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에게 PM 맡기는 무책임한 업무 체계


-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야근, 추가근무에 신입들 '당황'


- 채용공고 내 등장했던 '자율출퇴근제'는 온데간데없어

[캠퍼스 잡앤조이=조수빈 인턴기자] 여러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신입들이 채용공고와 다른 업무 환경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자율출퇴근제를 보장하며 자신의 기획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인재를 모집’한다던 스타트업은 신입에게 과중한 업무를 맡기거나, 제대로 업무 체계를 잡아주지 않거나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었다.



[현장이슈] "업무 파악도 덜 됐는데, PM을 맡으라고요?" 업무 체계없는 스타트업의 한계, 어디까지?



업무 지식 부족한 신입이 PM?

IT 스타트업 입사 마케팅 부서 일 년차 신입인 김 모(27)씨는 “입사할 때 채용공고도 ‘자유로운 분위기’, 면접 때도 개개인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존중하는 분위기라는 회사 이미지를 강조했다”며 “주변에서 스타트업 입사를 걱정하긴 했지만, 면접 분위기도 좋았고, 기업 규모도 꽤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고 말문을 텄다.

김 씨가 근무하는 스타트업은 유명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투자를 받기도 하는 규모 있는 스타트업이었다. 출근 형태는 자율이었으며 주간 회의 진행 시 월요일 아침에는 별도로 출근시간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해 두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직원의 생활과 복지를 보장해주고 있는 채용공고 내용에 김 씨는 회사를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후 사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김 씨는 입사 세 달 만에 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을 발견했다.

김 씨는 기획 회의 때 낸 아이디어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받았고, 대표로부터 해당 기획의 PM(제품 관련 책임자)을 맡아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 씨는 “인수인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케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PM을 어떻게 맡으라는 건지 난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종적으로 PM을 맡게 됐고 그 외에도 부가적인 관련 업무까지 떠맡아야 했던 김 씨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며 과한 업무량을 감당해야 했다.

김 씨는 해당 업무 과중 문제에 대해서 팀장과 함께 면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팀장 역시 김 씨의 업무량에 대해서는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팀장에게 들은 말은 “OO씨 기획이기도 하니까 조금만 힘을 내달라. 지금 별도로 인력을 채용하기는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별도 팀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TF식으로 운영되다보니 업무 체계도 엉망이라는 것이 김 씨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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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규모는 커지는데 업무 체계는 주먹구구식

다른 업종의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박 모(26)씨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박 씨의 회사는 초기 작은 스타트업이었으나 최근 투자 유치를 크게 받으며 사업 규모가 확대된 케이스다. 박 씨는 “회사는 확대됐지만 사업 운영방식은 그대로라 모두가 강제로 야근을 하고 있다. 면접 때 직무에 대한 안내를 정확히 해주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됐다. 마케팅 부서로 들어왔는데 웹 관련 디자인도 도맡아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 씨는 스타트업이 체계가 없는 이유는 각자 담당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고 투자가 들어오거나 사업이 성사가 되면 그 때 그때 처리하는 방식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씨는 스타트업도 스타트업 나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다 같이 열정 있고 열심히 하는 분위기면 좋은데 한 명 한 명이 크기 때문에 인재 하나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그는 스타트업 입사를 앞두고 있다면 입사 전 맡게 될 직무를 정확히 안내받거나 연봉 협상을 꼼꼼하게 하고 들어갈 것을 추천했다.


직접 들어본 스타트업 생태계는 업무 분담이 제대로 안 되거나, 직무 담당자가 따로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해결하는 곳이 많았다. 심지어는 포괄임금제로 운영돼 야근수당이나 연차활용이 잘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7개월 된 신입에게 대리를 달아주겠다는 대표도 봤다는 박 씨는 “남의 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분위기가 가장 스트레스”라며 “규모가 100명이 넘어가는데도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데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은 오죽하겠냐”는 입장을 전했다.


채용공고 제대로 파악하려면?

스타트업 운영 2년 차인 한 대표는 “스타트업에서 제공하는 복지는 대부분 외부 투자금으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채용공고에 나타난 복지가 좋으면 좋을수록 의심하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기존 직원들에게 약속한 복지를 지키기 위해서 회사 운영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몇 봤다는 그는 성공한 회사와 복지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 과장이 들어간 채용공고로 신입들에게 과한 부담감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권진 더팀스(스타트업 채용 플랫폼) 대표는 구직자들은 스타트업 지원 시 채용공고에서 본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를 맡기려고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대표는 “‘마케팅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직무’라고 쓰인 채용공고는 대부분 신입에 대한 구체적인 역할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채용공고 상 드러나지 않은 구체적인 회사 분위기는 면접 때 판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의 경우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복지, 근무조건에 있어 무리한 혜택을 설정하는 곳도 있다. 투자금을 얼마나 펀딩 받았고, 앞으로의 잔여 투자금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 아이템에 대한 전망도 고려 대상이다. 기업 관련 기사를 찾아보거나 면접 때 직접 문의하는 방식으로 지원 기업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을 ‘갓 창업한 신규 기업’으로 바꿔 읽는다면 이해하기 쉽다. 성공한 스타트업의 복지 혜택을 보고 스타트업의 복지는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 스타트업에 입사했을 때 어떤 업무를 맡게 될 것인지, 업무 체계는 어느 정도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subinn@hankyung.com

[사진=Getty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