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학위수여식이 열린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강풍에 졸업생들이 난처해 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0217
17일 학위수여식이 열린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강풍에 졸업생들이 난처해 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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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어. 복수전공으로는 문화관광학과를 했고. 사회인이 된 뒤 만난 사람들은 제 전공을 들으면 다들 놀라더라.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보다는 요리책 읽는 걸 좋아했어. 우리나라 식문화를 선도하겠다는 꿈을 꾸며 전공을 택했지. 그러다가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동아리야. 한국과 일본 간 문화를 교류하는 활동을 하며 K-컬처에 흥미가 생겼고 급기야 졸업 후엔 방송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어. 방송작가를 시작으로 외식업체 매니저, 서비스 기획 및 마케팅 매니저까지… 참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 왔네.


사회 초년생 때 난 늘 남과 비교해왔어. 특히 방송 일을 할 때 더 그랬지. 방송 작가는 촬영 일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생활이 매우 불규칙해. “넌 왜 주말에 쉬지를 않아?” “그렇게 일해서 뭐가 남겠어?”라는 주변의 말에 계속 흔들리게 됐지. 그러면서 회사원이야말로 가장 평범해보였고 1년 반 뒤, 전공을 살려 외식업체 매니저로 이직했어.




그런데 이게 완전히 틀린 선택이었던 거야. 단순히 그나마 전공을 살릴 수 있어서, 안정적이니까 두 이유만 생각했지 정작 내 흥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요리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서도 맞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 결국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더라. 어딘가에 소속한다고 불안감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이때 가장 많이 느낀 게 직업을 택할 때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야.


그렇게 이 일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내가 해왔던 일을 차근차근 정리해보기로 했어. 수상 내역이며 아르바이트, 동아리, 봉사활동까지 전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은 거지. 이 동안 스타트업 두 곳에서도 잠깐 일했어.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거치며 깨달은 게 결국 나에게 가장 맞는 일은 맨 처음 했던 방송작가더라. 불규칙한 생활 패턴과 급여 때문에 불안감도 있었지만 보람도 컸거든. 업무의 호흡도 짧고 결과물이 바로바로 보이니까. 그만큼 많은 경험도 할 수 있었고. 한 가지 예로, 생활 정보 프로그램을 할 때 난 살림왕이었어. 온갖 세탁법과 청소법을 꿰고 있었거든.



한국경제TV HD방송 송출 준비
/김병언 기자 misaeon@ 20100613..
한국경제TV HD방송 송출 준비 /김병언 기자 misaeon@ 20100613..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 조금 웃픈 이야기지만 사실 초년생 때부터 급여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씀씀이 자체가 크지 않아. 대신 월급에서 생활이 가능할 만큼의 일부는 비상금으로 모아두고 있어.


외식업체 매니저를 한 거에도 감사해. 그때 힘들지 않았다면 나를 돌이켜볼 기회도 없이 지금껏 꾸역꾸역 맞지도 않는 일을 했겠지. 혹시 지금 하는 일에 의구심이 든다면 한번쯤 스스로를 연구해봤으면 해.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면 직접 해 보길 추천하고. 아무리 ‘신의 직장’이라 한들 나에게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니까.


난 89년생이야. 내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생각이야. 아니 바뀌어도.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통해 배우는 게 있으니까. 지금 당장 죽게 되더라도 ‘아, 이거는 해 볼 걸…’ 하는 게 없었으면 좋겠어.


정리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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