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타파] ‘케어’ 김은일 팀장, 10년 디자인경력 뒤로 하고 유기동물의 엄마가 되다


11월 8일, 케어 답십리센터에서 김은일 팀장을 만났다. 김 팀장이 안고 있는 6개월된 강아지 ‘소담’이는 한 시추 호더(수집가) 치매노인이 키우던 40마리 중 하나로, 현재 케어에서 입양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기남 기자.


“지난달이었어요. 센터로 백구 한마리가 밥을 먹고 있는 제보영상이 도착했죠. 영상 속의 아이는 계속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있더라고요. ‘뭔가 잘못됐구나…’ 직감한 순간, 아이가 고개를 들었는데 목 주변에 파리 떼가…. 목에 올무가 껴 있었는데 이게 얼마나 오래됐는지 썩어서 살 깊숙이 파묻혀 버린 거예요. 사연은 더 기막혀요. 주인이 매일같이 아이를 학대하다가 아이가 기절하니까 죽은 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렸나 봐요. 그런데 이 친구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주인을 피해 숨었대요. 하지만 끔찍하게도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사나운 진돗개를 풀어서 아이를 잡으러 다녔어요. 결국 잡혀서 또 학대당하고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그런데 또 도망쳤나 봐요. 주인은 또 잡으러 갔고. 심지어 이번엔 올무를 쳐놔서 아이 앞다리가 잘려나갔대요.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장비를 100만원어치 구매해서 구하러 달려갔어요. 다행히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치료를 잘 받고 있구요.”



[스펙타파] ‘케어’ 김은일 팀장, 10년 디자인경력 뒤로 하고 유기동물의 엄마가 되다

케어 답십리센터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구호동물들. 사진=케어 홈페이지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 여기 서있으라 말했었잖아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 (중략)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중.


평소에 즐겨듣던 음악. 그날도 구호동물입양센터 ‘케어(CARE)’의 김은일 팀장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한 동료가 물었다. “너 이 노래 화자가 누구인지 알아? 누군가는 유기견이라더라.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아지의 가슴 아픈 이야기….” 그 순간 김 팀장은 눈물을 왈칵 쏟으며 노래를 꺼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켜지 못했다.


#무서운_디자이너상사 #공백기 #봉사로_시작_일년뒤_정규직


김은일 팀장은 어릴 때부터 강아지와 늘 함께였다. 부모님이 원체 강아지를 좋아한 데다 집 앞 마당도 넓어 셰퍼드, 진돗개 등 대형견과 친구처럼 지냈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은 어린 김은일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 뒤로 김 팀장은 더 이상 개를 키우지 못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강아지를 대신 맡아줄 사람을 찾더라고요. 정말 꼭 키우고 싶어서 간신히 부모님 허락을 받고 데려왔어요. 그렇게 12년을 함께 살았는데 자궁축농증 진단을 받고 수술 바로 전날 세상을 떠났어요. 병을 너무 늦게 알아 버린거예요. 그때 다시 한 번 결심했어요. 더 이상의 이별은 안 하겠다고요.”


하지만 별 수 없었다. 길에서 스쳐간 강아지에도 그리움을 품던 그는 4년 전, 또 다른 식구를 맞이했다. 그렇게 김 팀장은 현재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대신 다시는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문 서적을 사서 읽고 또 읽으며 공부했다.



[스펙타파] ‘케어’ 김은일 팀장, 10년 디자인경력 뒤로 하고 유기동물의 엄마가 되다



아이들과 정을 쌓다 보니 자연히 다른 강아지에게도 관심이 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통받는 유기견이 눈에 밟혔다. 잠시 일을 그만 둔 찰나, 그길로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케어’를 찾아냈고 2014년 1월, 봉사를 시작했다. 매주 1회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6개월 후, 아르바이트를 거쳐 다시 4개월 뒤, 정식직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김은일 팀장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10년간 계속 일반 기업체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간 거쳐 간 부하직원도 수십 명. 이들에게 김 팀장은 늘 ‘무섭고 까다로운 상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사실 김 팀장은 접촉성 피부염이 있다. 털만 닿아도 몸이 간지러운 체질이지만 동물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직장상사다.


#구호동물 #자연사 #병원비 #장기_봉사자가_필요해요


“가끔 센터로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문의전화가 와요. 정말 당황스럽죠. 이건 그나마 나은 경우예요. 센터 앞에 애완견을 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은데,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강아지가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몰라요. 도로로 뛰쳐나가다가 차에 치여 죽을 수도, 보신탕집에 팔려가서 더 처참하게 죽을 수도 있어요.”


케어의 보호소는 퇴계로와 답십리 두 군데에 있다. 두 곳의 직원은 총 9명. 김은일 팀장이 있는 답십리 센터에서는 6명의 직원이 강아지 45마리와 고양이 7마리를 돌본다. 케어의 설립 목표는 구호동물의 완전한 입양이다. 센터의 동물을 ‘유기동물’이 아닌 ‘구호동물’이라 부른다는 이곳은 한번 연을 맺은 동물은 자연사할 때까지 함께 한다. 안락사 장비는 당연히 없다.



[스펙타파] ‘케어’ 김은일 팀장, 10년 디자인경력 뒤로 하고 유기동물의 엄마가 되다



동물 구조는 대개 시민제보에서 시작된다. 사진·영상 등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면 구조팀을 꾸려 출동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상 주인의 동의가 없다면 아무리 학대가 명백해도 마음대로 데려올 수 없다. 그나마 요즘은 사회인식이 개선돼 지역 경찰이나 공무원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학대주인에게 벌금이나 병원비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포기해요. 어차피 동물에게 한 푼도 쓰기 아까워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아가서 죽이겠다’는 강아지공장 주인도 있고, 몸값을 터무니없이 올려 받는 경우도 다반사죠. 한 강아지는 15만원을 주고 사왔는데 며칠 뒤 주인이 찾아와 돈을 더 달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구조해 데려온다고 해도 병원비가 문제다. 대부분 학대견이다 보니 치료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행히 연계병원에서 할인을 받지만 그래도 입원, 검진, 수술비 등을 전부 포함하면 한 마리당 기백만 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입양이야말로 김은일 팀장이 가장 바라는 것. 최적의 입양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아지별 꼼꼼한 이력서가 필수다. 약 40일간의 치료 및 사회적응 훈련기간이 지나면 그간 기록해 둔 검진기록, 병력, 성격 등을 한 곳에 적어 입양자에게 전달한다.


최근엔 봉사자도 늘었다. 하루에 최소 15명이 매일 센터를 찾는다. 하지만 대부분 사회봉사시간 때문에 단기적으로 찾아오는 학생이 많다 보니 “동물들은 센터에 와서도 매일 이별을 경험해야 한다”며 김 팀장은 안타까워했다.



[스펙타파] ‘케어’ 김은일 팀장, 10년 디자인경력 뒤로 하고 유기동물의 엄마가 되다


올해로 2살이 된 진돌이는 도끼로 뒷다리를 잘린 채 구조됐다. 심장사상충에 신장이상 소견도 있어 현재도 치료 중이다. 지금은 거의 완치된 상태. 처음엔 사람이 몸에 손대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남성에게는 극도의 적대감을 보였으나 현재는 온순한 본래모습으로 돌아와 케어의 로비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사진=김기남 기자



#수입↓_업무량↑ #평생직장 #강아지에게_주인은_가족 #사지도_팔지도_맙시다


수입은 이직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현재 월급은 200만원이 조금 안 된다. 근무 시간은 늘었다. 오전 9시 출근에 저녁 7시 퇴근. 물론 정시 퇴근한 기억은 없다. 주 5일제지만 공휴일이 없다. 집까지 1시간 30여분이 걸리다 보니 매일 수면시간은 4시간 안팎. 또 새벽에 울리는 입양자의 연락에도 수시로 대응하다 보면 퇴근은 사실상 없다.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기 바쁘다. 친구도 못 만나고 명절은 못 챙긴 지 오래다. 많은 젊은 직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난 이유다.


하지만 김은일 팀장은 지금의 일에 대해 “단점은 없고 장점은 무엇부터 말해야할지 모를 정도”라고 짧고 굵게 답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이들의 생각을 몰라서 더 잘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김 팀장도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면 늘 무력해진다. 대부분 아파서 온 동물들이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곁을 떠나곤 한다. 늘 겪는 죽음이지만 김 팀장은 그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반면, 좋은 주인을 찾아간 아이들은 늘 그에게 고마운 존재다. 사람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사람을 보면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안기는 아이들이 그는 한없이 예쁘면서도 가슴 아프다고 했다. 입양 뒤 다시 센터를 찾은 아이들이 센터직원을 모른 척 할 때, 그만큼 새 주인의 사랑을 가득 받았다는 생각에 케어의 직원들은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스펙타파] ‘케어’ 김은일 팀장, 10년 디자인경력 뒤로 하고 유기동물의 엄마가 되다



특별히 눈에 밟히는 아이도 있다. 경기도 광주에서 구출한 호동이는 3년간 구타를 당했다. 원래 삼형제였는데 나머지 두 마리는 이미 맞아 죽은 상태. 주인은 의자와 쇠파이프 등 닥치는 대로 집어서 개들을 때려왔고 호동이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이미 두개골 함몰에 이빨도 없고 양쪽 시력도 모두 잃은 처참한 상태였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센터로 온 호동이가 두 눈이 안 보이는 와중에도 사람이 오면 마구 안기려 한다는 것.


“저희의 경쟁상대는 펫숍이에요. 전국의 펫숍이 사라져야 강아지공장 같은 비상식적인 학대 공간도 없어지겠죠. 부디 모든 아이들이 주인을 찾아서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케어에서 봉사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 구호동물입양센터를 검색한 뒤 웹사이트 게시판에서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한 성금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려한다면 우선 병원비부터 생각해주세요. 대부분 처음에는 귀엽다고 키우다가 나중에 아이가 아파지면 내다 버려요. 이 친구들은 주인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족에게 버림받은 기분을 한 번 상상해보세요. 제발 신중해주세요. 아이들은 평생 자신을 버린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요.”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