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질환 치료받다 간부전증으로 간이식
대법 “진료 재량 벗어났다는 증명 필요”
과실 있어도 상해·인과관계까지 입증해야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의료행위 이후 환자가 중대한 장애를 얻었을 경우 의사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의료사고로 의사를 처벌하려면 의사의 업무상 과실과 그 과실로 상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모두 명확히 증명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피부질환으로 병원 찾았다 간이식 수술

최근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한 대학병원 피부과 전문의 A 씨와 같은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B 씨에게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의정부지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A 씨는 2013년 7월 12일 여드름과 비슷한 피부발진을 치료하기 위해 내원한 C 양(당시 12세)을 진료한 뒤 답손(Dapsone)을 처방했다. 답손은 독성간염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로 투약 과정에서 혈액검사와 간 기능 모니터링이 요구되고 발열 등 이상반응이 나타날 경우 약을 끊고 의료진을 찾도록 환자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A 씨가 필요한 검사를 하지 않고 이 같은 부작용과 대응 방법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봤다. C 양은 7월 31일부터 고열 등이 나타났고 8월 4일 같은 병원 응급실을 찾아 입원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B 씨가 C 양의 치료를 담당했다. B 씨는 이틀 뒤인 6일 A 씨로부터 ‘답손을 중단하고 필요에 따라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해볼 수 있다’는 1차 협진 회신을 받았지만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지 않았다.

다시 9일 ‘전신적 스테로이드 투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는 내용의 2차 협진 회신을 받고 스테로이드 투여를 시작했다. 이후 B 씨는 스테로이드 투여를 중단했다가 C 양의 상태가 악화하자 투여하는 등 단기 투여와 중단을 반복했다.

C 양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던 중 같은 달 19일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고 21일 전격성 간부전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같은 날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후 간장애 5급 진단을 받았다.

검찰은 A 씨는 답손 처방 이후 검사와 경과 관찰, 부작용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B 씨는 스테로이드를 지속해 투여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재판에 넘겼다.

스테로이드 치료 중단 두고 1·2심 엇갈린 판단

1심은 A 씨에게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답손 처방 자체는 적절한 치료방법 중 하나였고 답손 처방 전에 반드시 검사를 해야 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다만 7월 30일 재진 때에는 발열 여부를 적극적으로 문진하고 이상이 있다면 검사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과실로 판단했다.

발열이나 인후통 같은 부작용 징후가 생기면 답손을 끊고 병원에 오라고 알려줬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피해자가 그런 설명을 들었다면 7월 31일 처음 열이 났을 때 개인 의원에서 항생제 치료를 받으며 초기 며칠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다.

반대로 B 씨는 무죄 판결받았다. 검찰은 B 씨가 스테로이드를 지속 투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첫 회신 자체가 ‘필요에 따라 스테로이드를 투여할 수 있다’는 표현이었고 두 번째 회신도 스테로이드가 어렵다면 면역글로불린(IVIG)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점을 감안했다.

보호자가 스테로이드 투여에 반대했고 투여 뒤 열과 발진이 심해진 점도 무죄의 이유로 들었다. 2심에선 B 씨도 유죄 판결받았다. A 씨와 동일하게 금고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항소심은 스테로이드 치료에 큰 무게를 뒀다.

C 양은 답손 투여 이후 약물과민반응증후군(DRESS)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치료를 위해선 원인 약물을 끊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전신 스테로이드가 주된 치료법이며 증상 재발을 막기 위해 6~8주에 걸쳐 천천히 감량하는 것이 권고된다고 봤다.

반면 IVIG의 효과에는 논란이 있다고 판단했다. B 씨는 첫 협진 회신 뒤에도 사흘 동안 스테로이드를 쓰지 않았고 9일 스테로이드 투여 필요성을 지적받은 뒤에도 이틀 만에 중단했다.

B 씨는 “세균 감염과 패혈증이 우려돼 면역억제제인 스테로이드를 중단했다”고 주장했지만 항소심은 당시 균 배양검사가 음성이었고 패혈성 쇼크 때문에 반드시 스테로이드를 끊어야 한다는 근거도 부족하다고 봤다.

항소심은 스테로이드 투여 뒤 간 수치가 개선됐다가 중단 후 나빠졌다는 점을 근거로 삼아 스테로이드 미투여와 간 기능 장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과실과 중대 피해 인과관계 명확해야”

반면 대법원은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먼저 B 씨에 대해선 스테로이드를 지속해서 투여하지 않은 것을 업무상 과실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와 당시 의료 수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한 진료 방법을 선택할 재량을 갖는다. 여러 치료법 가운데 의사가 선택한 방법이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다른 치료법이 더 나았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형사재판에선 이런 과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 씨가 피해자를 치료하던 당시 상황은 진단이 명확하지 않았다. DRESS의 핵심 지표인 호산구 수치는 정상범위였던 반면 감염 가능성을 의심할 만한 상황도 이어졌다.

A 씨에 대한 판단의 초점은 달랐다. 대법원은 검사·설명의무 위반이 업무상 과실인지 여부와 별개로 설령 A 씨에게 이러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실 때문에 C 양이 간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의 상해를 입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는지를 따졌다.

대법원은 과실이 증명됐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의 정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A 씨가 더 일찍 검사하고 대응 방법을 설명했다면 DRESS가 조기에 진단됐고 중대한 상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의료과실 형사사건에서 환자가 중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의사의 형사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의사의 업무상 과실과 그 과실로 상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각각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B 씨의 경우 스테로이드를 지속하지 않은 선택 자체가 형사상 과실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반면, A 씨에 대해선 설령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간부전 사이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셈이다.


[돋보기]
의료과실 인정받은 故 신해철 씨 사건

앞서 사례에서 보듯 의료행위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 다만 환자의 상태에서 위험한 결과를 충분히 예견·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필요한 검사나 처치, 전원 등을 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수 신해철 씨 집도의 사건이다. 신 씨가 위장관 유착 박리 수술을 받은 뒤 계속 심한 통증과 고열, 백혈구 증가 등 복막염을 의심할 이상징후가 나타났지만 의사는 이를 통상적인 수술 후 통증으로 판단해 퇴원을 허용했다.

이후에도 복막염 가능성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채 필요한 검사와 치료, 전원을 등을 지체했고 신 씨는 결국 사망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진단·처치 지연 등의 과실로 신 씨가 제때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며 의사의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의사는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이승우 한국경제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