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웃게 하는 직업, 멋있잖아요” 1000:1의 경쟁률 뚫고 합격한 23년차 권석 예능 피디

“입사하고 나서는 정말 힘들었죠. 방송국이 낯설기도 했고, 장소 섭외에다 촬영·편집까지 하면 일주일에 한두 번만 집에 들어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께 웃음을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게 멋있잖아요.”소위 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갈고 닦은 실력자들을 우리는 ‘장인’이라 칭한다. 무한도전, 놀러와, 일밤 대단한 도전…등 지난 23년간 오롯이 시청자들의 웃음만을 위해 달려온 권석 피디 역시 ‘예능을 만드는 장인’이다. 치열한 방송 현장 속에서도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살포하는 그의 생존 비결이 궁금하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됐나?1993년도에 입사했으니까 햇수로 23년 됐다.
예능 피디로 20여 년 넘게 보낸 소감은?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환경이 낯설기도 했고, 무슨 이런 동네가 다 있나 했다.(웃음) 학교에서는 편안하게 인문학 공부나 했는데,방송국을 갔더니 전쟁터더라. 특히 예능국이라 더했던 것 같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캐릭터 센 사람들이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일이 재밌었다.
어떤 재미였나?조연출에서 연출로 넘어가기까지 5년 걸렸다. 조연출 땐 매일 밤낮을 촬영과 편집으로 보냈는데,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웃음) 군대와 비슷하다.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연출을 맡게 되면서 내가 생각했던 프로그램을 만드니까 재밌더라.
당시 피디 경쟁률은 어느 정도였나?아마 1000:1 정도 됐다. 당시 피디, 기자, 기술·행정 등 모두 포함해 30여 명 정도 채용한 걸로 기억된다. 그중 피디는 나를 포함해 10명 정도 뽑았고, 지금도 7명 정도 동기 피디들이 근무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피디 직종이 인기다. 최근 지원율은 어떤가?아무래도 요즘은 케이블이나 종합편성채널이 생겨 채용 수요가 많아지기도 했고, 방송 자체가 사양 산업이다 보니 예전에 비해 경쟁률이 많이 떨어졌다.



어떤 프로그램들을 제작했나?초창기 무한도전과 놀러와, 일밤 대단한 도전, 이경규가 간다 한일 월드컵 편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아빠 어디가’나 ‘진짜사나이’도 기획을 맡았다.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에 남나?그래도 ‘놀러와’(2004년 5월~2012년 12월)가 가장 기억에 남고 애정이 있다. 장수프로그램으로 만들었으니까….
최근 예능 트렌드를 꼽아본다면?요즘 젊은 세대들이 힘들어서 그런지 ‘웃픈 예능’이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재미있으면서도 페이소스가 담긴 예능이랄까. 나 혼자 산다, 무한도전,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이 웃기면서 짠한 예능이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의 예능 트렌드는 어떻게 변할 것 같나?개인적으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계속 사랑받을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그 리얼리티를 얼마나 더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의 경쟁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리얼함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예능 프로그램은 뭔가?단연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다.
‘응팔’을 드라마가 아닌 예능으로 봐야 하나?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코미디를 기반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예능으로 본다. 한때 인기 있었던 ‘거침없이 하이킥’도 예능이다. ‘응팔’은 원조 시트콤 기반에서 진화된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제작한 신원호 피디(CJ E&M)도 예능 피디이지 않나.
예능 프로그램의 구성은 어떻게 되나?<아이디어?작가 섭외?디벨로핑?프로그램 콘셉트 설정? 연기자 캐스팅?촬영?편집?방송> 우선 피디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작가를 섭외하고 작가와 함께 프로그램 디벨로핑을 한다. 좀 더 다듬어진 구성으로 연기자들을 섭외하고, 촬영, 편집을 거쳐 방송으로 내보낸다.
‘아이디어’부터 ‘방송’으로 내보내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예능은 다른 프로에 비해 가볍다 보니 빨리 제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설날 파일럿 프로그램을 예를 들어보면 작년 11월 말쯤 아이디어 공모를 한 다음 12월 초에 프로그램 콘셉트를 정했다. 그리고 1월에 촬영과 편집을 마치고 2월에 방송을 내보냈다. 한 3~4개월 정도 걸렸다.



지난해 복면가왕, 마이리틀 텔레비전 등 파일럿 프로그램이 반응이 좋았는데, 정규 편성의 기준이 있나?우선 시청률이 두 자릿수가 나오면 성공적이라 본다. 그렇다고 꼭 시청률만 따지는 건 아니고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보고 판단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되는 프로그램인지가 중요하다. 시청률이 좋아도 지속성이 없으면 편성하기 어렵다.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잡다한 경험을 하는 편이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기도 하고, 다른 프로그램 모니터도 한다. 때로는 막연히 연예인 한 명을 머릿속에 그려 놓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유재석이라는 연기자를 먼저 염두 해 두고 프로그램 기획을 하는 식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SNS 운영자, IT 및 게임 전문가, 스토리텔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예능 TF팀’을 꾸려 2주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처음 시도해보는 프로젝트인데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한가지에만 몰두하면 결과는 나오기 마련이다.(웃음)
학교 다닐 때부터 피디가 꿈이었나?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꿈이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故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노래 제목처럼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나한테 묻고 싶을 정도였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보다 진짜 하기 싫은 걸 꼽아보고 그 중에 남은 걸 선택하기로 했다. 우선 공부는 하기 싫어 접었다.(웃음) 외무 고시를 준비했었는데 어려워 접었고, 대기업 생활도 싫었다. 사업에도 재능이 없었다. 그렇게 싫은 걸 꼽다 보니 언론사가 남더라.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언론사 스터디를 직접 만들어 피디 준비를 했다.
어떻게 준비했나?1993년 2월부터 준비해서 그해 12월에 합격했으니 10개월 정도 걸렸다. 기술적으로만 따져보면 영어, 국어, 상식 시험을 준비하는 정도였다. 요즘도 비슷할 텐데, 영어를 토익으로 대체하는 정도일거다. 당시엔 상식 분야를 많이 공부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피디 직종은 지원하기 수월하다. 다른 분야 준비하다가도 지원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벼락치기하기 딱 좋은 직종이다.(웃음)
피디가 갖춰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즘 면접관으로도 나가는데, 면접에서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이 지원자가 방송에 얼마나 관심 있는 지다. 방송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그 관심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피디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잘 표현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피디의 역할은 프로그램 구성, 연출 그리고 자막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센스는 물론, 상식은 기본이다.
피디의 매력은 뭔가?피디는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직업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방송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보다 매력적인 일이 있을까.
피디와 연예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일반인들이 부러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실제 사이는 어떤가?예능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남을 웃기는 사람들이니까 같이 있으면 즐겁기도 하지만 사실 연예인은 스트레스의 원인이다.(웃음) 스타들을 섭외하려면 피디의 간, 쓸개 정도는 내놔야 할 정도니까…. 물론 방송을 하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가 이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이경규, 서경석씨와 친하다.(웃음)
최근 눈여겨 본 연예인이 있나?예능적으로 너무 욕심나는 친구가 있다. ‘보니하니’의 하니 역할을 하고 있는 이수민이다. 나이가 어린데도 센스가 넘치고 진행을 너무 잘하더라.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캐릭터라 아마도 조만간 확 뜨지 않을까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초창기 때의 열정이 그립다. 지금이야 장소 헌팅이나 편집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지만 내가 연출할 때만 해도 담당 피디가 직접 장소 섭외를 했었다. 무한도전 초창기 때 ‘지하철 VS 인간의 달리기 시합’을 준비할 때였는데, 전철과 달리기를 할 만한 장소 찾기가 쉽지 않더라. 그 장소를 찾기 위해서 지하철 노선도를 펴 놓고 조연출이랑 일일이 역을 다 찾아다녔다. ‘목욕탕 배수구 편’을 찍을 때도 전국 목욕탕을 다 뒤질 정도였으니까…. 요즘 문득 그때의 열정과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예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능의 본질은 시청자들께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같이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서 가볍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게 예능이 아닐까 싶다.
피디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한마디.그들에게 묻고 싶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진정으로 방송을 만들고 싶은 건지 아니면 겉으로 보이는 피디의 모습이 좋은 건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잘 선택하길 바란다.
글 강홍민 기자(khm@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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