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현 동천안농협 조합장
"함께 농사짓는 법" 준비할 때

[기고] '공동영농' 사례를 통한 희망농업
농업의 미래, 이제 ‘함께 농사짓는 법’을 준비해야 한다.

농촌에서 농사지을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우리 농업의 가장 절박한 질문은 ‘어떻게 더 많이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농사를 이어갈 것인가’이다. 현장에서 농업인을 만나면 걱정은 한결같다. 농사를 이어갈 자녀가 없고, 농기계를 다루기도 버겁다. 인건비와 농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불안정하다. 농지는 있지만 사람이 없고, 농사를 지을 사람은 있지만 노동력과 경영 규모의 한계에 부딪힌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주목받는 것이 공동영농이다. 경북 문경의 늘봄영농조합법인과 구미의 샘물영농조합법인은 농지를 모으고 공동으로 경영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농작업의 기계화와 공동화를 통해 생산비를 줄이고, 이모작 등 새로운 작부체계를 도입해 농업소득을 높이는 사례다. 고령농에게는 농사 부담을 줄이면서 농지에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되고, 청년농에게는 농지와 경험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영농 기회가 될 수 있다.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공동영농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공동영농이 확대 될수록 우리가 미리 생각해야 할 문제도 있다. 영농법인 간 경쟁이 심화되고, 영농법인과 개별농가가 동일한 작목에 집중하면서 특정 고소득 작물이 한꺼번에 재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높은 소득을 올리던 작목도 여러 경영체가 앞다퉈 재배하면 공급량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 농업에서 ‘잘되는 작목’이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생산자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결국 농가소득의 불안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농협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직 조합장으로서 농업 현장을 지켜보며, 농협의 역할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커진다. 그동안 농협이 개별 농가의 영농을 지원하는 데 힘써왔다면, 앞으로는 지역 단위 농업경영을 조직하고 연결하는 역할까지 고민해야 한다. 공동영농을 개별 영농법인의 사업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역농업 전체의 관점에서 조정하고 연결해야 한다. 농협은 지역의 농지와 작목, 생산량, 출하시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파악할 수 있는 조직이다.

앞으로 농협은 공동영농법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지역별 재배작목이 특정 품목에 지나치게 편중되지 않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재배면적과 재배시기를 조정하는 역할까지 고민해야 한다. 생산단계에서부터 출하를 분산하고 판매를 조직화해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필요한 경우에는 지역농협이 공동영농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지역농협의 자회사 형태로 전문 영농조직을 운영하거나 기존 영농법인과 협력해 농지 집적, 생산, 유통을 연계하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농협중앙회와 경제지주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지도·지원이 개별 농업인과 농협의 사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지역농업의 생산과 유통을 조정하고 공동영농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공동영농에 필요한 경영모델과 회계·노무·농지관리 교육은 물론, 작목별 시장정보와 수급전망, 판로개척, 브랜드와 마케팅까지 중앙회와 경제지주가 뒷받침해야 한다. 지역농협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전문성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면 단위 지역농협의 입장에서 공동영농은 위기이면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조합원 감소와 농촌인구 감소로 갈수록 사업 기반이 약해지는 지역농협이 단순히 기존 사업의 축소를 고민해서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농업 자체를 농협의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끌어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협이 공동영농에 직접 참여하거나 영농법인과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면 농지와 농업인을 다시 연결하고, 농자재 공급에서 생산·수확·유통·판매까지 새로운 경제사업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조합원의 농업소득이 늘어나면 농협의 사업 기반도 함께 커질 수 있다.

물론 공동영농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농지를 모으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더 어렵다. 그래서 농협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농업인과 영농법인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신뢰를 쌓는 것이다. 농촌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농협이 그 변화를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변화의 중심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지역농협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면 단위 작은 농협이라고 해서 미래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지역의 농지를 지키고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는 일에 농협의 역량을 집중한다면, 공동영농은 위기의 지역농협을 다시 일으키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농업인이 살아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농협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제 농협은 농업인을 지원하는 조직을 넘어 지역농업을 함께 경영하는 조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고, 지역농협의 새로운 생존길을 여는 길이라고 믿는다.

조덕현 동천안농협 조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