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한때 개인투자자가 가격을 밀어 올리고 시장을 흔들었다면 이제는 월가의 기관투자가와 각국 정부가 시장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비트코인의 다음 방향을 결정할 변수도 그만큼 복잡해졌다. 미국의 금리와 유동성 같은 거시경제 환경부터 가상자산 제도화, 기관·기업의 비트코인 매수세, 비트코인 고유의 수급 구조까지 얽혀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무엇을 봐야 할까. 세 가지 관점에서 짚어봤다.
◆9월 중순 비트코인 흔들 변수 쏟아진다
비트코인 가격의 단기 방향을 가를 변수들이 9월 중순에 몰려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부터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 일본은행(BOJ)의 금리 결정, 미국 가상자산 규제 법안까지 다층적인 거시 변수들이 맞물려 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금리와 국채시장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만큼 각 이벤트의 결과에 따라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첫 번째 분수령은 9월 11일 발표되는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다. 시장에 중요한 것은 물가 수준 자체보다 이를 바라보는 Fed의 시선이다. 9월 금리를 결정짓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5~16일 열린다.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인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인 상승) 경계가 커지면서 금리인상 기대가 높아질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등 비교적 안전한 자산에서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 같은 위험자산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시장에서는 9월 금리 동결 전망이 우세하지만 인플레이션과 고용 지표에 따라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잭슨홀 미팅에서 케빈 워시 Fed 의장은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25번 넘게 언급하며 물가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금리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9월 FOMC는 단기 시장의 주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비트코인의 구조적 하단을 좌우할 핵심 변수는 미국 정치권의 가상자산 입법 속도다. 그중 가상자산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시장구조 체계를 정립하는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의 통과 여부다.
미국 상원은 9월 15일 법안 처리 절차에 들어갈지를 결정하는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최종 법안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은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표결이 법안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로 보고 있다.
클래리티 법안은 그동안 시장의 발목을 잡아 온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간의 관할권 다툼을 정리하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디지털 상품’으로 정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업계에서는 법안이 통과되면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망설이던 연기금·국부펀드 등 기관 자금이 비트코인 시장에 더 쉽게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폴리마켓, 칼시 등 글로벌 예측시장에서는 9월 중 해당 법안이 통과될 확률을 14~20% 수준으로 낮게 점치고 있다. 당파 간 윤리 조항(트럼프 대통령 가족 관련 문구) 갈등으로 9월 15일 표결이 사실상 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며 실패 시 처리는 중간선거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법안 처리가 지연되더라도 SEC와 CFTC가 행정 지침 형태로 제도화 공백을 메워가는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다.
강력한 하락 압력 변수는 9월 17~18일 예정된 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다. BOJ가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할 수 있다.
엔캐리트레이드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미국 주식이나 채권, 비트코인 등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일본 금리가 오르고 엔화 가치까지 상승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엔화로 빌린 자금의 부담이 커지고 기존 투자자산을 팔아 엔화 부채를 갚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24시간 거래되고 유동성이 풍부한 비트코인은 가장 먼저 매도 청산 대상이 되기 쉽다. 실제 2024년 7월 31일 BOJ가 기준금리를 0.1%에서 0.25%로 깜짝 올린 뒤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이 본격화했고 8월 5일 글로벌 위험자산 매도세가 확대했다. 당시 비트코인은 하루 새 약 17% 떨어지며 5만달러선이 깨졌다.
최근 급등에 영향을 줬던 미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 소식은 이번엔 약발이 다한 모습이다. 지난 8월만 해도 바이백 확대 방침 발표는 ‘정부가 국채금리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강한 정책 신호로 받아들여지며 국채금리와 달러가 하락하고 비트코인이 급등했다. 바이백 확대가 비트코인 상승의 주요 촉매 중 하나로 작용한 셈이다.
하지만 9월 시장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미 재무부는 9일 10~20년물 국채를 최대 60억달러 규모로 매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수준에는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발표 이후 10년물 금리는 장중 4.85%대까지 올랐고 비트코인도 소폭 하락했다.
이번 이벤트는 국채 바이백의 한계도 보여준다. 바이백은 재무부가 기존에 발행한 국채를 다시 사들여 시장의 유동성과 수급을 개선하는 성격이 강하다. 시중에 돈을 직접 풀어주는 정책은 아니다. 바이백만으로 장기금리를 계속 낮추기는 어려운 이유다.
단기적으로 금리와 유동성에 따라 가격이 출렁이더라도 비트코인 시장의 수급 구조 자체는 과거보다 타이트해지고 있다. 반감기로 신규 공급이 줄어든 데다 채굴기업과 장기 투자자들이 보유 물량을 시장에 내놓는 빈도도 낮아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관리하기 시작한다면 시장에 풀리는 물량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우선 비트코인의 자체적인 공급 측면에서는 단기 하락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2024년 4월 네 번째 반감기를 거치면서 비트코인의 하루 신규 채굴량은 약 900개에서 450개 수준으로 절반 줄었다. 시장에 새로 유입되는 비트코인 물량 자체가 감소한 것이다.
2028년 다섯 번째 반감기가 시작하면 하루 신규 채굴량이 다시 약 225개로 줄어들며 희소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반감기는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을 2100만 개로 제한하고 신규 공급 속도를 점차 낮추는 핵심 장치다.
민간에서도 시장에 풀리는 비트코인 물량이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 상장 채굴기업들이 채굴한 비트코인을 즉시 매도하기보다 보유하거나 이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장기 투자자들의 매도도 제한적이다. 비트코인을 거래소에서 개인 지갑 등으로 옮겨 장기 보유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서 바로 거래할 수 있는 물량이 줄고 있다.
중앙화 거래소(CEX)의 비트코인 잔고 감소도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다. 블록체인 분석 플랫폼 크립토퀀트 등에 따르면 CEX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9월 약 271만 개 수준으로 줄어 수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거래소 잔고가 줄었다는 것은 당장 매도할 수 있는 물량이 감소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장기 보유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3월 행정명령을 통해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체제를 구축했다. 미국 재무부가 정부 보유 비트코인을 통합 관리하고 압수·몰수 등으로 확보한 물량을 준비금으로 이전하는 내용이다. 비트코인을 민간 가상자산이 아니라 국가가 장기적으로 보유할 주권적 전략자산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의회에서는 이를 법률로 고착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2026년 5월 하원의원 닉 베기치 등이 발의한 ‘미국 준비금 현대화법(ARMA)’은 재무부 내에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을 설치하고 연방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한곳에 통합하도록 했다. 준비금에 편입된 비트코인은 최소 20년간 매각·교환·담보 설정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분기별 보유 현황을 암호학적으로 검증해 공개하는 ‘보유 증명(Proof of Reserve)’ 체계도 마련하도록 했다.
다만 공급 감소만으로 가격 상승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가격은 신규 공급뿐 아니라 시장의 매수세와 기존 보유자들의 매도 여부에 함께 좌우된다.
사실 가장 큰 변화는 월가가 비트코인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과거 개인투자자 중심의 시장이었던 비트코인은 2024년 1월 미국 SEC가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상품(ETF)의 상장을 승인하면서 전통 금융시장을 통한 투자 경로를 확보했다. 투자자가 개인키를 직접 관리하거나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매매하지 않고도 기존 증권계좌를 통해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ETF는 비트코인 시장에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는 통로인 동시에 빠져나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기관투자가와 자산관리사, 연기금 등 전통 금융권의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길이 넓어진 만큼 시장의 자금 흐름 자체가 커졌다. 반대로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 ETF를 통한 자금 유출이 비트코인 매도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 데이터 플랫폼 소소밸류에 따르면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에 지난 8월 중순 이후 3주간 약 38억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올해 들어 최장기간, 최대규모의 순유입이다. 이 기간 비트코인 가격은 17% 뛰었다. 현물 비트코인 ETF 출시 이후 누적 순유입액은 556억달러에 달했다.
비트코인을 투자자산으로 활용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선물 시장과 금융회사들의 거래·수탁 서비스가 확대된 데 이어 기업들도 비트코인을 재무자산으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스트래티지다. 주식과 전환사채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전략을 이어가면서, 비트코인을 기업의 핵심 재무자산으로 삼는 ‘비트코인 트레저리(Bitcoin Treasury)’라는 새로운 기업 모델을 제시했다. 이제 스트래티지의 비트코인 매입·매도 움직임 자체가 비트코인 투자 전략을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도 월가의 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 등 21개 글로벌 금융기관이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면서 비은행 중심의 시장에 은행권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가 마련된 것도 은행권 진입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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