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감성의 작가들 - ① 고구마 같은 세상에서 사이다를 그리다. 양경수 작가

양경수 작가. 사진=김기남 기자


한 때 ‘힐링’이라는 단어가 서점을 강타한 적이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당연시되어버린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대에 어쭙잖은 ‘힐링’ 대신, 톡 쏘는 ‘돌직구’를 택한 이들이 있다. 당당히 “보람 따위는 개나 줘!”라 외치는 양경수 작가를 만났다.



남다른 감성의 작가들 - ① 고구마 같은 세상에서 사이다를 그리다. 양경수 작가

그림=양경수 작가


생활밀착형 작가 ‘양치기’, 직장인의 공감을 그려내다.

발행 2주 만에 4쇄를 찍으며, 소위 ‘돌풍’을 일으킨 책이 있다. 바로 히노 에이타로의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다. 직장인의 입장에서 솔직한 심정을 다룬 내용으로, 가슴 따뜻한 조언보다는 조금 더 영리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돌직구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이 책에 더욱 열광하는 것은 바로 표지와 심상치 않은 책 속 일러스트에 있다.


한 여자가 “안녕, 이거 너 가지렴.” 이라 말하면서 개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보람’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실제로 양경수 작가는 작업할 때,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를 그릴 때면, 구체적인 타깃을 정하고 시작해요. 거기에 웃을 수 있는 코드를 더하죠. 그래서 ‘공감’이라는 요소가 제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자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도 하고요. ‘1차원적으로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크게 웃을 수 있을 것.’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의 그림이 많은 직장인의 SNS와 각종 포털로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양 작가는 본격적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공감’을 통해 인지도를 얻게 된 것.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양 작가 본인은 회사에 다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20살에 독립해 좌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인테리어 회사까지 창업해 사업도 해봤죠. 하지만 회사에 다니거나 조직생활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저는 이 점이 제 그림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속마음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거든요. 이 부분을 오히려 사람들은 ‘사이다 같다’며 좋아해 주시기도 하고요.”



남다른 감성의 작가들 - ① 고구마 같은 세상에서 사이다를 그리다. 양경수 작가

양경수 작가. 사진=김기남 기자



불교미술의 새로운 흐름 ‘양경수’, 전통에 재미를 더하다.

오는 9월 30일까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아트스페이스 담다’에서 진행되는 그의 개인전 ‘양경수+양치기=그림왕’에서는 앞서 언급한 일러스트 외에 그의 불교미술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그는 네덜란드 국립 세계문화 박물관 ‘더 붓다’ 전에 초청돼 내년 2월까지 전시 중이다. “‘양치기’와 ‘양경수’ 두 이름 모두 저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이름이에요. 앞으로 ‘양치기’ 작가로서 생활밀착형 일러스트도 보여드리고, ‘양경수’ 작가로서 불교미술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그림왕’이 되는 것이 목표고요.”


사실 양 작가가 불교미술에 뜻을 보인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불교미술 계통에서 활동 중인 부모님으로 인해 그는 어렸을 적부터 불교미술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불교미술의 결은 기존의 예술과 조금 다르다. “제가 접했던 불교미술은 솔직히 말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그게 아쉬운 부분이었죠. 사실 불교적 내용 중에서 정말 공감되고 재밌는 이야기가 꽤 많거든요. 부처 역시 그 시대에 가장 트렌디한 사람이었고요. 저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기존의 불교미술보다 조금 더 재밌고, 눈길이 가도록 그려내고 싶어요.”



남다른 감성의 작가들 - ① 고구마 같은 세상에서 사이다를 그리다. 양경수 작가

그림=양경수 작가



팍팍한 인생을 덜 힘들게 사는 방법,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림으로 남들 월급만큼 버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 역시도 20대를 ‘평생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는 고민으로 보냈고요.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림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서양화를 전공한 저와 같은 순수미술 전공자들 혹은 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은 이걸 확실히 구분해야 돼요. ‘그림’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 것인지 아니면 ‘그림’을 통해 자기만족만을 할 것인지.”


현실적이고 냉철한 조언을 하는 중에도 그는 자신이 재밌어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후배들에게 술을 많이 사줘요. ‘힘내’ 이런 말은 하지는 않아요. 어차피 다 힘드니까요. 다만, 팍팍한 인생을 그나마 덜 힘들게 사는 방법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고 말하죠. 그것만 명심하라고요.”


지연주 인턴기자 sta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