거나 디지털자산 관련 서비스를 준비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직접 거래소에 투자해 주요 주주로 올라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컨설팅은 지난 2월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운영사 지분 92.06%를 인수하기로 한데 이어 7월 추가 지분을 확보해 현재 97.15%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500억원 규모의 추가 증자에도 나섰다. 신주 1007만8614주를 미래에셋컨설팅이 전량 인수했다. 사업 확장에 쓸 실탄을 확보한 셈이다.

아예 간판도 갈아엎었다. 코빗은 지난 8월 법인명을 디지털엑스로 변경했고 9월 16일부터 서비스명도 바꾼다.

코인원에는 한국투자증권이 지난 5월 약 20%를 투자해 OKX벤처스와 공동으로 3대 주주로 올라섰다. 기존 최대주주인 차명훈 대표(30.36%)와 2대 주주 컴투스홀딩스(24.54%)에 이어 주요 주주로 합류하면서 금융권과 거래소의 결합이 지분 투자 형태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시장점유율 선두인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역시 대형 금융 자본의 유입이 잇따르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두나무 지분 3.9%를 추가 취득해 지분율을 9.84%로 늘렸다. 삼성증권은 두나무 지분 2%를 확보했다. 삼성SDS와 삼성카드까지 합치면 삼성 계열 3사의 지분은 4%다.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은행을 통해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했던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300억원에 인수하며 4대 주주로 올라섰다.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의 투자를 받은 고팍스를 제외하고 국내 원화 거래소 중 금융권의 전략적 투자가 확정되지 않은 곳은 빗썸뿐이다. 키움증권이 지분 투자를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

◆금융권의 계산은

거래소는 이미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는 플랫폼을 확보하고 있다. 가상자산의 매매와 보관 등 디지털자산 시장에 필요한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향후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와 보유가 제도적으로 허용되면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한 거래·수탁·자산관리 등 새로운 금융 수요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디지털자산 플랫폼을 새로 구축하는 것보다 기존 거래소의 지분을 확보하는 편이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셈이다.

여의도 금융권이 거래소 인프라에 베팅하는 계산 속에는 ‘토큰증권(STO)’도 있다. 국회는 올해 초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STO 제도화에 본격 착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블록체인(분산원장)을 법적 효력이 있는 증권 계좌부로 인정하고 조각투자 등 비정형 증권의 유통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공포 후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7년 시행이 목표다.

이는 사실상 증권사들에 블록체인 기반 거래 시장 진입을 허용한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조각투자 플랫폼이나 핀테크 기업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STO 시장에 증권사가 직접 발행과 유통의 주체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STO에 적극적인 이유도 분명하다.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전통 투자은행(IB) 시장은 위축되는 흐름이다.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STO는 부동산, 미술품, 명품, 한우, 채권 등 거의 모든 자산을 거래 대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차세대 먹거리로 꼽힌다.

아직까지 증권사의 가상자산 직접 거래가 법으로 명확히 허용된 것은 아니지만 업계는 금융 플랫폼이 디지털자산 영역으로 확장할 여지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STO, 스테이블코인, 수탁(커스터디) 등 인프라 영역부터 금융권의 진입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수수료 0원’ 치킨게임

금융권이 거대한 미래 인프라를 그리는 것과 달리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당장 마주한 현실은 냉혹하다. 어쨌거나 아직은 국내 거래소들의 경우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거래 수수료 수입이 매출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코인원과 디지털엑스(옛 코빗)의 영업수익은 사실상 전부 수수료에서 발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두나무는 거래 플랫폼 수수료가 전체 영업수익의 96.9%를 차지했고 빗썸 역시 전체 영업수익 대부분을 가상자산 거래 수수료로 벌어들였다.

이런 수익구조를 흔든 것은 대형 금융사를 등에 업은 후발 거래소들의 ‘수수료 0원’ 정책이다. 디지털엑스는 지난 8월 24일부터 1년간 원화마켓 전 종목의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코인원도 이틀 뒤인 26일부터 전 종목의 거래 수수료를 0%로 낮췄다. 횟수나 자격 제한 없이 바우처를 다시 발급받을 수 있어 별도 공지가 나올 때까지 사실상 무료 거래가 가능한 방식이다.

코인원의 점유율은 수수료 무료화 이후 눈에 띄게 뛰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3%에 못 미쳤던 시장점유율이 9월 9일 기준 12.99%까지 올라왔다(코인게코). 앞서 코인원은 지난 7월 말 거래소 앱에 한국투자증권의 웹트레이딩시스템(WTS)을 연동하며 주식 거래까지 한 플랫폼 안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연동 서비스 출시 직후 신규 가입자가 전월보다 85% 늘어난 만큼 금융권과의 결합이 거래소의 고객 기반 확대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수료 경쟁과 금융서비스 결합이 맞물리면서 후발 거래소들이 기존 시장 구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후발 거래소들의 공세에 업계 1·2위인 업비트와 빗썸도 대응에 나섰다. 업비트는 원화마켓에 상장된 일부 스테이블코인의 거래 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받지 않기로 했고 빗썸은 원화마켓 전체 종목을 대상으로 오픈 API 거래 수수료를 면제했다.

◆실적 쇼크 직격탄

가상자산 거래소는 거래가 줄거나 수수료율이 낮아지면 실적이 곧바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인 시장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시들면서 두나무의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수익은 408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1%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115억원으로 79.7% 줄었고 순이익도 1084억원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74.1% 감소했다.

빗썸 역시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크게 줄었다. 상반기 매출은 1688억원으로 1년 전보다 48.7%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149억원으로 83.4% 급감했다. 순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550억원 흑자에서 올해 1087억원 순손실로 돌아섰다.

수익성 지표도 악화했다. 두나무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27.3%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2%포인트 떨어졌다. 빗썸 역시 영업이익률이 27.4%에서 8.8%로 18.6%포인트 낮아졌다.

문제는 거래소들이 수수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필요한 제도적 기반도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업 기반으로 꼽히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은 당정 간 이견으로 통합안 마련과 발의가 늦어지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국회 대관 인력들이 입법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무위원회 구성도 바뀌면서 다시 설득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선순위에서도 밀려 있어 연내 국회를 통과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