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로이터는 최근 벤틀리가 첫 순수 전기차 ‘토르칼’을 공개한 것을 계기로 이 같은 의문을 짚었다. 그동안 럭셔리 자동차 업체들은 강력한 엔진과 차별화된 주행감, 고급 가죽과 목재 마감 등에 높은 가격을 매겨왔다. 하지만 전기차에서는 브랜드 간 주행 성능의 차이를 만들어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기존 방식만으로 ‘럭셔리’를 설명하기 쉽지 않아졌다는 설명이다.
벤틀리가 택한 방법은 전기차에서도 기존 브랜드의 감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었다. 토르칼은 엔진 냉각을 위한 전면 그릴이 필요하지 않지만 차량 앞부분에 다이아몬드 형태의 조명을 배치해 기존 벤틀리의 그릴을 연상시키도록 디자인했다. 전기차 특성상 사라진 엔진음도 팀파니와 드럼 소리를 활용해 별도의 주행음으로 구현했다.
프랑크슈테펜 발리저 벤틀리 최고경영자(CEO)는 토르칼 공개 당시 “전기차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자동차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브랜드의 전통과 새로운 기술을 함께 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토르칼의 시작 가격은 약 23만달러(약 3억2000만원)로 벤틀리 제품군 가운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에 속한다. 발리저 CEO는 이를 “보다 접근 가능한 벤틀리”라고 표현하며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회사가 파악한 초기 관심 고객 가운데 약 절반은 기존 고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벤틀리를 처음 고려하는 신규 고객이었다.
럭셔리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에 신중한 이유는 고가 차량 소비자들의 수요가 아직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수억 원을 지불하면서도 기존 내연기관에서 느끼던 엔진음이나 기계적인 주행 감각을 포기해야 한다. 전기차 특성상 가속 성능이나 정숙성만으로 차별화를 이루기도 쉽지 않다.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명품차를 가르는 기준도 차츰 달라질 전망이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엔진과 변속기, 수작업 가죽과 목재 마감 등이 고급차의 가치를 좌우했다면 전기차에서는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기능, 배터리 성능과 충전 속도 등 기술력이 새로운 차별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변화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에 기회가 되고 있다. 오랜 브랜드 역사나 장인정신 대신 빠른 기술 개발과 다양한 디지털 기능을 앞세워 고급차 시장을 파고들고 있어서다. 유럽 업체들이 기존의 ‘럭셔리’를 전기차에 어떻게 구현할지를 고민하는 사이 최신 기술 자체가 고급차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럭셔리 자동차 업체들이 마주한 과제는 단순히 전기차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엔진과 배기음이 사라진 시대에 소비자가 무엇을 ‘명품’으로 받아들이고 어디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것인지가 새로운 승부처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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