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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어. 복수전공으로는 문화관광학과를 했고. 사회인이 된 뒤 만난 사람들은 제 전공을 들으면 다들 놀라더라.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보다는 요리책 읽는 걸 좋아했어. 우리나라 식문화를 선도하겠다는 꿈을 꾸며 전공을 택했지. 그러다가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동아리야. 한국과 일본 간 문화를 교류하는 활동을 하며 K-컬처에 흥미가 생겼고 급기야 졸업 후엔 방송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어. 방송작가를 시작으로 외식업체 매니저, 서비스 기획 및 마케팅 매니저까지… 참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 왔네.
사회 초년생 때 난 늘 남과 비교해왔어. 특히 방송 일을 할 때 더 그랬지. 방송 작가는 촬영 일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생활이 매우 불규칙해. “넌 왜 주말에 쉬지를 않아?” “그렇게 일해서 뭐가 남겠어?”라는 주변의 말에 계속 흔들리게 됐지. 그러면서 회사원이야말로 가장 평범해보였고 1년 반 뒤, 전공을 살려 외식업체 매니저로 이직했어.
그런데 이게 완전히 틀린 선택이었던 거야. 단순히 그나마 전공을 살릴 수 있어서, 안정적이니까 두 이유만 생각했지 정작 내 흥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요리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서도 맞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 결국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더라. 어딘가에 소속한다고 불안감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이때 가장 많이 느낀 게 직업을 택할 때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야.
그렇게 이 일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내가 해왔던 일을 차근차근 정리해보기로 했어. 수상 내역이며 아르바이트, 동아리, 봉사활동까지 전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은 거지. 이 동안 스타트업 두 곳에서도 잠깐 일했어.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거치며 깨달은 게 결국 나에게 가장 맞는 일은 맨 처음 했던 방송작가더라. 불규칙한 생활 패턴과 급여 때문에 불안감도 있었지만 보람도 컸거든. 업무의 호흡도 짧고 결과물이 바로바로 보이니까. 그만큼 많은 경험도 할 수 있었고. 한 가지 예로, 생활 정보 프로그램을 할 때 난 살림왕이었어. 온갖 세탁법과 청소법을 꿰고 있었거든.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 조금 웃픈 이야기지만 사실 초년생 때부터 급여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씀씀이 자체가 크지 않아. 대신 월급에서 생활이 가능할 만큼의 일부는 비상금으로 모아두고 있어.
외식업체 매니저를 한 거에도 감사해. 그때 힘들지 않았다면 나를 돌이켜볼 기회도 없이 지금껏 꾸역꾸역 맞지도 않는 일을 했겠지. 혹시 지금 하는 일에 의구심이 든다면 한번쯤 스스로를 연구해봤으면 해.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면 직접 해 보길 추천하고. 아무리 ‘신의 직장’이라 한들 나에게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니까.
난 89년생이야. 내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생각이야. 아니 바뀌어도.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통해 배우는 게 있으니까. 지금 당장 죽게 되더라도 ‘아, 이거는 해 볼 걸…’ 하는 게 없었으면 좋겠어.
정리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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